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온천까지
내가 지우펀으로 곧장 가지 않고 금광이 있었다던 광부 마을 진과스에 들른 이유는 딱 하나였다. 광공 식당의 광부 도시락을 사고 싶어서. 진과스는 일제시대에 황금광산이 개발되어 황금을 약탈해 가던 곳이라는 슬픈 식민지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고 한다. 진과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산길을 따라 올라 마을을 구경하고 거의 마지막에 광공 식당에 도달할 수 있는데 거리와 산의 풍경이 정말 근사했다. 흡사 인도의 다질링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지우펀보다 진과스 쪽이 훨씬 인상 깊고 예쁜 곳이라고 느꼈다. 산길을 걸으며 광부 마을에 도착하여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 태자 빈관을 구경 갔다 광산 철도길을 따라 구비구비 걸으며 한가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기도 너무 상쾌하고 타이베이 시내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소박한 시골이 정겨웠다.
광공 식당에서 파는 광부 도시락은 고기반찬이라 고기를 안 먹는 나는 아쉽게도 직접 먹진 못하겠지만 도시락통만도 살 수가 있어서 생선 메뉴를 시키고 광부 도시락만 따로 구입했다. 광부 도시락은 광부들이 일하러 갈 때 준비해 간 도시락괴 유사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하얀 쌀밥 위에 반찬과 큰 닭구이를 올린 식이다. 광공 식당 앞에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30분 정도 기다렸고 나 혼자 홀로 식당 중앙 자리에 앉아 생선 밥을 먹었는데 약간 뻘쭘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때 친구들끼리 와서 즐겁게 식사를 하던 한국인 손님들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먹은 생선 밥은 밍밍하고 그저 그런 맛이었고 그냥 기념으로 먹어봤다 라고 의미만을 두고서 대신 광부 도시락을 손에 넣어 기뻐서 돌계단에 도시락통을 놓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댔다.
지우펀으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정류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도라에몽 풀빵도 사 먹고 길가의 카페도 구경했고 원래 해발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북인도 산골이나 티베트 같은 산골마을에 온 느낌이 살짝 들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한기를 느끼며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버스에 사람이 좀 많았다. 그래도 잠시 한기와 비를 피할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타이베이의 더운 날씨와는 너무 대조적이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지우펀에 도착하자 비를 피해 시장으로 바로 들어갔다. 짖은 안개와 이슬비의 도시 지우펀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문에 방문한 것이었는데 대만의 전통시장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지우펀 시장은 미로를 도는 느낌이라 인상 갚고 재밌었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 걷고 구경하는데 즐겁다기보다는 마음이 급하고 사람에 치인다고 할까. 역시 개인적으로는 사람도 많지 않고 고요한 분위기의 진과스가 한수 위.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 생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었다는 아마이차주관 건물에도 홍등이 켜지지 않아 다시 시장 구경에 들어갔다.
땅콩 아이스크림은 정말 요새 말로 ‘존맛탱’ 그 자체라서 지우펀에서 한 번 맛본 후 계속 생각이 나 타이베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봤는데 결국 못 찾고 딱 한 번만 먹어봐서 아쉬웠다.
쫀득하고 단짠 맛이 어우러 지고 아이스크림이 차갑다 싶을 때 땅콩엿과 아이스크림을 둘러싼 밀전병 부분이 그 차가움을 녹여줘서 먹는 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어릴 적 물건을 파는 곳이 많아 향수에 젖기도 하고 신기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문방구에 가서 조카들 산물도 사고 그럭저럭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어두워졌을 때 다시 샌과 치히로의 아마이차주관을 보러 갔는데 스치루 골목에는 일본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홍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을 때라 너무 어두워 사진도 만족스럽게 찍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웃겼던 건 스치루 골목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흘러나와 봤더니 가오나시 복장을 하고 뛰어다니는 일본 고등학생 때문에 뭔가 흥겹고 귀엽고 재미났다. 그리고 문구점에 가서 가오나시 고리를 하나 구입했다. 대충 한 바퀴 돌아 시장을 다시 둘러본 후 버스에 사람이 많을까 걱정되어 서둘러 버스 정거장으로 가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갈아 타 스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한국 방송에서 자주 봤던 스린야시장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 당시에 나는 위에 병이 있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이 위생적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유명하다던 먹자골목도 생각 외로 짧았다. 지우펀 시장에서 본 물건들은 스린야시장에서도 비슷하게 팔고 있었는데 스린야시장 쪽이 더 싸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싼값에 선물을 몇 개 더 구입하고 펑리수 등 먹거리 몇 가지를 대충 사고 내일 일정을 위해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캐리어에는 들어갈 공간도 별로 없는데 펑리수를 2박스나 구입해서 숙소로 돌아가 박스는 모두 버리고 펑리수 낱개들을 억지로 쑤셔 넣으며 타이베이의 마지막 밤에 다시 짐을 쌌다.
그리고 다음 날. 숙소 체크아웃을 위해 숙소 주인이 숙소에 도착했고 집을 점검한 후 체크아웃을 하였다. 집도 만족스러웠고 신라면 등 먹을 것도 넉넉히 챙겨준 숙소 주인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이 날은 타이베이를 떠나 온천이 유명한 베이터우로 이동하는 날. 짐을 들고 지하철 역으로 가다 브런치를 사 먹고 베이터우로 향하는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사실 더운 타이베이 날씨에 온천이 과연 필요할까 생각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이 지역을 대만에서의 마지막 여정지로 고른 이유는 다음 날 중국으로 넘어가는 배가 있는 항구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베이터우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아기자기한 지하철로 40분 정도 달리니 베이터우에 도착.
베이터우 역 안의 기념품 판매소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아마이차주관을 그린 에코백이 예뻐 친구 꺼 1개 그리고 내 것 1개 총 2개를 구입했다 (결국은 조카한테 내 가방은 뺏기고 말았지만 열심히 들고 다니는 모습에 뿌듯했다).
오늘 묵을 호텔은 개인 욕실에 온천수가 나오는 호텔로 값은 7만 원 정도에 베이터우에서는 가장 싼 호텔이었지만 대신 저녁 6시 이후 체크인이나 호텔로 가 가방만 맡기고 내려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에 들러 어묵꼬치를 사 먹고 동네를 구경하러 갔다. 간간히 비가 내리기도 하고 온천하기엔 안성맞춤인 날씨라서 그런지 어묵이 정말 맛있었다.
먼저 온천으로 유명한 지열 곡 쪽으로 쭉쭉 올라가면 온천박물관도 만날 수 있고 시립도서관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포켓몬 게임이 한창 유행하고 있던 때라 시립도서관 주변에서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어서 나도 그 게임을 다운받아봤는데 데이터가 남아있지 않아 와이파이 없이는 게임이 불가능해 아쉬웠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 포켓몬 게임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지열곡에서는 너도 나도 온천을 배경으로 셀카 찍기에 바빴다. 온천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후끈후끈하여 갑자기 더위가 몰려온 기분이었는데 온천 특유의 향에 치유되는 기분도 같이 들었다.
온천 구경 후 숙소 근처에서 샤부샤부로 저녁을 먹었다. 직접 끓여서 먹는 방식이 아닌 뜨거운 돌솥에 나오는 식인데 아무래도 직접 끓여서 먹는 편이 훨씬 맛있고 먹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채식 메뉴가 있어서 유부 샤부샤부로 골라서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이 되어 예약한 호텔로 올라갔다. 가격은 호텔 사이트에 있는 객실 내에 온천이 나오는 욕실이 있는 호텔 중 제일 쌌지만 리뷰가 낮아서 많이 걱정이 되었다. 웹상에서 본 것보다 호텔 정원도 예쁘고 청결해서 놀랐다. 왜 리뷰가 낮은 걸까...
사실 나는 혼자 호텔에 들어가서 그렇지 만약 2명이 호텔로 들어갔다면 아마 놀랐을 법도 할 것 같았다. 왜냐면 침실 뒤편에 있는 욕실이 유리라서 욕실 안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문도 유리라서 완전히 닫히거나 방음처리가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부부 사이나 아주 친한 친구사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런 호텔에서 지낼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흔한 블라인드도 없이 그냥 통째로 유리. 리뷰가 안 좋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화장실이 완전히 막히지 않아 방안이 약간 습한 기운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몰랐다. 방안에서는 온천 특유의 유황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어차피 혼자라서 이러나저러나 일단 호텔방 안에서 혼자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서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 반대라서 나중에 호텔 리뷰도 아주 후하게 남겼던 기억이 난다.
욕실에 있는 개인탕은 대리석 같은 돌로 만들어져서 더욱 그럴싸했다. 탕 자체도 큰 데다 온천물도 콸콸 아주 뜨겁게 나와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피부가 정말 뽀송뽀송 보드라워지는 걸 느꼈다. 진짜 온천물이었다. 일반 온천처럼 물이 고여있지 않고 그냥 목욕탕처럼 기존의 물을 다 빼고 새로 채울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물론 날씨가 온천을 할 만큼 아주 춥거나 하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으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이날 밤은 푹 씻고 내일 아침 8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짐을 싸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만 걱정되는 게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강한 바람. 과연 내일 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계속 웹사이트로 들어가 업데이트되는 뉴스를 확인했다. 많은 배가 캔슬되었는데 내가 예약한 배는 그런 소리가 없어 캔슬이 되지 않았나 보다 하며 안심을 하고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익숙하지 않은 길 때문에 택시까지 타고 갔던 Keelung 항구에서는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모든 배가 캔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온천 호텔도 이미 체크아웃을 한 상태라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배표 환불과 다음 배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열차를 타고 타이베이 시내로 나와 배표를 파는 CSF 페리 사무실로 갔다. 배표는 100프로 환불을 받았고 다음 배는 아직 언제 뜰지 확답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날 저녁에 중국으로 가는 느린 배가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황급히 열차를 타고 1시간에 걸쳐 Keelung 항구로 되돌아갔다. 오후 2시 반에 도착한 Keelung west ferry terminal에서는 아직 배표를 팔고 있지 않았다. 당일 배표는 저녁 5시경에 판매한다고 했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너무 걱정이 되었다. 무거운 캐리어는 항구의 짐 보관함에 맡겨 놓고 나와 혹시 배표가 매진될까 걱정이 되어 근처 Tourist information center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역시 말이 잘 통하지 않자 선박회사로 직접 통화하게 해 주어서 영어가 가능한 직원과 그날 밤 9시 50분에 출발하는 베의 비즈니스 침대를 예약할 수 있었고 저녁 7시 반부터 표를 직접 가서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표도 예약했고 일정대로 오늘 중으로 타이베이를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허기가 져서 근처 식당을 돌아보던 중 운 좋게 1인 샤부샤부를 하는 식당을 찾게 되었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샤부샤부가 될 이 텅 빈 체인점에서 5000원가량의 버섯 샤부샤부를 시켰다. 맛살과 어묵도 들어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마지막 식사가 되어 주었고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스타벅스에 앉아 내가 예매한 타이베이에서 Matsu까지 가는 배에 대해 조사했다. Matsu 대만 끝에 있는 섬으로 이 섬에 도착해서 다시 중국 Fuzou의 Mawei로 가는 배의 표를 구매하고 갈아타야 해서 조금 복잡한 일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중국 Fuzou로 가는 배가 끊기거나 표가 매진되는 상황이 된다면 Matsu 하루를 묵어가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섬에 대한 정보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외국인들이 여행하는 섬은 아닌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스타벅스를 나와 이리저리 서성이다 보니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고 나는 다시 슬슬 항구로 들어갔다. 항구 입구에는 거대한 크루즈 선이 있었고 타이타닉을 떠올리며 나도 저 배로 편하게 그냥 한국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꿈에 젖었다. 그리고서 크루즈 가격을 알아 보았는데...... 역시 꿈도 못꿀 가격이었다.
7시경 다시 들어간 항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한참 그냥 기다리다가 앞에 있던 대만 여자애에게 여기서 표를 사는 게 맞냐고 물어보니 일단 번호표부터 뽑아야 한다고 해서 황급히 그 여자애와 함께 번호표를 뽑아서 항구 구석에서 우리 번호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 여자애는 영어를 잘했다. 친구와 함께 Matsu섬에서 낚시를 하러 간다고 했는데 그 여자애의 친구는 나중에 배에 올라탈 때 즈음 볼 수 있었다. 사실 친구가 아니라 남자 친구 같기도 했다. 생각 외로 너무 사람이 많아서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현재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떨어댔다. 내가 비즈니스 침대를 예약했다고 했더니 이코노미도 충분하다고 하여 용기를 내 표를 다시 이코노미로 바꿔서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에서 배만으로 넘어올 때 뱃멀미가 너무 심했어서 이번엔 편하게 가보자 하며 비즈니스 침대를 예약했던 거였는데 결론적으로 이코노미 침대로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배표를 손에 넣었고 나는 그 대만 여자애와 그녀가 기다렸던 친구라던 남자와 함께 대만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가 위치한 섬인 Matsu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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