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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Oct 01. 2016

캠퍼스의 낭만고양이

고양이를 돌보는 대학생들

가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신촌의 서강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온 그곳엔 따스한 햇빛을 받아 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레오는 햇볕 받으면서 자는걸 좋아한다 (출처:서강고양이모임 페이스북)

남들보다 커다란 덩치에 일명 찹쌀떡이라 부르는 하얀 발을 가진 그 고양이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고의로(?) 퍼질러 앉아서 갸르릉댔는데, 그 자태가 어찌나 늠름하던지 사람들은 밀림의 왕자 '레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인기에 힘입어 레오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졌고, 레오가 밥먹고 하품하고 잠자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백 여개의 '좋아요'를 받곤 했다. 학생들이 앞다투어 간식을 바치는 자, 그의 이름은 레오 킹(Leo King)이다.

레오의 위풍당당한 스핑크스 자세

레오의 인기가 높아질 무렵, 캠퍼스의 고양이를 돌봐주는 단체인 서강 고양이모임(이하 서고모)이 출범했다. 개인적으로 고양이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교내 고양이를 관리하는 단체는 처음이다. 이들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건강을 돌보며 TNR로 개체 수를 관리한다.(TNR: 포획-중성화수술-방사) 물론 정식 동아리가 아니기에 매 학기마다 봉사자를 모집하고 상시로 후원금을 받는다. 



대학, 공존을 꿈꾸다

연세대학교는 산을 끼고 있는 덕에 고양이가 많다. 이전에 개개인이 불규칙적으로 밥을 줄 때는 고양이가 밤중에 울거나 굶주려 쓰레기봉투를 찢고 배설물을 흩뿌려놓아서 학내 구성원 간에 마찰이 많았다.


대학 고양이 단체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급식 시간표를 짜서 정기적으로 밥을 주면 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는다. 중성화 수술을 하면 발정기에 내는 울음소리가 줄어서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고양이와 사람이 큰 마찰없이 캠퍼스를 공유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도 고양이가 있다

밥 배불리 먹고 기숙사 계단에서 세상 편하게 잔다

한국 대학생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난양기술대학교에 처음 발을 디딘 필자를 처음 맞아준 건 다름아닌 기숙사 고양이였다.


난양기술대학교(이하 난양공대)의 고양이 모임은 무려 1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의도 면적의 2/3에 달하는 캠퍼스와 따뜻한 동남아 기후는 야자수와 고양이가 무럭무럭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다. 덕분에 난양공대도 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자 2004년, 학교본부의 주도로 고양이 모임을 만들었다. 주 활동은 밥 주기, 개체수 관리, 다친 고양이 구조, 학교 구성원 교육 및 갈등조정이다.



고양이 돌보는데 천만원?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Cat Management Network (NTU CMN)

오래된 역사 덕인지, 난양공대의 고양이 모임은 비영리단체에 준하는 체계와 전문성을 자랑한다. 전반적인 운영을 하는 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에 고양이를 직접 돌보는 부서와 행사를 기획하는 대외협력 부서가 있다. 부원은 무려 80명을 넘는다. 세상에, 고양이 밥주는 모임이 이토록 크고 복잡하다니, 어쩌면 돈낭비 시간낭비 같기도 하다.


"비영리 활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문적인 의사소통, 기금 마련에 대해 배우고싶다면 함께해요!" 지난 8월 회원 모집 공고.

복잡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싱가폴 학생의 고양이 사랑이 유난해서가 아니다. 난양공대의 고양이 모임은 단순한 동물 밥주기 단체가 아니라 대학생들이 비영리 활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동아리다.


이들은 학교 안에서 이론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각종 단체와 함께 일한다. 1년 전에는 반려동물 물품을 파는 기업과 제휴를 맺어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들의 홍보를 통해 기업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1500명의 팔로워가 생기면 고양이 사료 150kg을 받는 내용이었다.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한동안 사료걱정은 하지 않게됐다.

동물매개치료단체와 함께 진행한 고양이 테라피 행사. 두시간동안 입장료 등으로 36만원을 벌었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병원비로만 760만원이 들어갔지만 같은 기간에 행사와 크라우드 펀딩, 후원을 통해 무려 795만원의 펀드레이징에 성공했다. 고양이는 뛰놀고 학생은 세상공부를 한다. 난양공대의 고양이 모임이 특별한건 고양이와 학생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타심만으로 돈을 쓰지도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동물이 인간에 의지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생명이라는 인식을 구성원 모두에게 보여준다.



이타심에 의존하면 위험하다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 대학의 고양이 모임은 대부분 정식 동아리가 아니다. 생긴지 얼마 안됐을 뿐더러 말썽꾸러기 고양이에 대한 학교본부의 인식도 우호적이진 않다. 그래서 운영은 학생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예산은 후원금과 간헐적인 행사 수익금이 전부다.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 대학에선 고양이가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체계 없이 자율성과 이타심에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하다. 과연 학생들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시간을 할애할까? 자원봉사를 하던 학생이 졸업한다면, 예산이 부족해서 사료를 살 수 없다면 고양이는 어떻게 되는가?  짧게보면 살아남지만 길게보면 결국 원점이다. 사람도 고양이도 불안정하다.


한국 대학의 고양이 모임도 이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가 왔다. 다행히 대학의 고양이 단체들이 점점 수익을 늘려가고 정식 단체로 인정받으려 준비하고 있다. 학교본부도 고양이를 골칫덩어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캠퍼스 생태계의 일부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대학의 고양이 단체가 더 체계적으로 조직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서고모가 서강대학교 축제에서 판매한 반지는 센스있는 디자인 덕에 예약이 폭주했다.

서강대의 레오가 인기만점인건 단순히 귀여워서가 아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할 때 기숙사 앞에서 반겨주는 고양이만큼 힐링이 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치며 노래하는 로망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고양이를 쓰다듬는 로망은 이제 생겨났다. 동물과 더불어 사는 캠퍼스를 가꾸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덧) 동물매개치료 : 동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심리치료를 하는 방식. (위키백과, 동물매개치료)


사진 출처

레오 킹 페이스북 페이지
서강 고양이모임 트위터

NTU CMN Annual Report

연세대 냥이는 심심해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대 고양이 추어오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 고양이 쉼터 페이스북 페이지

카이스트 고양이 페이스북 페이지


자료 참고

서강 고양이 모임

- 페이스북 페이지

- 트위터

NTU Cat Management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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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연세대, 길고양이와 공존실험 '함께 살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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