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4살. 한창 이쁠 20대 때가 지나갔다. 기미도 올라오고 주름도 생기기 시작할 나이에 미인대회 출전이라니.
시어머니는 '예쁜 울 손녀딸이 나가야지 엄마가 나가네' 하신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주부가 뭐하러 나가냐 라는 말로 들린다. 내가 베베 꼬인 것일까?
나를 부르는 호칭이 많다. 엄마, 경혜야, 며느리, 딸 , 소장님, 선생님, 아줌마 대표님 그중에서 나다움을 찾으라면 무엇일까?
요즘 들어 나의 10대를 뜨겁게 밝혀 준 신해철 오빠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노래가 들어온다. 10대 때 이 노래는 내가 원하는 것 갖기 위해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라며 원하는 것에는 희생이 들어가야 했다. 희생했고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안 될 텐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딸을 키우는데 딸은 참 다재다능하다. 춤도 잘 추고, 센스 있게 잘 꾸미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30초도 걸리지 않고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런 딸의 빠른 결정력이 너무 부럽다.
나는 옷을 하나 사도, 이게 어울릴까, 저게 어울릴까 저 색상이 좋을까 고민하다, 상점 언니와 남편에게 물어보고 다수의 결정에 따른다. 내가 입을 옷도 고르지 못할 정도로 내가 나를 모른다. '이것 사봤는데 진짜 아니였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옷 잘 입는 애들은 어울리는 옷, 안 어울리는 옷 많이 입어봤기 때문에 이젠 자기다움을 딱 나타내는 스타일링을 해낼 수 있다. 딸의 재빠른 결정력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자기다움,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것이 부럽다.
딸을 보면서 나도 너처럼 하고픈 것을 하며 나다움을 찾고 싶다.
그래서 미인대회 출전을 하게 됐다. '그래, 미인대회, 죽기 전에 한번 해보자!' 여자라면 이쁘게 꾸미고 우아한 장소에서 차 한잔 하며 공주 같은 날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부엌 대기이다. 결혼식 때는 남편과 나, 둘이 주인공이었다면 오늘 하루 주인공은 나이고 싶었다.
2020년 버킷리스트 올해도 버킷리스트는 리스트일 뿐으로 남을 것 같아서 유튜브를 통해 확언을 했다. 그리고 미인대회 참가비를 6개월 무이자 카드할부로 내고 바로 응모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회가 늦춰져서 8월에야 서류 심사 결과가 나왔다. 8월 3일 발표날 괜스레 기다려진다. 그리고 '본선 진출을 축하합니다' 라고 메일이 왔다.
'오빠, 나 합격했어' 왜 이리 좋은지 '미인인걸 인정받았나' 가 아니라 나의 도전에 응답받은 기분이었다. 너의 무한한 도전을 응원해라고.
남편은 공짜도 아니고 1등 할 가능성도 없는데 돈 들여서 이거 왜 하는 거냐고 물었다. 업체 돈 벌어 주는 것뿐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되지도 않는 것에 시간과 돈을 허비한다고. 그런데 난 1등을 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딱 한 마디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깐'라고.
너무 무모하게 생각 없이 말했나? 싶었다. 나는 왜 44살에 미인대회를 나가고 싶었는지 적어보았다.
어릴 적 꿈은 언제나 미스코리아였다. 예뻐서가 아니라 그땐 남자들은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 여자들은 선생님 아니면 미스코리아였다. 지금 모든 아이들이 유튜버 크리에이터가 되고픈 것처럼 말이다. 내가 커서 미스코리아가 될 거야 하면서 해년 열리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면서 점수를 매겼다. '이 언니는 80점! 코가 안 이뻐 '그러면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미스코리아라는 꿈은 그냥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쁘고 늘씬한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도 난 그들과 비교 대상에 놓이지도 못했다. 내가 나를 평가하고 결론을 내렸다. 난 평범해. 키도 작고 미인도 아니야라고.
나다움 44살 나이에도 나다움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찾아보기로 했다. 안 해본 것 도전하기 , 재밌는 것 찾아 해 보기.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는 해봐야 안다. 나다움인지 아닌지 걸쳐 봐야 안다. 백날 멀리서 나에게 어울릴까 쳐다만 본다고 알 수가 있을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나다움을 찾고 싶다면 뭘 해야 즐거운지 알고싶다면 경험해봐라.
해봤는데 나다움 찾는 하루를 위해 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더 많다면 그건 즐겁지 않은 것이다. 돈을 꼭 써야만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안 쓰는 것만으로 찾는 것도 아니다. 나를 찾는 건 누구도 해줄 수 없다.
미인대회 출전과 내가 원하는 것, 나다움과 연관성이 있을까? 나도 모른다. 나다움을 모르기에 어릴 적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행복도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