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2. vs 두산
입대하고 1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선임들이 줄줄이 나갔다. 당시 중대원이 60명이었는데 두 달 사이 20명이 전역하면서, 이제 내 군번은 위에서부터 훝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한, 어째 1년이 지나니 군생활도 어느정도 적응했고 풋살에 나가는 일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TV 시청을 이제서야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시 옛 취미를 꺼내오게 되었다. 계산해보니 야구가 개막하는 4월쯤 되면 나는 소대에서도 위에서 5명 안에 들었다. 그 때쯤이면 TV 한 대는 어느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당시 20명이 사용하는 생활관에 TV는 두 대 있었고, 한 대는 드라마만 주구장창 돌려보는 CP병 선임의 것이었다. 나는 대충 다른 근접 기수와 타협하여 2-3일에 한 번 꼴로 야구를 시청했다.
이 때에 다시 야구에 몰입할만한 이유는 군생활의 권태로움과 TV의 점유권 이외에도 또 있었다. 당시 한화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였고 FA로 송은범과 배영수, 권혁이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부터 지옥훈련을 하는 뉴스가 계속하여 나왔다. 지난 5년간 팀은 몇 차례 쇄신을 거듭했지만 제자리 걸음이었는데, 이번에야말로 행복 야구와 만년 꼴찌의 오명을 벗을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이 때의 한화는 정말로 바뀌었다. 일단 경기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질 때에도 승리조 불펜을 연이어 투입하며 어떻게든 따라가려 노력했다. 승리를 많이 거뒀다. 4월을 마칠 때 공동 4위의 성적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리그를 개막하기만 하면 지려고 작정하듯이 지기만했던 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기세를 만들어냈달까.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화는 확실히 변했다.
나는 이 때의 야구가 너무 재밌어서, 경기를 시청하지 못했다면 다음날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사이버 지식방으로 달려가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하이라이트를 돌려보곤 했다. 야구 감독에게도 팬덤이 있다는 게 이해가 갔고 김성근이 한화의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더이상 풋살장에서 본부중대 야야투레는 찾기 힘들었다. 야구에 한 눈을 판 마이클 조던처럼 나는 축구에게서 외도를 감행했다. 군생활의 권태로움에 전환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