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도
호주에서의 힘겨웠던 생존기를 모두 마친 뒤 나의 다음 행선지는 여행경력 꽤나 쌓인 여행자들도 여행하기 힘들다는 인도였다. 호주에서 생활할 당시 인도에 다녀온 몇 명의 여행자들을 만나서 인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듣자 하니 역시 만만치 않은 여행지라는 것을 인도에 가기 전에도 알 수 있었지만, 또 반대로 인도에 한 번 다녀온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뉘었던 것 같다. 힘들었는데 너무나 기억에 많이 남고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인도 찬양론 다른 한편은 인도라면 치를 떠는 인도 회의론자들.
결국 나중에 난 인도에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인도 찬양론에 속하게 되었지만, 여행할 당시에는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인도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지긋지긋했던 여행지였다. 그런 내가 왜 인도를 다시 한번 가고 싶은지 인도에서의 여행 기억을 더듬어 나가 보도록 하겠다.
인도에서 내가 처음 방문한 도시는 인도 동쪽에 위치한 해산물이 유명한 콜카타라는 도시였다.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인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있었기 때문에, 만일 늦은 시간에 인도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하루 보내고 해가 뜨면 나가라는 선배 여행자의 조언을 듣고 공항에서 몇 시간 기다린 뒤 날이 밝으면 숙소를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뿔싸 담배 한 대 태우려고 공항 게이트를 나가 다시 공항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공항 게이트를 지키는 직원이 다시 공항 안으로 못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콩알만 해진 간덩이를 부여잡고 밖을 나가가니 밖은 정말 전등 몇 개만 덩그러니 켜진 채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갑자기 그때 멀리서 정체불명의 하얀색 물체 여러 개가 나에게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정체불명의 하얀색 물체는 얼빵 해 보이는 여행자를 노리는 릭샤 기사들의 치아가 상대적으로 하얗게 보였던 것이었고, 한 10댓명 되는 기사들이 나에게 다가와 호객행위를 하는데,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중 가장 얌전하고 차분한 기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콜카타 여행자 거리에 들어섰을 때는 여전히 새벽이었기 때문에 문은 연 숙소는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아침 7시쯤 우연히 프랑스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이 머무는 숙소를 소개해주었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난 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날이 밝았고 제대로 된 주변 탐색을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
거리를 나선 순간, 와~~! 역시 인도는 인도였다. 처음 인도의 거리를 걸을 때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인도에 대해서 많은 애기를 들어봤지만 내가 상상한 인도는 대충 캄보디아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소가 길거리에서 나란히 발맞춰 걷고 엄청난 수의 인파가 무질서하게 도로를 점령했으며, 자동차, 릭샤, 삼륜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신호는 개나 줘버려 하는 듯한 느낌으로 도로를 활개하고 있었다. 그런 부산스러움을 대변하듯이 시커먼 매연이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그때 나는 여행하며 진심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이 솟구쳐 올랐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콜카타에서의 여행은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같이 숙소에 머무르는 프랑스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여기저기 인도를 파헤치고, 음식을 먹고 얘기 나누고 그 정도였다. 첫 도시이니 만큼 뭔가 워밍업 느낌으로 몸을 풀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콜카타라는 도시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난 뒤, 나는 인도인에게는 어머니이며 삶의 시작과 끝을 머금은 갠지스 강이 있는 바라나시라로 향했다. 바라나시를 도착하니 콜카타보다는 확실히 더욱 많은 여행자들이 거리에 보였고, 꽤나 많은 한국인 여행자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지마다 만난 여행자의 특징이 다 달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우리가 그리고 그들이 여행하는 장소의 분위기와 사람들 그리고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나시의 분위기는 흠... 뭐랄까 그 수많은 인파가 왔다 갔다 하지만 뭔가 차분하고, 강가에 앉아있는 사람들 저마다 각자가 털어내버리고 싶은 사연을 그리고 아픔을 짊어지고 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라나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는 유독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며 바라나시의 강을 바라보며 친분을 쌓아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할 거 없이, 그리고 생각을 한가득 짊어진 채 바라나시 강가를 하릴없이 걷고, 해가 뜰 때쯤이면 더위를 피해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인도의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저녁이 되면 또 바라나 사의 강가를 걷고 앉아서 감상한다. 이게 나의 그리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바라나시를 즐기는 대부분이었다.
이 곳 바라나시는 많은 여행객들 그리고 작가, 시인, 철학가 등등 많인 사람들이 영감과 깨달음을 얻고자 방문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아주 강력한 깨달음 하나를 알았다 바로 '비움'이라는 것, 나는 정말 욕심을 비우는 것을 떠나서 내 몸과 육신마저 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장기관 쪽의 건강은 나름 자신이 있었고 그전에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현지 음식을 먹었어도 별 탈이 없었던 나였기에 자신 있게 사모사라는 인도의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지만 결국 사단이 나버렸다. 내가 여행할 당시 인도의 체감온도는 약 50도에 육박할 정도 더웠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하면서, 구토와 설사를 거의 2주 동안 옆이 같은 방을 쓰던 일본인 친구와 번갈아가면서 했던 것 같다(게스트 하우스 화장실 둘이서 전세 냈음).
2주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니 체중은 한 6킬로 넘게 빠져있었고 나의 멘털은 이미 갠지스 강에 던져두며 뭔가 해탈하는 느낌이었다. 물욕, 식욕, 성욕 모든 욕구가 사라지는 진귀한 경험을 깨달음의 도시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었다.
<나에게 '비움'이라는 깨달음을 준 바라나시>
그렇게 바라나시에서 약 2주가 흐르고 나는 인도의 수도 델리로 향했다. 델리는 사실 딱히 기대하고 있던 도시는 아니었지만, 인도영화 세 얼간이에 나온 판공초라는 호수가 있는 레라는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가기 위해서 델리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가게 되었다.
델리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유럽에서 어떤 물건을 팔아볼까 시장을 둘러보고 여러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델리의 여행자 거리에 있는 한식당(지금은 사라진)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잠깐의 서빙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내가 일하는 한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어렵게 공수해온 술을 여행자들과 마시며 시간을 보내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시간들을 그리워하지만, 사실 델리를 여행할 때는 매일 인도 운전기사들과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고, 그들의 눈에 뻔히 보이는 허접한 사기에 화내고 그랬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나였기에, 델리를 떠날 때는 한치의 미련 없이 내가 여기 다시 오나 봐라 하며 떠났던 곳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도의 매력은 이러한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여행할 당시 너무 힘들고 지칠 뿐만 아니라 상냥하지 않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 하릴없이 걷던 시간, 수염 덥수룩한 그지 꼴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과의 만남들, 사진첩을 정리하다 문득 인도의 사진들을 보면 느껴지는 따뜻했던 추억들. 인도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느 여행지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런 곳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델리에서 만난 멋남들>
인도 여행기 2편은 그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