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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曲線)의 미학

<에세이문학> 2020년 봄호. 초회 추천

by 윤슬log


출근길 라디오에서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흐르는 중이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창문으로 세상을 보고, 네모난 신문과 네모난 가방을 들고 네모난 학교에 가니 또 네모난 칠판과 책상이 나를 반기더라는 흥겨운 노래가사가 잠이 덜 깨 몽롱해하던 내 귀를 사로잡았다. “둥글게 살라”는 어른들의 말과 달리 온통 네모뿐인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깜찍한 노래였다.




생각해 보니 정말 네모가 많은 세상이다. 지금 타고 있는 버스도, 창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 TV, 핸드폰, 지폐 등등. 네모난 문으로 내려 다시 네모난 회사 건물로 들어가 네모난 컴퓨터를 하루 종일 바라봐야 하는 삶이라니. 한편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네모가 아닌 것이 다행이지 싶었다.


그러다 문득 네모나지 않은 것에 눈길이 갔다. 산등성이, 구름, 빗방울을 머금은 연잎과 네 잎 클로버, 봄을 알리는 나비의 날갯짓, 공들여 쳐놓은 거미줄, 바다를 가르는 돛단배와 고래의 푸른 등, 초가지붕 위에 주렁주렁 달린 둥근 박, 촛불, 재재바른 파도, 갈매기의 몸짓과 꼬불낭 꼬불낭 소리를 내는 매미의 허리...


꾸미지 않은 자연의 모습이 그려졌다.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은 이리저리 직선들을 조합해 놓은 반듯한 제품이 많다면, 자연이 만든 작품은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꺾여 둥그스름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물론 이분법처럼 명확히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곡선을 찾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숫자와 종류에 사뭇 놀라웠다. 신기한 것은 다양한 곡선의 이미지를 떠올리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난데도 없고 그렇다고 색이나 형태가 거슬리지도 않았으며 포근함마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사람들은 곡선이 주는 매력을 창작물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배흘림기둥이란 과하지 않은 곡선을 활용해 기둥의 3분의 1 지점이 제일 굵고 위는 아래보다 가늘게 하는 건축기법이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완만하게 솟은 추녀의 곡선과 한데 어우러져 단순하면서도 너그러운 자태를 뽐낸다. 무량수전을 등지고 바라본 소백산의 풍광은 또 어떠한가. 끝없이 이어진 능선과 첩첩이 솟은 연봉들의 부드러운 곡선이 한 폭의 수묵화를 선사한다. 건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눈을 두는 모든 곳에 곡선의 여유가 흘러넘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고유의 ‘태극문양’에서도 아름다운 곡선미를 엿볼 수 있다. 원이 상하의 물결무늬 곡선으로 맞물려있는 태극문양은 위에 붉은색이 양(陽), 아래에 파란색이 음(陰)으로 음양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곡선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례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발견되는데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 ‘삼나무가 있는 밀밭’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역동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현대 미술사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빨려 들어갈 듯 소용돌이치는 독특한 화풍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서정성과 신비성을 극대화시키고 몽환적인 느낌마저 선사한다.



언어에서 발견한 곡선의 이미지도 있다. 나는 순우리말인 ‘아리랑’과 ‘휘영청’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자음 ‘ㅇ’의 발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감도 좋고 그 뜻을 알고 나서는 더 마음이 갔다. 아리랑 경우 해석이 다양한데, ‘고운’이라는 뜻의 옛말인 아리와 ‘님’을 가리키는 랑이 합쳐져 ‘고운님’을 나타낸 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전쟁과 배고픔을 겪은 세대는 아닐지라도 민족의 한이 서린 아리랑 선율은 언제나 구슬프게 느껴진다. 아리랑의 슬픈 곡조와 민요 특유의 꺾는 음, 떠는 음은 허공을 굽이굽이 돌아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굽어있는 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우리말은 ‘휘영청’이다. ‘달빛 따위가 몹시 밝은 모양. 시원스럽게 솟아있거나 확 트인 모양’을 이르는 말로 주로 달의 모습을 표현할 때 쓰인다. ‘휘영청’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자체도 그러하지만 뒤에 수식하는 사물 때문에 곡선의 이미지가 강화되는 것 같다. 손톱달, 눈썹달, 보름달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의 모습은 언제나 둥그스름하다. 반달이 품고 있는 직선도 우리 눈에만 곧게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로 아주 반듯한 직선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휘영청 밝은 달을 볼 때마다 오묘하고 영롱한 자태에 자주 넋을 잃곤 한다.


마지막으로 꼽는 아름다운 곡선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옹알이를 하는 아이의 입, 그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어머니의 젖 무덤, 사랑하는 사람의 반달 눈웃음과 보조개, 꼬부랑 할머니의 허리까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은 탄생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곡선을 거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직립보행을 한다고 하지만 팔, 다리, 척추 어느 하나 곡선이 아닌 것이 없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세련되고 편리한 직선보다는 곡선이 적합하다는 것을 조물주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생태주의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곡선과 나선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획일적인 직선을 피해 예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을 담아낸 것이다. 우리가 평생을 두고 걸어가는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는 인생은 쭉 뻗은 평탄한 길만 계속되지 않는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없이 교차해야 비로소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출근길에 시작된 상념은 퇴근 후 집까지 털레털레 나를 따라왔다. 오늘 하루 만끽한 곡선의 아름다움처럼 그것을 빼닮은 인생의 즐거움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리라. ‘네모의 꿈’ 덕분에 떠올린 여러 가지 곡선의 모습은 참을 수 없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 주었고 세상 속에, 우리말에, 내 몸 안에 숨겨진 곡선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겨 퀸 김연아 선수가 그려낸 우아한 스파이럴은 못 되지만,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만든 큰 하트로 나도 내 몸의 곡선을 한번 뽐내보고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2020년 봄. 계간 <에세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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