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2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1
참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였지만 전국일주를 떠날 생각을 하니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마을 강가, 논길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몸을 자전거 여행에 맞췄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떠났다. 아파트 앞에서 바라보는 나의 행색은 초라하고 누추했다. 자전거 뒤에 전국일주 코스가 달린 노란 깃발을 꽂고 안장 위에 가방과 텐트를 올리고 물 두어 통 바디에 묶고 타이어 쥬브 하나, 패치 등 간단한 수리 공구를 실고 떠났다.
세상은 봄의 중심에 들어 와글와글했다. 강가를 따라 눈부시도록 흰 벚꽃과 노란 꽃의 행렬들, 고개 들어 바라본 앞산에는 진홍빛 진달래가 지천이였다. 한가롭게 하늘을 나는 백로와 이제 아예 텃새가 되어버린 천둥오리 떼들. 중랑천을 따라 올라온 잉어들은 얕은 물에 떼를 지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자연은 자유로웠다. 이제 나는 이 길을 따라 오랫동안 페달을 밟을 것이다. 오직 앞으로 앞으로.
따뜻한 봄볕을 따라 강가로 나온 사람들은 많았다. 다리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장기를 두는 사람, 그 주위로 빙 둘러서서 이따금씩 훈수를 두는 사람, 다리 안쪽으로는 삼삼오오 앉아 화투를 치고 있다. 누군가는 자리를 깔아놓고 약간의 자릿세를 받고 잔돈도 바꿔줬다. 아주머니 한 분은 그 옆에서 커피와 막걸리 팔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길은 부용천을 벗어나 중랑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의 다툼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살곶이 다리를 지나고 서울숲도 지났다. 우리 민족의 젖줄 한강이 펼쳐졌다. 이 강을 따라 걷던 1,300리길이 생각났다. 동쪽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수많은 인걸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리 고개를 넘으니 한민족의 역사가 떠올랐다. 이 언저리 어디쯤 잠들어 있을 사람들이 스쳐갔다.
한강 변 어디쯤 시멘트 위에서 텐트를 쳤는데, 5월의 땅바닥 찬기운은 아직 뼈를 시리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위는 보리밭 천지였다. 라면을 끓이면서 바라본 아침 한강은 앞으로 가야할 여정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저절로 허벅지에 힘이 갔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 새록새록 다시 생각나는 1300길의 여정.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자 길은 한가해졌다. 시골의 풍경 속으로 달리는 이 땅의 자연은 하나의 캠퍼스였다. 그렇게 남한강과 북한강을 번갈아 지나고 날이 저물며 자전거를 세웠다. 물을 쓸 수 있는 곳 옆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었다.
천천히 출발했다. 급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길은 설악산으로 연결되고 헉헉거리며 미시령을 넘었다. 미시령 고개 터널을 넘어갈 때는 공포스러웠다. 터널은 좁고 자전거 도로는 없었다. 악을 쓰며 쫓아오는 것 같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타이어 타는 냄새, 자전거 뒤에 조그만 경고등이 하나 깜박거렸지만 그것은 줄지어 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식은 땀 나게 터널을 지나니 이제 내리막이었다. 신나게 달리면서 보니 등 뒤로 울산바위가 우뚝하게 서 마치 나를 따라오기라도 하려는 듯했다. 산신령의 부름의 받아 금강산을 가다가 여기에서 발이 묶여버린 바위.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비릿한 갯내음이 코끝에 스치고 드디어 바다가 나타났다. 그 향긋한 갯내음이 해방감을 더하게 했다.
나는 남해안 바닷가에서 태어나 지금은 내륙 깊숙한 의정부에서 산다. 그러니 항상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 코스도 우리 국토의 바닷가만 따라 ㅁ자로 돌 계획이었다. 영랑호를 지나고 속초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