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까지. 새롭게 정의하는 인터랙티브 아트.
인터랙티브 예술이 만들어낸 가능성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지, 커피는 차가운 게 좋은지 따듯한 게 좋은지, 저녁엔 어떤 영화를 볼지 등등. 우리의 삶은 무수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을 좌우할 큰 사건까지, 사람은 매일 평균 3만 번 정도의 선택을 한다.
선택은 매력적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직접 고르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한 대상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작년 말 넷플릭스는 선택의 매력을 더한 인터랙티브 필름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를 공개했다. 약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시청자가 직접 극의 서사에 관여하도록 하는 이 작품에 많은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가 어찌 보면 수동적인 예술 장르였다면,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보는 이가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해 이끌어내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가끔 여러 작품이 제4의 벽을 허물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적극적으로 관람자를 무대 위에 끌어올려 극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내가 만든 선택에 예술이 반응하는 것.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작가와 대중이 함께 예술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결국 대중이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 ‘인터랙티브(interactive)’ 작품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이론에 따르면 무대는 하나의 방으로 되어야 하고, 여기에서 한쪽 벽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제거된 것뿐이며, 이것이 가상적인 제4의 벽이라는 것을 뜻한다. 작품에서 제4의 벽을 허문 흥미로운 예시들은 이곳 https://www.youtube.com/watch?v=JLAaUvsKljc&t=9s에서 볼 수 있다.
나의 걸음이 그림으로 탄생하는 경험
최근까지도 가장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스튜디오 Moniker의 작업 역시 인터랙티브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스튜디오 Moniker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그들의 작업은 이곳 https://studiomoniker.com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많은 작업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Painted Earth>라는 작업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지구라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나의 움직임으로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예쁜 비유를 실제로 구현한 작업인 Painted Earth는 갈릴레오 레퍼런스 센터(Galileo Reference Centre)의 오프닝을 축하하며 제작되었다. 참여자의 걸음 속도에 맞게 잉크의 번짐과 흐름이 반응하며, 만들어진 작품은 완성된 후에 해당 지역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가상의 잉크를 통한 드로잉이 실시간으로 100대가 넘는 기기들에서 잘 구현되면서, 실제 지형지물들의 컨디션과 드로잉이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그들은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해당 사이트를 통해 지구에 그림을 그리는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을 통해 작가와 내가 나누는 대화
그렇다면 ‘인터랙티브’라는 말은 과연 어디까지 포함할 수 있을까. 처음 인터랙티브 아트를 접했을 때 이것은 필연적으로 기술과 함께 생각할 수 밖엔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스튜디오 Moniker의 작업처럼 많은 인터랙티브 아트들이 고도의 디지털 테크닉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사람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랙티브라는 말은 사용자가 마치 컴퓨터와 대화를 하듯 입력과 출력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자. 모든 인터랙티브 작품의 중심엔 선택을 통해 관여하는 대중이 있으며, 그 선택의 결과로 작업은 무한히 확장된다. 그렇다면 '인터랙티브 아트’는 결국 작가와 대중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정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작업을 접했던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유고 슬라이바 베오그라드 출생의 현대 미술가인 그녀의 퍼포먼스들은 작품들에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들이 많다. 2010년 뉴욕의 MOMA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 역시 그랬다. 약 700시간 동안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맞은편의 관객과 마주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명의 관객이 그녀와 마주 앉아 정적의 교감을 나눴다. 이 퍼포먼스는 절대 그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었다.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발현되는 예술인 것이다.
잔잔한 물에 조약돌을 던지면 금세 둥근 파장이 이어진다. 물 위에서 떠다니는 파장은 다른 에너지를 만나 더욱 커지거나 잠잠해진다. 모든 것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다. 조약돌을 던지기로 한 나의 선택에 물은 예쁜 파장으로 대답한다. 인터랙티브 아트란 내게 그런 것이다.
세상엔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무수한 작품으로 가득하다. 돌을 던지는 선택을 할지 말지는 개인이 결정하기 나름일 테지만, 한 번쯤은 기꺼이 작품에 다가가 보자. 나의 선택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작품을 구축해나가는지를 보는 즐거움은 내가 예술에 다가가지 않는 이상 절대 체험할 수 없을 테니깐 말이다. 예술을 통해 작가와 내가 나누는 대화. 그것이 결국 인터랙티브 아트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