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네 옆에 있어줄게
제목 그대로다. 평생을 함께 할 것으로 생각했던 내 인생 친구가 암 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말기 암.
"나 폐암 4기래."
이 말을 들은 순간의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뭐 하나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충격도 아닌 것이 분노도 아니고. 그냥 멍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J와 나는 대학교 동창이다.
이 친구는 내가 가장 밑바닥에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친구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친구일 거다.
얼마 전 일 때문에 한국에 잠깐 다녀왔다.
사실 2주일가량 되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고, 일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 친구를 꼭 보고 싶었다.
"야 나 일 때문에 한국 잠깐 들어왔다! 얼굴 보자!"
평소 같으면 귀찮아하면서 "아 벌써 왔냐~" 할 놈인데.
이 친구는 바로 다음날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다다랐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대차게 손을 흔들었다. 사실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몸이 반쯤 사라져 있었다. 최소 10kg은 빠져 있었고, 한때 스스로도 "내가 좀 잘생겼지"라며 웃곤 했던 그 얼굴이 조금은 낯설게 변해 있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였기에 '아 짜식, 사진 잘 나오려고 다이어트 빡세게 했네 ㅋㅋ'라고 생각했다.
난 이 친구 어깨를 툭 치며 "이야~ 깔쌈해졌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이 친구는 그간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OO아, 놀라지 마. 나 폐암 4기야.”
그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꼭 숨 쉬는 걸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난 어려운 이야기를 덤덤하고 담백하게 하는 내 친구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고, 순간 정신을 차렸다.
뇌리에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얘를 환자처럼 대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 얘를 저 편에 쓸쓸히 세우지 말자.
난 이 친구와 예전과 다르지 않게 농담도 던지고, 시답잖은 얘기도 했다. "야 나 너랑 족발 먹으러 가야 하는데~ 아씨 언제 낫는 거야. 나 누구랑 족발 먹어"
고작 한 시간, 나 보겠다고 차로 무려 1시간을 달려온 이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고맙다고 했다.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아 줘서.
이 친구 차에 토마토와 사과, 전복죽, 영양제를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그냥 집에 돌아가지, 또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기어코 나를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허망함에 무너져 내렸다. 아빠와 엄마에게 이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고, 엄마는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몇 번을 확인했고, 아빠 또한 이 친구 이름을 몇 번씩 되물으면서 "J가? J 맞아?"라고 했다.
남편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에게 이 친구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사실 나는 가끔 '사이코패스인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친구에 대한 감정이 남들에 비해 많이, 아주 많이 무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친구 관계가 썩 넓지는 않다. 내가 친구로 정의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무딘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폐암 4기 생존율'이라는 검색어를 온갖 언어로 구글, 네이버, 유튜브에 끊임없이 처넣었다. 살 수 있다는 말만 골라서 보는 내 모습이 좀 애처로울 정도로. 그 친구보다 내가 더 집착하듯 살아남을 확률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 정말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 그냥 교회에 가서 자리에 앉아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터졌다. 아직 설교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다.
참 야무지게도 기도제목을 생각해 갔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하다고, 아직은 안 된다는 말 밖에는.
마음이 좀 진정되고 나서는 이 친구가 암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뒤에 든든히 서계셔 달라 한 마디하고 나왔다.
이 친구는 지금도 참 밝다.
표적항암제로 치료받으면서도 매일 산을 타고, 매일 헬스장에 간다. 정말... 그 애답다.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자기 관리에 뛰어난. 늘 뭔가 이루던 사람.
그래서 늘 장난처럼 말했었다.
“넌 참 지랄 맞아. 근데 멋있어.”
이 친구는 지랄 맞게 살 것이다.
극복할 거고, 폐암 4기 완전관해 사례로 남을 거다.
물론 과정은 길고 치열할 거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게, 이 친구의 암 생존기에 내가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그 친구가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면서.
J야, 그동안은 네가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어떤 부분에선 스승이 됐다면, 이제 난 너의 생존을 위해 함께 싸울 거야. 죽음 앞에서도 같이 웃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거니까. 너의 하루하루가 빛이 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s.
너랑 제대로 찍은 사진 하나 없네.
한국 가면 인생네컷 예약이다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