AI 시대,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의 생존 기록
재직 시절, 미팅을 나갈 때마다 찾아오는 찰나의 정적을 기억한다. 명함을 건네고, 상대방이 내 직함을 훑어보는 그 짧은 1초. 늘 그 순간이 곤혹스러웠다.
"아, 디자인도 하시고 개발도 하시나 봐요?"
상대의 질문은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네, 뭐 닥치는 대로 합니다."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스스로를 디자이너라 소개하자니 코드를 만지는 시간이 절반이었고, 그렇다고 개발자라 칭하자니 백엔드의 깊은 바다까지는 잠수하지 못하는 내 얄팍한 폐활량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한 놈만 패는' 멋진 장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대기업의 조직도 속에 박힌 스페셜리스트들. 그들은 마치 오직 한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오래된 맛집 같았다. 선명하고 깊은 맛. 반면 에이전시와 인하우스를 거치며 온갖 종류의 디자인과 퍼블리싱, 프론트엔드 개발을 오갔던 나는, 국적 불명의 퓨전 요리 같았다.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디자인 팀에서는 코드를 안다고 신기해했지만,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전히 섞이지 못했다. 어느 쪽에도 발을 깊이 담그지 못한 채, 이 애매한 위치가 커리어의 실수는 아닐지 오래 고민했다. 결국 내 정체성을 '잡탕'이라 인정하기로 했다. 일종의 자조이자, 스스로를 향한 씁쓸한 위로였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어 야생에 던져지고 나니,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걸 체감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알게 된 비슷한 처지의 개발자, 디자이너들과의 커뮤니티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디자인만 파던 사람이 마케팅 용어를 공부하고, 개발만 하던 사람이 기획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다들 비슷한 낌새를 감지한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 내가 가졌던 '디자인과 코딩을 동시에 한다'는 조합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AI가 시안을 뽑고, 코드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며칠 밤을 새워 고민한 구조가, 프롬프트 몇 줄로 비슷하게 구현되는 화면을 보며 묘한 허탈감을 느낀 적도 있다. 한때는 내 강점이라 믿었던 '하이브리드 능력'이, 어느새 기본값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
어제의 무기가 오늘의 고철이 되는 시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다시 '잡탕'의 본질을 들여다봤다. 버려야 할 결함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할 재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AI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내지만, 선택과 책임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기능의 시대는 서서히 지나가고, 조율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나를 깊게 파는 것보다, 흩어진 요소들을 연결하고 맥락을 만드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획'을 배운다. 그리고 그 기획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기획이란 결국 머릿속의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글쓰기는 무엇을 만들고 버릴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게 만드는, 가장 느리면서도 정확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AI라는 맹수를 다루기 위한 채찍질 훈련에 가깝다.
디자인이 시각적 언어이고 코딩이 기계적 언어라면, 글쓰기와 기획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맥락의 언어다. AI 시대의 생존자는 가장 코딩을 잘하는 사람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아닌, 가장 잘 질문하고 판을 짜는 사람일 테니까.
나는 여전히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크게 불안하지 않다. 여러 재료가 섞여야 비로소 맛이 나는 요리처럼, 디자인과 기술, 그리고 기획과 글쓰기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고 있다.
뾰족한 송곳은 찌르기에 좋지만, 변하는 세상을 담기엔 그릇이 더 유용하다. 지금의 나는, 완벽한 도구라기보다는 아직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그릇에 가깝다. 이 선택이 옳은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의 환경 속에서 내가 택한,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