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박물관에서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한글박물관에서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5분여 걸어가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민주인권기념관(대공분실)>이다. 우리역사상가장비인권적이고,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들의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말살되었던 장소.
정권의방패가되었던슬픈 현장이다.
너는 투구와 갑옷으로
방패와 곤봉으로
중세의 기사처럼 우스꽝스럽게 서 있구나
동생아
그대로 장난감 병정처럼 서 있어다오
누가 내 팔목에 잔인한 고춧가루를 뿌리더라도
납처럼 서 있어다오
우리는 형제니까 미워하지 않으니까
싸움닭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몇 평 닭장에서 푸드덕거리지만
우리는 아프다
털 뽑히는 싸움보다는 어울려 노래하고 싶다
가슴에 안기어
새와 바람의 자유 햇빛과 그리움
따뜻한 사랑에 젖고 싶다
깨어지고 우리는 싸운다
매서운 할큄과 쪼임을 준다 참담한
등 뒤의 하늘은 언제나 웃고 있다
쓰러져 씻기우는 건
진실로 포옹하고 싶은
이 땅의 무성한 무리
그러므로 그대로 있어다오 가슴은 하나이니까
누가 불칼을 쥐어주더라도
끝까지 우리는 살붙이 형제이니까
-<투계>, 나해철 시인
1976년5층규모로지어져치안본부대공분실로사용되다가 1983년7층으로증측되었다.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검찰청장까지 해먹었던 김치열 등이 권력에 아부하며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비명횡사한 장소, 오늘 그 안은 겨울 찬바람만 불고 대단히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별로 넓지 않은 이 대공분실 안에 많을 때는 400명의 경찰과 100명의 행정병, 청소, 용역 팀들까지 합쳐 모두 500명 이상이 바글거렸다고 한다. 그 시절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간판은 국제 해양 연구소, 또는 국제 법률 연구소 등으로 달았다고 한다. 이렇듯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했던 고문소는 김수근 건축가의 철저한 설계에 의해 완성되었다.
“모든사람은태어날때부터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다.”-세계인권선언제1조
수갑을 찬 채 눈까지 가리고 호송차에서 내렸을 때, 레일을 따라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거 두꺼운 쇠문이 닫혔다고 한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올려다보면 5층은 특별히 작은 창문으로 되어있다. 혹시라도 고문 도중에 뛰어내릴지도 모르니 일부러 창문을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김수근는 저 건물을 보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자랑스러워했을까?.
앞쪽에서는 보이지 않고 뒤쪽에서만 보이는 문, 고문실로 올라가는 문이다. 이제 이 문을 지나면 인권(人權)이 끝나는 지점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전기고문, 물고문, 고추가리 고문,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악하고 추악한 짓거리다.
5층까지는 이런 나선형 철제 계단을 따라 빙, 빙, 돌아 올라갔다고 한다. 수갑을 차고 두 눈을 가린 채 텅, 텅, 거리는 쇠음을 따라 가면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 소리와 회전 속에 몇 층으로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철저하게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번 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고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지하실로 내려 같다고 한단다. 이 건물에는 지하실이 없는데, 아마도 5층에서 고문 받고 눈을 가리고 내려오다 보며 어디로 가는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방들의 구조와 색이 똑같아 만일 밖으로 도망 나왔다고 해도 입구를 찾기가 곤란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좋다.
“책상을탁, 치니억, 하고죽었다.”1987년민주화운동의도화선이된박종철열사가이근안 등의 물고문에 의해 숨지게 된방509호
아들의 동상 앞에서 오열하고 계시는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니 하얀색 벽에 뽕, 뽕, 구멍이 뚤려 있다. 이 구멍들은 고문을 할 때 나오는 소리들을 흡수하여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하는 장치라고 한다.
방마다 설치된 CCTV들
민주인사 김근태전의원의민청련사건에연류되어, 고문기술자이근안으로부터고문을받고, 그 폭로로세상에알려지게된 515호실, <짐승의 시간> 책 제목이 그 시절의 참상을 증언하는 것 같다.
해설자가 한 쪽 벽에 붙어있는 관물대 같은 것을 들어내자 벽의 색이 빨간색이다. 해설자의 설명에 의하면 방마다 색깔들이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전채가 빨간색으로 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밖으로 나오니 남영동 대공분실 머리돌에는 1976년 <내무부 장관 김치열>이라고 써 있다. 인권을 짖밟고 독재정권의 주구(走狗)가 되어, 친일인명사전 법조부문 1차 명단에 수록되었던 친일파. 그는 <사성 김해 김씨>이며 전국에 2,000여 가구 정도가 산다고 한다. 기존의 김해 김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이었던 왜장 <사야가>가 그들의 시조라 한다.
사야가는 부산 동래에 상륙하여 ‘명분 없는 전쟁은 불가’라고 하며 조선에 투항했다고 한다. 그 공로로 왕실로부터 김해 김씨와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임금이 내린 김해 김씨라 하여 사성 김해 김씨 시조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그 후손은 다시 친일을 했으니 역사는 참 아이러니 하다.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이후락, 김종필 등과 함께 부정축제자로 지목되자 200억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각서를 써가며 구걸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그 땅이 1,000억 정도로 가치가 올라가자 다시 반환해 줄 것을 국가에 요정하여 되찾아 갔다. 해마다 박근혜 고액 명단 후원자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그런 그가 옛 시절의 비리에 물으면 기억이 없다느니 하면서 입을 다문단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한단다. 공포와고통을위해철저히계산되어건축된건물이라고. 모든 방에 욕조를 설치하여 물고문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사람들을 고문하여 그 육체와 정신을 파괴시키는데 최적화된 설계를 했다고. 그도 알았을 텐데, 그는 어이하여 이렇게 치밀한 감옥을 만들었을까?
그는 그 시절 독재정권과 친해 대부분의 건물을 혹자 독차자하고 당대최고의건축가라칭했졌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신사을닮은<부여박물관>을 건축해 왜색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외 잠실종합운동장(서울올림픽주경기장), 세운상가, 경동교회, 주한미국대사관, 국립중앙과학관, 불광동성당, 위커힐호텔, 시울지방법원, 그리고 왜색 논란 후 짓기 시작한 붉은벽돌건물로 유명한대학로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등이 있다.
옛시절 국민을 탄압하는 정권들이 있을 때, 이런 곳이 3군데가 있었다. 이근안 등이 간첩 조작을 하던 <남영동 대공 분실>과 박정희 시대 때는 중앙정보부로 전두환 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사용되었던 <남산분실>, 전두환 시절 보안사로 사용되던 <서빙고분실>
담하나를사이에두고평범한사람들이살아가는바로담 너머에서 이런 짐승적인 일들이일어났다는것이믿기지가않는다. 현재 이곳은 임시운영 중이며 2022년정식개관 예정이다. 이 공간은과거를통해민주주의와인권의소중함, 국가폭력에대해철저히 배울수있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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