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3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2

by 윤재훈


삶은 여행이다3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2




동해는 눈 시리도록 파랬고 남해의 파도보다 훨씬 사나왔다. 이따금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파도는 내 키를 훌쩍, 넘어가며 소금물을 뿌렸다. 남해에서는 흔하게 보이던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파랑을 일으키며 종일 물이랑만 무심히 오고가고 이따금씩 보이는 어선은 어느 틈에 사라졌다 보였다 요술을 부렸다.

대포항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갯가 시장을 구경하며 뼈꼬시를 할 수 있는 작은 생선 몇 마리를 썰어달라고 하고 나풀거리는 비닐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포장 안은 온기가 있었다. 심수봉의 노래가사처럼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며 막걸리를 마셨다.



정동진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급경사 길을 굴곡이 너무 심했다. 미처 커브를 돌지 못하고 급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자전거가 옆으로 2, 3미터 미끄러져 가다 뒤뚱거리며 다행히 섰다. 순간 아찔했다. 왼쪽에는 어렴풋이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낭떠러지 같았다. 만약 이 밤중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이 길에서.

옥계항을 지나고 묵계항도 지나고 길은 해안선을 따라 어머니의 가르마처럼 끊임없이 나 있었다. 언제부턴가 영동선 철길이 내 옆을 바짝 붙어 따라왔고 들꽃들이 무더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득하게 바닷가로 나있는 철길을 따라 멀리서 기차가 왔다. 사람들은 창가에 붙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서로 손을 흔들며 교감을 나누었다.

삼척, 울진을 지나고 영덕군에 이르러 해안가 시장에서는 노점하시는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대게를 삶아 주면서 가다가 먹으라고 한다. 자전거 앞에 비닐봉지를 달고 가는 나의 행색이 안쓰러웠나 보다. 어느 바닷가에 앉아 두툼한 다리를 벌려가며 한 마리를 맛있게 먹고 그의 고마운 인정을 생각하며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 두었는데, 그만 상해 버렸다.



그렇게 셀 수도 없는 항구를 지나고 해질 무렵 어느 바닷가에 도착했다. 자전거여행자에게 이 시간이 되며 배가 고파온다. 굴풋해져 오는 허기를 달래며 모퉁이를 막 도는데, 남자들 둘 평상에 앉아 바가지에 막걸리와 사이다를 타 휘휘 젖고 있다. 나를 보더니 손짓을 하고 앉자마자 막걸리를 따라준다. 술시, 가장 맛있는 시간, 달게 몇 잔을 마시고 나니 어느 시인의 시귓처럼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먼저 취한다.”

마침내 부산에 도착했다. 남쪽 바다는 다도해(多島海)로 이루어져 있다 육지로 가는 것보다 섬을 건너뛰는 것이 더 빠를 듯하였다. 거제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 섬을 가로지르고, 통영을 지나 창선도, 남해도, 여수, 고흥에서 후배를 만나 며칠 쉬었다. 소록도를 지나 거금도, 다시 배를 타고 금당도, 조약도, 고금도, 신지도 명사십리 길을 지나 마침내 남서쪽의 끝머리 완도에 닿았다.

완도신문에서 나와 갑자기 인터뷰를 하고 추자도로 향했다. 자전거를 끌고 부둣가를 걸어가는데 낚시 복장을 잘 갖춰 입은 사내가 지나가면서 내 모습이 측은했던지 3만원을 쥐어주며 가다가 밥이라도 먹으라고 한다. 사내가 고마워 한참을 돌아보았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제주 입성, 얼마나 오고 싶었던 섬이었던가. 그리고 한 달여, 쉬멍놀멍 제주를 돌았다. 우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동문시장으로 갔다. 희다 못해 눈부신 연한 속살을 가진 한치를 대여섯 마리 사서 방파제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돌샘이라는 곳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한치를 손질해 막걸리에 취하고 있는데 막 시원하게 목욕을 마친 흰머리의 노신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서로 의기가 통해 권커니 받커니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제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였다. 우리는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하고 그분이 호텔을 잡아주었다. 다음 날 아침 그분은 제주도에서 유명하다고 70년 된 해장국집에선가 같이 식사를 했다.

한림항, 모슬포항, 용머리 해변, 올래길이 생기기 전 서귀포 여고 뒤 샛길로 이어지던 바닷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20kg이 넘은 자전거를 들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제주 동쪽 바닷가 끝 성산포에서는 뻘밭에 앉아 낙조만 눈시리게 바라보며 사흘을 보냈다. 건너편 우도 섬에서는 이곳에 정착한 화가를 만났으며. 바다 끝에 찻집이 있었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장사하던 사내, 그는 카약으로 제주도 일주를 하여 이미 매스컴으로 제주도 내에서 유명한 사내였다. 그가 한라일보에 연락하여 다음날 바닷가를 달리다 자전거를 세우고 인터뷰를 했다.

제주도 어느 페밀리마트 앞에서는 파라솔 아래 앉아 캔맥주를 마시던 사내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는 섬으로 귀도하여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는 화가였다. 그날 밤은 그와 함께 취했다.

그렇게 한 달간 쉬엄쉬엄 제주도를 누비고 마침내 떠나던 날, 두어 사람과 방파제 등대 아래에서 만나 이별의 정한을 나눴다. 배에 올라 제주도를 바라보니 마침 섬은 깊은 안개 속에 쌓여있는 듯했다. 꿈인가 현실인가, 묘한 환상이 밀려왔다. 여기가 구름 속 천상세계인가, 지금 내가 어디에 서있는가.



이 땅을 한 바퀴 돌고나니 우리 국토의 전체 모습이 그려졌다. 어느 강가, 어느 산모롱이에 이 계절쯤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그런데 우리 국토는 너무나 좁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계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좀처럼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시간이 15년쯤은 되었을까, 그렇게 지천명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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