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의 제도적 균형
민주주의가 인간 본성 앞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오랜 기간 동안 정치철학, 사회학, 그리고 윤리학의 주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전제하고, 그 불완전성을 제도적 장치와 상호 견제 기제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민주주의 제도 역시 그 안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주체인 인간의 본성과 무관하게 작동하기는 어려우며,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출된 대리인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우선시할 때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보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1. 인간 본성에 대한 전제와 현실
민주주의 이론은 인간이 완전히 이기적이지도, 완전히 이타적이지도 않은 복합적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판단능력, 사회적 책임감, 명예심, 인류 전체의 공익에 대한 추상적 고려 등 다양한 동인을 갖는다. 이러한 복합적 본성을 제도의 장치와 문화, 교육을 통해 공익을 추구하도록 방향 짓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목표로 하는 바이다.
2.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구조적 문제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에서 선출된 공직자들은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생존, 정파적 이익, 개인적 야망을 결코 무시하기 어렵다. 이는 선출 과정에서의 자본, 미디어, 정당 기구의 영향력, 이익집단의 로비, 제도적 부패 가능성 등 구조적 제약으로 더욱 복잡해진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제시하는 해법은 자주적 선거, 권력분립, 언론 자유, 시민사회단체의 활발한 활동, 정치적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다양한 의견의 제도적 반영 장치 등을 통해 이러한 사익 추구 행위를 억제하고, 대리인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는 것이다.
3.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주요 원리 중 하나는 권력의 분산과 견제이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간의 권력분립과 상호 감시는 인류 정치사에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교훈 아래 고안된 기제이다. 이밖에도, 언론의 자유는 권력자들의 사익 추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시민사회와 NGO, 노동조합, 전문가 단체 등은 정책 결정을 감시하고, 필요할 경우 공론화 및 대안 제시를 통해 선출직 공직자들이 무분별한 이익 추구에 함몰되는 것을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다.
4. 문화적·교육적 요인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참여 문화,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정치적 교양(Education)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중이 단기적 이익에 좌우되기 쉬우며, 대의인들 역시 지속적인 ‘장기적 신뢰’보다는 ‘단기적 득표’에 집착할 수 있다. 반면, 민주주의가 오랜 기간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시민들이 정치적 식견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춘 사회에서는, 대리인들의 사익 추구가 어느 정도 억제되고, 공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도 유리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시민들이 선출직 공직자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선거를 통한 교체를 실행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즉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이 성장할수록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5. 민주주의의 자기교정 능력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완결된 상태라기보다 끊임없이 자기교정을 하는 과정(process)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패, 사익 추구, 비리 등은 어느 사회에나 등장하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는 그러한 문제를 노출시키고 논쟁하고 개선하려는 메커니즘을 내재하고 있다. 선거 주기마다 대표자가 교체될 수 있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여 기존 정파와 경쟁할 수 있으며, 제도 개혁과 법률 정비를 통해 ‘게임의 룰’을 수정함으로써 본성에 기초한 부정적 행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결국, 인간 본성에서 비롯되는 이기심과 사익 추구가 민주주의의 작동을 완벽하게 방해하지는 않지만,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민주주의도 기능 부전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바로 이 인간 본성의 복합성 위에 구축된 제도로서, 적절한 견제장치, 투명성 강화, 정치문화 성숙, 공교육 개선, 시민사회 강화 등을 통해 이러한 자연적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효율적인 집단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실천적 모델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결함 있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최선의 불완전한 제도’로서, 그 작동 여부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성숙, 끊임없는 비판과 개선 노력을 통해 좌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