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투어Tour

-한글박물관에서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by 윤재훈

박물관 투어Tour

-한글박물관에서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여 여행길이 약간 걱정이 되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가능하면 실내가 좋겠다는 생각에 박물관 투어로 잡았다.

이촌역에 내려 2번 출구로 가서 지하 계단을 오르기 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을 바로 갈 수 있는 지하통로가 나온다. 특히 어머니 손을 잡고 나선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찬바람 피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게 평지 엑스컬레이터가 나오고 아주머니 한 분이 떡을 팔고 있다. 사람들은 아침을 먹고 나온 탓인지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다. 아주머니의 모습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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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30분 이상 남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한 분 두 분 나오기 시작한다. 초등학고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자매가 두 분 있어 천천히 가며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미리 사전답사를 왔다 간 터라 길들은 낯설지 않다. 총무님이 방과 후 교사가 되어 앞으로 나오기가 힘들다고 하여 우리는 총무님을 새로 뽑았다. 막 10시가 넘어가고 두어 사람이 더 나오니 오늘 가기로 한 16명이 다 모였다.

지하통로를 따라 5분여 걸어 밖으로 나오니 정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커다랗게 서 있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박물관, 문득 올해 갔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이테리의 바티칸 박물관, 스페인의 프라도미술관,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이 떠오른다. 나는 2017년 2차 세계여행을 떠나 16개월 동안 지구의 반 바퀴 정도를 돌다가 왔다.

중앙박물관의 본관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며 지하 1층·지상 6층이며 3개 층으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다. 길이는 404미터이며 최고 높이 43.08미터의 건물이다.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바로 뒷편으로 있는 전쟁박물관까지 걸어가고 싶었지만 미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갈 수 없다고 했다.

박물관 주위의 대부분의 땅은 일제에게서 해방이 되고 70여년 이상 미군들이 점령하고 있는 치외법권지역이라고 하니 약소민족의 서러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나마 지금은 평택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며 머지않아 남산까지 연결햐여 이 지역이 거대한 시민공원으로 변할 거라 한다. 서울 도심 속에 푸른 숲이 일렁거리는 산길을 따라 남산까지 올라가는 꿈을 꾸어본다. 아마도 이 자리에 부대가 자리잡은 것은 물류를 옮기기 쉬운 한강이 바로 근처에 있고 거기에 용산역까지 있으니 수탈의 장소로도 최적이겠다.

박물관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5분여 걸어가면 한글박물관이 나온다. 엑스컬레이터로 바로 오르면 2층이다. 1층은 도서관만 있고 특별한 볼거리가 없으니 2층부터 3층까지 보면 될 것 같다. 오늘은 마침 우리의 모국어인 한글에 관한 전시가 두 가지나 있어 더욱 즐겁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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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물관 안에는 두 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글의 큰 스승>전과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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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큰 스승>전은 성균관 유생들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노력, 그 이후 조선에서 현대까지 한글 발달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근대기에 나타난 작품들의 면면은 옛 향수까지 느끼게 했으면, 100여 종류가 넘어가는 『춘향전』 작품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이 인상 깊었다. 우리 한글의 발달에 대해 이렇게 지대한 분들의 공헌으로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쉽다는 글을 국어로 사용하는 긍지 높은 국민이 될 수 있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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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아 약간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중에서도 존경 받는 안과의사이면서, 진료를 받으러 온 한글학자 이극로의 영향을 받아 사재를 털어가며 3벌식 타자기를 개발했던 공병우 박사의 활동이 인상 깊었다. 일제 말기에는 강압적인 창씨개명에 항거하여 ‘금일 공병우 사망’ 전보를 날려 집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문의 정본(正本)도 공병우타자기로 작성해 유엔군의 마크 클라크와 조선인민군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펑더화이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크 클라크와 김일성은 펜으로, 펑더화이는 붓으로 서명했다고 한다. 내용을 한글, 중문, 영문으로 교환했는데, 그때마다 공병우타자기로 작성한 문서가 가장 빨리 나왔다고 한다. 박사의 좌우명은 “시간은 생명이다.”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안과라는 공안과에 가서 백내장 수술을 받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분은 의술에서도 인술을 베풀었나 보다. 또한 18년 동안 한글학회 이사장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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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외국인 중 1위 <호머 베절릴 헐버트>와 <베델> 등도 인상 깊었다. 헐버트는 고종의 두터운 신임으로 최측근 보필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활을 했으며 안중근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한다.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그가 온지 3년만인 1889년 세계 지리, 전체, 풍습, 산업, 교육 및 군사력 등을 망라한 최초의 한글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발간하였다. 그는 서툰 조선어에도 불구하고 한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으며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쓰고 배우기가 편한 한글 보급과 조선인들에게 국제교류에 필요한 기본지식을 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대한제국 멸망사』라는 역사서까지 만들고 국제여론에 호소한 덕분에 <국보 경천사 석탑>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한국사랑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만 하다. .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중 하나다. 먼저 한민족은 보통 사람도 1주일이면 터득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하였다. 한글은 각 글자마다 하나의 소리만 있는

우수한 글자다.” -<헐버트의 고별증언> 1949.7.2.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뉴욕트리뷴지』에 실린 헐버트의 글


그의 저서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멸망사』는 그리피스의 『Hemet Kingdom은자의 나라 조선』고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Corea and her neighbors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과 함께 조선 말기 3대 외국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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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도 한글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으로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한 그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 역활을 했으며 일제에 의해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다.

결국 1909년 5월 1일 베델이 서거하고서 1910년 5월 21일 통감부에 매수된 뒤 통감부의 기관지가 되고 말았다. 발행인이 이장훈으로 바뀌었고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에는 결국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서울신문 전신이 된다. 두 사람 다 양화진 외국인묘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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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시절, 우리 한글 발달에 소설과 잡지들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춘향전은 100여 번 가까이 간행되었다고 하며 그 이외에도 박씨전, 사씨남정기, 절세가인 등이 보이고, 딱지본, 방각본 소설을 비롯한 각종 잡지들도 보인다. .

다음 칸에서는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근대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생소한 다양한 한글 글꼴의 발달사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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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상상하며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놓은 옷들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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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별관에 쉼터가 잘 만들어져 있다. 안에서 따뜻한 도시락도 먹을 수 있으며 단체로 온 아주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바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숲길을 바라보니 양쪽으로 어머니 머리 같은 하얀 억새의 군락이 나풀거려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우리들은 모처럼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이라도 나온 듯 재잘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니 가운데 넓은 공터가 나오고 많은 탑들이 서있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탑들을 복원해 놓았다. 날아갈 듯한 추녀 끝들이 우리의 처마를 닮았다. 마치 하늘 위로 둥둥 떠오르고 싶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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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82호인 <고달사 쌍사자 석등>이다. 나는 오래 전 한강 1,300리 길을 걸으면서 지나갔던 남한강가에 있던 거찰(巨刹), <고달사지>를 생각했다. 이제는 폐찰이 되어 그 흔적만 남아 쓸쓸했던 절터. 그 뜨락에는 두 마리 사자가 앞발로 불발기집(화사석火舍石)을 받들고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선원 중의 하나인 고달원으로 이름을 떨치던 곳,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고려시대 초기쯤에나 만들어졌나 보다.

그 근처에는 딱 떨어지는 숫자로 국보 100호인 <남계원 7층 석탑>이 있다. 얼른 보면 8층처럼 보일 수 있지만 7층이다. 탑은 보통 홀수로 쌓는데, 지대석과 1, 2층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석은 직접 땅과 맞닿은 부분이며 탑의 기초역활을 하고, 1층, 2층 기단은 탑신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2층 기단은 상대적으로 높다.

탑을 이해할 때 목조건축을 생각하고 그 구조를 이해하면 훨씬 도움이 된다. 여기에 백제탑이나 고려시대의 백제계 탑은 기단이 1층만 있으며, 신라계의 탑은 2층의 기단을 가지고 있다. 특히 2층 기단은 1층에 비해 매우 높아 탑신으로 착각하기 쉽다. 중앙 박물관으로 올라갈 때는 호숫가 옆에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벽으로 막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지나치기 쉬우니 잘 찾아야 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온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 건물로 들어가는 등 7번이나 이사를 감행해야 했던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수난의 역사는 2004년 4월 19일을 끝으로 경복궁 안 국립박물관 시대의 막을 내렸다.

1991년 한미반환협정에 따라 용산기지골프장을 돌려받으며 용산가족공원과 박물관을 만든다. 그후 1997년 10월 31일부터 약 8년에 걸쳐 완성된 박물관은 55년 수난의 역사를 마감했다. 2005년 10월 28일 약 9만 평의 대지 위에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위용을 가지고 탄생한 박물관은 관람객 수 아시아에서 1위, 세계에서 10위에 해당하는 인기몰이를 하며 마침내 용산시대의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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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부터는 상설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은 무료이며 야외 전시장도 별도로 갖추어져 있다. 부설극장으로 '용'이 있다. 또한 부설 시설로는 전통염료식물원과 우리가 지나온 한글박물관이 있다. 총 6개의 관과 50개의 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12,044점의 유물을 전시되고 있으며, 전시물은 외부전시일정과 유물의 보존 상태에 맞춰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삼한, 가야, 삼국시대를 거슬러 발해, 고려, 조선까지 망라하고 있으며 서화관과 수많은 기증자들의 전시관과 조각 · 공예관 등이 있다. 특히 아시아관에는 인도를 비롯해, 중국, 일본, 아시아관 등이 있으며, 신안해저유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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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玄武)는 사신(四神) 중의 하나로 생명의 끝, 곧 죽음을 알리는 북쪽(北)의 수호신으로 검은 색을 나타내므로 현(玄)이라고 한다. 오행 중에서는 물(水)을 상징하며 계절 중에서는 겨울을 관장한다.

기운차게 생동하는 사신도는 고구려 무덤 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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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는 달, 지혜, 글의 신으로 알려진 토트Thoth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후기 시대에 이르러 아문Amun을 대신해 신전에서 최고의 신으로 추앙되는 경우가 많은 새이다.

상설전시관까지는 무료이며 3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유료로 진행되는 기획관에는 <가야본성, 칼(劍)과 현(絃)>전,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전이 열리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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