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1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by 윤재훈

삶은 여행이다1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젊은 날 내 여행의 시작은 산이었다. 산에 오르면 마냥 즐거웠고, 멀리서 산 빛만 보아도 새로운 호흡으로 생기가 돌았다. 산새처럼 그 품에 들면 굳이 공자님의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를 들먹이지 않아도 생각이 숙성 되는 것 같았다. 정상에서 손차양을 하고 탁 트인 들판을 바라보면 산바람은 그렇게 살라고 내 아미를 문지르고 가는 것 같았다.

산이 웃는다. 그 풍경에 투영된 사람들의 얼굴도 즐거워 보인다, 그렇게 산에 푹 빠져 살았다, 불혹의 나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동서남북, 그렇게 갈증 난 사람처럼 우리 국토의 산을 대부분 올랐다. 그리고나니 이번에는 내 몸의 혈맥처럼 이 땅을 따라 흘러가는 강 길이 궁금해졌다, 내 삶의 안식처가 되는 이 땅의 강가에는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어떤 사람들이 살이 붙이고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걸었다. 맨 처음 시작한 길은 우리 민족 최대의 젖줄 한강이었다, 나는 그 비원의 1,300리 길을 따라가면서 이 땅에 역사(歷史)가 기록된 이래로 왜 가장 치열한 전쟁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왜 고대시대부터 이 강가로 흘러온 인류는 이 땅에 정착을 하면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눈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그 저간의 사정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느 벽안(碧眼)의 사람이 당신의 조국에 대해 물어온다면 그 아름답고 시린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 해 줄 것인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우선 한강의 발원지로 가는 것이 급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오대산 상원사 서쪽에 자리한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금대산 <검룡소>가 대세다.



그곳들은 서로 멀지 않는 지척으로 우리 민족의 등뼈 태백산맥에 자리잡고 있다. 봄눈을 헤치며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꽃눈을 깨우며 찾아간 산속, 그곳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이 땅의 푸른 나무들의 발바닥을 적시고, 농부의 거친 보습날과 수많은 마을의 저녁연기를 상선(上善)약수처럼 지나며 흘러갔다.

그렇게 굽이굽이 수많은 마을과 산줄기를 헤치며 흘러가는 물은 헤아릴 수 없는 지류와 몇 개의 큰 강을 품으면 더욱 그 품새를 키워 나갔다.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최대의 젖줄, 가장 많은 국민들이 붙어 삶을 유지하는 그 물줄기는 마침내 김해를 지나면서 한탄강과 몸을 합쳐온 임진강과 만나, 애기봉 아래 서해의 거친 물살과 만나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며 만났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시골이 골목길을 걷다가 담 너머로 마주치던 농부의 웃음 띤 모습, 어느 길가의 넘어져 있던 앵두나무에서 입이 붉도록 열매를 따먹고 서로의 붉은 입술을 보고 마치 굴뚝에서 나온 성자처럼 웃던 모습. 어느 산모롱이 풀숲에서 지천으로 숨어있던 산딸기와 오디. 어둠 속 논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소를 몰며 돌아갈 줄 모르던 농부도,



그리고 내친 김에 (섬진강 530리) 남도길을 걸었다. 섬진강 길을 따라 환장하도록 아리아리하게 피어나던 희고 노란 진홍빛들의 꽃, 천지가 화엄의 세상이라고 눈앞에서 세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미친 듯이 머리 위에서 팡팡 터지던 지리산 10리 벚꽃길, 혼질할 듯 그 향기에 취하고. 해거름 구례화엄사나 천은사 쯤에서 들리던 범종 소리는 까닭 모르는 외로움으로 나를 몰고 가던 젊은 날.

그리고 이번에는 휴전선 근처에 위치한 한탄강으로 올라갔다. 아득하게 안개에 가려있던 검문소, 초병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우리들을 막았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강을 따라 걸었다. 연이어 나타나는 기암괴석들, 아직 이슬 속에서 혼곤하게 잠든 논밭길을 걸어가며 등산화는 금방 이슬에 젖었다. 그리고 쓸쓸했던 폐사지 기행, 거돈사지, 회암사지, 홍법사지.., 동서남북으로 우리의 국토를 미친 듯이 걸었다. 그렇게 걷고 나니 이번에는 우리 국토의 전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이 땅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풍경 아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막상 정하고 나자 어떻게 갈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자동차로는 가기는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환경실천가이기 때문이다. 20여년 가까이 샴푸와 퐁퐁 등 일체의 세제를 쓰지 않고 있다. 일회용품도 비닐도 가능한 쓰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면 반드시 재활용을 했다. 치약도 사용하지 않고 소금으로 대신했다.

그러니 화석연료를 태우며 내 뒤에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걸어가기에는 우리 국토의 한 바퀴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듯했다. 그래서 생각한 수단이 자전거였다. 그 뒷날 삼천리 자전거를 사고 한 달 동안 동네 주위를 돌았다. 마음은 다급해지고 한 달 후에 마침내 전국일주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