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떠나 중국-한국까지 육로로
밤 9시경, 대만 Keeluong west 터미널에서 드디어 중국으로 가는 배가 있는 Matsu행 배에 오를 수 있었다. 터미널에서 만나 수다를 떨다 친해진 대만 여자애를 따라 8만 원을 주고 산 이코노미 침대는 역시나 기대만큼 인상적이었다. 배는 조금 작은 느낌이던 데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배를 타고 왔을 때 심하게 멀미한 기억에 급히 멀미약까지 털어 넣고 긴장의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대만 여자애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줘서인지 큰 힘이 되어 다행히 용기를 내며 배에 올랐다.
이 배를 조사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코노미 다다미 침대.
이 다다미 침대는 이코노미 침대칸에만 있어서 처음에 예약했던 폭신한 비즈니스 침대에서 잤더라면 아마 이 경험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다다미 밑에는 다행히 매트리스가 있어 크게 딱딱하진 않았다. 어느 서양인의 블로그에서 먼저 발견했던 이 신비로운 침대 스타일을 그는 찬양하듯 묘사해 놓았고 나도 내심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아마 서양인에겐 신비로움을, 나 같은 동양인에겐 친숙함과 귀여움 정도를 선사해 주지 않았을까. 대만-중국을 오가는 배는 대만 배라서 그런지 배 전체가 아주 깔끔했고 승객들도 대만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조용하고 깨끗했다. 왁자지껄했던 중국배와 다르게 고요해서 구경거리가 많지 않고 심심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배가 출발하기 전 배를 탐색해보니 샤워실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단한 세면대와 화장실만이 보였다. 8-10시간 정도 걸려서 그런 건지 아님 도착시간이 이른 아침이니 도착지에 가서 씻으라는 것인지 나처럼 당일 오후 중국 가는 배로 갈아타야 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웠다. 설마, 았겠지.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봐야지 했다. 이 배는 싼값에 좌석을 구매해서 갈 수도 있고 매점도 조그맣게 있어서 컵라면 등을 살 수 있다.
저녁 10시가 되어 배가 출발하고 나는 배 탐험을 멈추고 간단히 씻고서 침대에 누웠는데 배는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움직여서 뱃멀미고 뭐고 알 새 없이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다음 날 아침 6.30분. 도착시간은 8.30분이지만 샤워를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 것인데 역시 다시 찾아봐도 샤워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결국 대충 세수와 양치만 하고 간판에 나와서 구석 벤치에 앉아 졸린 눈을 하고는 바다를 구경했다.
대만 여자애도 일찍 일어났는지 친구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어 내가 친히 둘의 사진을 찍어주고 둘 사이를 방해하기 싫어 다시 구석으로 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Matsu는 여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홀수날에는 먼저 Dongyin섬에 갔다가 Nangan섬으로, 짝수날에는 Nangan섬부터 들렀다가 Dongyin섬에 간다.
나의 목적지는 Nangan섬인데 그 날은 홀수날이어서 운이 나쁘게 먼저 Dongyi섬에 들렀다가 2시간이나 더 가서 Nangan섬에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배는 먼저 Dongyi섬에서 멈췄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리거나 타진 않았다. 그리고 Nangan섬까지 가던 그 2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빨리 중국 가는 배로 갈아타고 중국 호텔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
느리게 2시간이 흘러 드디어 Nangan섬에 도착해서 대만 여자애와 그녀의 친구와 작별인사를 한 후 다시 중국으로 가는 배표를 사기 위해 서둘러 매표소를 찾았다.
그런데 이 섬은 대만의 국경 같은 역할을 하는 섬이라 그런지 군인들이 많았고 이곳은 분명 자유로운 대만인데 마치 중국 같은 느낌이 들어 괜히 겁이 나고 뻘쭘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대만의 아름답고 한적한 섬이라서 다음에 들르게 되면 꼭 하루 이틀 머물다 가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표는 오후 1시부터 판다고 하여 일단 먼저 예약을 하고 남은 4시간을 때우기 위해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섬 내 버스가 있었는데 도대체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와서 버스 타기가 애매하여 걷기로 했다. 짐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캐리어를 끌어대고 언덕길을 넘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바다는 에메랄드 빛에 한적하고 아름다운 섬. 우기에 비수기라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바다색과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신기한 것은 표지판마다 갈매기 상을 올려 두었다는 것이었다.
걷다가 한적한 절도 올라갔다 하다 마침내 섬마을로 들어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 항구로 돌아갈 때는 다행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1시가 되어 배표를 샀는데 고작 2시간만 타면 되는 배가 10만 원가량에 허름하기 그지없어 왠지 이건 바가지다 싶었다.
편의점에서 어묵을 한 컵 하고 혹시 몰라 다시 멀미약 한 알을 털어 넣었다. 출항 30분 전에 배에 오를 수 있었고 좌석은 따로 지정되지 않아서 멀미가 덜할 갑판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도 많지 않고 배 안에는 선장실 옆에 무료 생수도 있어 배에 오르기 전에 편의점에서 샀던 생수가 짐스럽게 느껴졌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배는 순조롭게 항해했다.
배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바다색은 에메랄드 빛에서 밍밍한 색으로 변해갔고 왠지 친숙함을 주면서 (동시에 지루함도) 마음이 편해졌다. 2시경에 출발하여 그렇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2시간을 달리고 달려 중국 공안이 서 있는 게 보이면서 배는 4시경 중국 땅인 Fuzhou의 Mawei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긴장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입국절차를 마치고 나와 항구를 나서니 가짜 택시들이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항구가 시내와는 멀어서 버스로는 2시간이 걸리고 택시로는 40분 정도 걸릴 예정이었다. 중국인들은 모두 가짜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나는 바가지 쓰기도 싫고 협상하기도 귀찮아서 왼쪽으로 쭉 걸어 나가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Fuzhou역으로 가는 버스가 서는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아 계속 쭉쭉 걷다가 마침 보인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서길래 급한 마음에 방향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타는 바람에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30을 가다가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 타 되돌아와서 Fuzhou 역까지 가는데 3시간이나 걸리고 말았고 그러던 중 길은 이미 어두컴컴하게 변해 있었다. 이제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야만 했다. 이때 정말 얼마나 헤매었는지...... 캐리어를 끌고 어둡고 컴컴한 다리 밑을 2-3번씩 오가며 호텔을 찾아가느라 겁도 먹고 너무 피곤해서 호텔을 포기하고 눈 앞에 보이는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설마 여기는 아닐 테지 하며 지나쳤던 고층 아파트가 다시 보였고 별 기대 없이 경비 아저씨에게 주소를 내미니 이곳이 맞다고 한다. 호텔은 이 아파트의 10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아파트의 방 몇 개를 빌려서 운영하는 식이어서 간판도 없고 그래서 더 찾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보증금 100원에 체크인을 마치고 호텔에서 팔던 중국 컵라면을 들고 방에 들어가 물을 끓이고 우선 컵라면부터 허겁지겁 먹었다. 보증금 영수증을 꼭 갖고 있어야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여권 사이에 소중이 끼웠다. 그래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서 조금 마음이 놓이면서 그날 밤은 정말 너무 피곤하여 창밖의 야경만 잠시 바라보고는 따뜻하게 샤워를 마친 후 어디 나갈 생각도 못한 채 바로 잠에 들고 말았다.
다음날, 11시쯤 다행히 보증금을 잊지 않고 받고서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푸저우 복주 북역으로 갔는데 전광판에 내가 탈 기차가 안 보여서 물어보니 남역에서 타는 거라는 거라기에 나와 같이 북역으로 잘 못 온 사람들을 따라 허겁지겁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걸려 남역에 도착해 무사히 기차를 타는 데 성공했다. 그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택시를 타야 하나 어쩌나 하다가 짐을 잔뜩 들고 남역행 버스를 타는 아저씨를 따라 버스를 탄게 다행이었다면 다행이었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짐 검사와 여권 검사, 표검사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알기에 일부러 여유 있게 도착해서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던 것 같다.
상하이에 도착해서 바로 지하철로 난징동루로 갔는데 너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김밥과 오뎅으로 배를 채웠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난징동루 한복판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그나마 가격이 저렴하여 리뷰가 그리 안 좋음에도 예약해 버렸다. 상하이는 너무 큰 도시라 호텔 예약을 잘못하면 상하이 외곽, 그러니까 상하이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2시간도 더 걸리는 지역에서 이동시간으로 하루를 허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 관광을 하기 위해 왔는데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아 경기도나 인천의 완전 끝에 호텔을 예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 길치인 나는 호텔을 찾는데 헤매어서 호텔 근처를 계속 왔다 갔다 하다가 혹시 저 길이 아닐까 하고 기대 없이 걸어갔다가 우연히 호텔을 찾게 되어 정말이지 한시름을 놓았다고 할까.
어제 대만에서 오는 배를 타고 중국에 도착해서 하룻밤만 지내고 바로 다시 4-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상하이에 와서 길까지 헤매고 짐은 짐대로 무겁고 조그마한 호텔 로비에 소파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몸을 털썩하고 기대듯이 눕고 말았다. 내가 예약한 방은 호텔에서도 가장 싼 싱글룸이었는데 화장실이 딸린 고시원 느낌의 방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던 방이 이틀 밤을 머물러서 그런지 나중에는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고 매일매일 룸 클리닝까지 깔끔하게 해 주어서 아주 만족스러워 그다음부터 상하이에 머물 때면 늘 이 호텔방을 예약했다.
체크아웃 후에 난징동루로 바로 구경하러 나갔는데 난징동루에서 지하철을 내렸을 때만 해도 대낮같이 밝았던 날이 호텔을 찾느라 헤매는 동안 어느덧 어두워지고 난징동루에도 하나 둘 불이 켜져 그야말로 장관을 만들었다. 역시 대륙이라 모든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데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눈이 부셨다. 게다가 맛있는 먹거리들 때문에 눈도 너무 즐겁고 무엇을 사 먹을까 여러모로 많이 고민을 하면서 시내 구경에 빠졌다. 우선 예전부터 좋아하던 팥이 들은 칭똰을 줄을 서서 샀다. 이 떡은 생김새는 우리나라의 절편 안에 팥이 들은 떡 같아 보이지만 쫀득함 보다 물컹이는 느낌이 강하고 팥소도 그다지 달지 않다. 우리나라 절편이 훨씬 내 입맛엔 맞는다.
거대한 망고주스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데다 양도 너무 많아 포기하고 상가에 들어가 중국 전통 사탕과 과자 등을 구매한 후 호텔 방에 들어가 간식을 먹으며 쉬다 잠에 들었다.
다음날, 난징동루의 끝에 위치한 와이탄 거리로 갔다. 안개가 껴 있어 동방명주가 희미하게 보이면서 신비롭게 느껴졌다. 2011년에 상하이에 왔을 때 동방명주 쪽으로 건너가 미션 임파서블 3에서 톰 크루즈가 로프에 의지해 날아다닌 건물도 구경하고 했던 기억이 났다. 와이탄 거리를 거닐다 예원 쪽으로 슬슬 걷기로 했다. 예원은 뭐랄까 도심 속의 전통이 느껴지는 곳이랄까. 하지만 관광지이고 중국의 특성대로 예원 안은 상가와 식당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예원 주변의 현지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재미난 동네 같다.
예원의 남상 만두점은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두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예전에는 게가 들었다던 샤오롱바오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느끼하고 숙소 앞 식당에서 먹은 만두가 더 맛있다고 같이 여행한 친구와 똑같은 평을 내렸었다.
이번엔 빨대로 만두 속 육즙을 마신다는 셰펀관탕바오가 나와서 나도 줄을 서 20원을 주고 만두를 받았다. 사람들이 남상 만두점 앞에 옹기종기 앉아 빨대를 빨고 있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예원의 상가를 구경하다 너무 관광지스럽기만 한 풍경에 질려서 현지인 거리로 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호텔이 있는 동방명주로 걸었다. 내일은 다시 지난 (제남)으로 이동해야 해서 아쉽지만 이 날이 상하이의 마지막 밤.
오랜만에 대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니 편안하고 먹거리가 많아서 즐거운데 다시 떠날 생각에 아쉬웠다. 상하이에서 처음 본 브랜드인 Pull&Bear에 들어가 니트와 가방을 샀다. 중국의 맥도널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2016년 기준)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2-3개월마다 바꿔가며 판매를 하는데 전에는 흑임자 맛과 망고맛을, 이번에는 버터맛을 팔아서 먹어봤는데 느끼할 줄 알고 망설일 이유가 없이 맛있다.
아쉬운 마음에 와이탄으로 이동하여 야경을 보았다. 와이탄에서 동방명주 쪽을 보면 우주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방명주 꼭대기에 커피숍이 있다지만 부자 여행자가 아니기에 그냥 역시 구경만 실컷
다음 날이 되어 다시 기차를 타고 4시간 경을 달려 지난시에 도착했다. 사실 지난에 간 이유는 딱 하나.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탈 예정인 칭다오(청도)에 중간 정도 위치한 지점이라 배가 뜨는 날에 맞춰 익숙한 청도에서 며칠 쉬어가느니 차라리 중간 즈음에서 멈춰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청도까지 기차 시간이나 상하이에서 지난까지 기차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청도에서 배를 기다리며 3일을 더 체류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가 지난에 처음으로 가 본 때였는데 신구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평화로운 도시 풍경에 다음에도 자주 들르게 되던 곳이었다.
지난에 도착하니 가을 날씨로 향해 가는 느낌이 팍 들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에는 방한 용품까지 두고서 있는 모습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가 실감됐다. 한국은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더 추울 것이라는 예상에 가을 점퍼를 하나 구입해야 하나 싶었다. 지난 역에서 예약한 호텔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려 지난의 제일 큰 번화가에 자리한 호텔로 향했다. 목적지에는 잘 내렸는데 내가 묵을 호텔의 출입구가 건물 뒤편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고 건물 생김새가 너무 비슷해 호텔을 찾는데 또다시 애를 먹고 말았다. 간신히 밖에서 스타벅스 와이파이를 잡아 구글 앱 지도를 따라 호텔 리셉션을 찾아내 체크인을 할 수 있었는데 5만 원 안팎을 줘서 그런지 시설이 아주 대만족스러웠다.
부엌은 있는데 주방도구가 없어 리셉션에 내려가 물어봤더니 역시 말이 통하지 않아 직접 그림으로 칼과 냄비를 그려 보여주니 웃으면서 26원을 내면 2-3일 주방도구 대여가 가능하다기에 대여하기로 했다. 잠시 뒤, 주방도구가 방에 도착을 했는데 완전 큰 플라스틱 박스에 커다란 프라이팬에 중국식 웍에 접시에 냄비에 칼에 이건 정말 대가족이 사용해도 남을 만큼의 주방도구를 가져다줘서 다시금 중국의 스케일을 느끼고야 말았다.
고기를 먹지 않는 데다 기름기를 소화하기 힘든 위장병 환자였기 때문에 직접 식재료를 사다가 간단히 해 먹고 건강한 몸으로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고기를 먹지 않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바람에 이제는 중국을 여행하기란 정말이지 힘들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중국에서 먹은 만두만 해도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지경이었는데.
물의 도시라는 지난시에는 전통적인 건물과 사람들 모습에 개발되기 전의 중국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옛날 목조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거리는 가을의 날씨와 함께 따사롭게 느껴졌다. 대명호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뱃놀이도 즐기고 있었고 오랜만에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즐거운 산책을 했다.
지난시에서 이틀 동안 머물면서 베트남을 떠나 계속했던 여행의 피로를 정겨운 풍경들과 자연 속에를 천천히 풀 수 있는 시간을 갖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 지난시를 떠나 2시간의 짧은 기차를 타고 마지막 여정지인 칭다오로 향했다.
칭다오는 이미 완연한 가을이었다. 독일식 지붕 색과 단풍이 거의 일치하는 색으로 어우러지면서 추석 느낌을 준다고 할까. 청도역 근처에 호스텔을 잡았기 때문에 근처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먹고 호스텔로 가서 짐을 맡긴 후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아서) 전망이 좋다는 소어산 공원을 향해 산길을 올랐다.
전망대에 올라서 본 칭다오는 중국 도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럽의 어느 도시를 닮아 있었다. 칭다오의 붉은 지붕은 가을에 봐야 더 예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걸어 내려와 바닷가로 가서 잔교를 구경하고 차를 한잔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길이 너무나 깜깜해서 나는 다시 호스텔 가는 길을 헤매고 또 헤매고 하다가 다행히 길을 찾아 호스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호스텔은 뭐랄까 중국 여느 호텔들과는 달리 서양식 느낌이 물씬 나면서 조금 더 편안함을 주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한국으로 가는 배를 타야 해서 긴장을 하며 짐을 챙기고 또 챙기고하면서 티브이를 틀어 놓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중국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5000원을 주고 오랜만에 서양식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 체크 아웃을 한 후 버스를 타고 칭다오 항으로 출발했다. 칭다오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는 3시 30분 정도에 탈 수 있다. 다만 출발 시간은 6시-7시 사이로 침대를 찾아 짐을 놓고 배를 둘러보고 식사를 하고 하다 보면 배가 출발한다는 방송과 함께 배가 서서히 움직이며 뱃고동이 울린다.
청도항에서 직접 배표를 사서 이코노미 침대가 매진되어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침대를 구매해서 들어갔다. 계속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나 혼자서 침대 5칸이 이 방을 다 차지하는 것인가 하며 기뻐했다가 배가 출발할 즈음이었나 어느 중국인 아주머니가 들어와 수줍게 인사를 건네더니 창문 옆 매트리스에 누워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중국 티브이 방송을 시청했다. 혼자 있으면 무서울 수 있으니 다행이다 라고 계속 세뇌를 하며 시끄러운 그날 밤을 그렇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 칭다오와 인천을 오가는 위동훼리의 식당은 정말 맛있다. 단체식을 5000원가량에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옆으로 이어진 식당에서 밥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다. 나는 그날 저녁으로 돌솥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늘 이 배를 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먹는 메뉴 중 하나로 정말 맛이 있다. 앞 쪽에서는 보따리 상인들이 십여 명 모여 찌개와 회를 안주 삼아 벌건 얼굴로 건배를 하며 왁자지끌 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어 그 모습이 재미있어 그분들을 몰래몰래 훔쳐보며 맛있게 돌솥밥 한 그릇을 해치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간단하게 오뎅탕을 하나 시켜 먹었다. 아침이 되어 하선 2시간 전에 일어나 샤워실로 가보니 아무도 없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욕탕에 들어갔다 나와 샤워를 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채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한국, 1년 3개월 만인가. 1년 2개월은 베트남에서 체류, 그리고 베트남 하노이를 떠나 중국과 대만을 거쳐 총 20일에 걸쳐 육로를 통해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은 이미 초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