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 롱디 저주에 걸린 여자의 연애 보고서
20대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이제는 20보다 40이란 숫자가 더 가까운 우리들은 이야기 주제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주로 이직, 직장상사 욕, 대인관계, 유명한 맛집의 매출 추측하기, 가끔 피부과 시술과 투자 얘기.
그리고 이야기가 잠시 소강될 타이밍이면 추억팔이 타임을 갖는다. 서로의 흑역사를 들춰내며 낄낄대다가 결국 과거의 연애 얘기로 빠지는 건 공식 같은 순서다. 나에게는 그들에게 수여 받은 '롱디 전문가' 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롱디의 저주
돌이켜보니 내 연애에는 GPS가 필수였다. 물론 내 연애사가 전부 이런 건 아니지만, 내 연애는 주로 비행기 시간, 기차 시간, 통화 가능 시간을 맞추는 일이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도쿄, 심지어 호주, 캐나다까지. 연애를 하면 가까워져야 하는데, 나는 연애할 때마다 멀어졌다.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까지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세 번, 네 번 반복되니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국제 연애 스페셜리스트 과정을 이수한 건 아닐까? 연애가 시작될 때마다 조용히 상대의 여권 유무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에도 또 비행기가 낄 것인가?' 하는 예감이 자주 들어맞았으니 말이다.
떠나보내는 여자의 계보
첫 번째 사례: KTX 요금과 사랑의 방정식
처음부터 지방 출신이란 걸 알았다. 방학 때 서울에 잠시 머물렀는데, 대화 코드가 너무 잘 맞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계속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그의 외모와 개성, 똑똑한 면모에 자꾸만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거리를 두려 하면 할수록 그는 "장거리라도 누나랑 잘 만날 수 있어"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20대 초반 남자의 전형적인 열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KTX 비용은 우리의 작은 로맨스를 허락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례: 워킹 홀리데이와 엇갈린 타이밍
MBTI가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전형적인 모험가 타입이었다. 항상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고, 자기 친구들을 끊임없이 나에게 소개시켜 주려 했다. 그 끝없는 사교성에 정서적으로 지칠 때쯤, 그는 "졸업하기 전에 시드니에 가서 지내볼래"라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금세 적응했고, 나는 스마트폰과 사귀는 기분을 느끼며 괴로워 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화면 속 그는 점점 자유로운 영혼의 수염 장발남이 되어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비주얼에 사랑이 점점 식은 것도 없다고는 못 하겠다.
세 번째 사례: 제3국을 꿈꾸는 사람
외국어 스터디에서 만난 그는 한국 혼혈로, 국적은 다른 나라였다. 왁자지껄한 모임을 나와서,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1:1 언어 교환을 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는 특이했다. 자신의 나라에도, 한국 사회에도 애정이 없어 보였다. 항상 제3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도 현실도피성으로 "나도 지긋지긋한 한국 떠나고 싶다~"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었다.
결국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비행기로 1시간 반 거리. 분기별로 만났고, 나는 그가 티켓을 끊어주면 명절마다 찾아가곤 했다. 1년 정도 이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그가 제3국행을 선언했다. 예전부터 말해왔던 꿈을 실현한 것뿐이었다. "거긴 디자이너의 대우도 훨씬 더 나을 거야. 같이 가서 영어 공부하면서 취업 준비하면 어때?"라고 물었지만, 가족과 강아지, 그리고 이제 안정을 찾아가는 직장이 있는 나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네 번째 사례: 주재원과 30대의 현실감각
지인 소개로 만난 그는 몇 개월 데이트 했을 뿐인데, 갑자기 주재원 발령이 났다고 했다. '또 외국이야?' 이번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30대까지 돼서 또다시 롱디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떠난다고 말하는 순간, 깔끔하게 정리했다.
롤 리버스: 이번엔 내가 떠난 이야기
인생은 가끔 역전의 묘미가 있다. 해외 어학연수를 6개월 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엔 내가 '떠나는 사람'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거기서 같은 학원의 대만 남자애를 좋아하게 됐는데, 나는 사정이 생겨 조기 귀국을 하게 됐다.
마지막 날, 장을 보러 갈 때였다. 그 애가 자기도 살 게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저 한참 내가 쇼핑하는 옆에 붙어있었을 뿐. 돌아가는 길에 그는 아쉬움을 내비치며 다시 올 생각은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아마 불가능할 거라 대답하자 그는 페이스북으로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다. 언젠가 한국-대만으로 서로를 초대할 수도 있을 거라며. 그 말에 두근거리고 설레면서도,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귀국했다.
결국 돌아와서 페이스북 친구는 됐지만 복학하고 현생에 치여 연락은 흐지부지됐다. 그 애는 내가 자고 있을 때 활발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눈을 뜨면 밤새 쌓인 대화들이 도착해 있었고, 내가 답장을 하면 그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느린 속도로 이어지는 대화, 미묘하게 어긋나는 타이밍.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 비행기가 끼는 것처럼,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순간에도 사랑이 시작될 기미가 있었던 걸까?
내가 문제인가?
언젠가 좋은 감정으로 만났던 '전 썸남'이 "몰타가 그렇게 예쁘다며. 거기서 몇 개월 지내면서 영어 공부해보고 싶다"라고 했을 때가 있었다. 겉으론 "와, 좋겠다! 나도 가보고 싶어"라고 호응했지만, 속으로는 '닥쳐'라고 외쳤다.
혹시 나에게 '국경을 초월하는 사랑을 해야 하는 운명'이 새겨져 있는 걸까? 방랑벽 있는 남자를 감지하는 레이더가 내 뇌에 설치된 걸까? 아니면 나와 연애하면 다들 도망가고 싶었던 걸까?
그들이 하나같이 방랑을 꿈꾸던 모험가 기질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반짝이며,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옮기는 사람들. 반면, 20대의 절반 이상을 불안정하게 살았던 나는 안정과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어느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던진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네 연애사는 비행기 표와 함께 시작해서 비행기 표로 끝나는구나."
흘러가는 삶과 계획된 여정 사이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만난 그들은 삶을 계획하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들이었다.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여기 한번 가볼까?"라고 말하는 그런 부류. 사실 나도 어찌 보면 그런 부류에 속한다. 다만 실행을 굳이 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자유분방함과 개방성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억눌린 모험가가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롱디 전문가의 실용적 조언
이쯤 되면 차라리 국제연애 컨설턴트라도 해야 할 판이다. 롱디를 여러 번 겪어본 입장에서 조언하자면:
1. 시차 7시간 이상은 절대 비추다.
누군가는 새벽에 졸려 죽는다. 통화 시간을 맞추려다 보면 어느 한쪽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고, 그는 밤의 생물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누군가가 하품을 참는 것으로 시작했다.
2. 인터넷 환경이 중요하다.
영상통화 중 끊길 때마다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가 싸움으로 번진다. "내가 하는 말 들었어?"라는 질문에 "아니, 중간부터 안 들렸어"라는 답변이 돌아올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3. 기차표, 비행기표 가격을 미리 계산해볼 것.
생각보다 부담된다. 이 비용을 다른 데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통장 잔고는 그들의 여정과 함께 비례해서 줄어들었다.
결국 장거리 연애는 각자의 의지와 생활 방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가끔은, 같은 도시에 머무는 것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롱디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연애가 시작되면 조용히 여권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에도 또 비행기가 낄 것인가?" 어쩌면 다음 연애는 여권이 만료된 사람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