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대신 폼나게 들고 있던 '것'

류귀복 작가님! 책 쓴 김에, 꼭 3쇄 가셔야죠

by 조선여인

지하철 안, 나는 약속대로 명품백 대신 책 한 권을 ‘폼나게’ 들고 있었다. 승객들을 향해 작가의 이름 석 자를 소리 높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끓어오르는 욕구를 꾹꾹 누른 건 호객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다. 병아리처럼 노랑 바탕에 그려진 원색의 자판기가 빠꼼이 고개를 내민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낚아챌 만큼 알록달록한 자태를 뽐내는 책! 류귀복 작가의 세 번째 보물, <태어난 김에, 책 쓰기>다.


젊은 시절에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탈이었다. 육십 중반을 넘긴 이 나이에 남의 눈치 봐서 무엇하랴.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무조건 실행에 옮겨도 시간이 부족할 터. 예전 같으면 꿈도 꿔보지 못한 돌발 행동까지 나온다. 명문장이 등장할 때마다 밑줄 그을 장비는 형광펜이 제격이다. ‘이 문장에는 반드시 밑줄이 필요해’라고 중얼거리면서 얼른 밑줄을 긋는다.

‘꿈은 잠잘 때만 꾸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역시 저자는 신(新) 문장 제조기가 틀림없다.


읽다 보니 밑줄 그을 문장이 한도 끝도 없이 자꾸 튀어나온다. 수험생도 아닌 주제라 차 안에서 밑줄까지 긋는 건 조금 겸연쩍다. 나 좋을 대로 산다지만 독서법이 너무 요란한 게 아닐까. 하지만 멈추기는커녕 한술을 더 뜬다. 스마트폰을 열고 문장들을 적기 시작했으니까. 저자가 알려준 네이버 활용은 해본 적이 없으므로 브런치의 저장 기능을 써본다.

"너는 귀가 너무 얇아 큰일이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으나 떠오르는 문구를 지금 저장해두지 않으면 언제 다시 만나랴. 저자의 안내를 무조건 '추종'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브런치에서 천재작가로 얼굴을 내민 지 얼마 안 되어 '행운'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행운은 누가 덥석 물어다 준 것이 아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연구한 자에게만 허락된 전리품이다. 지상 최고의 여신인 아내를 만났고, 또 다른 운명인 ‘더블엔’ 출판사 송현옥 님을 만나며 그의 인생은 또다시 꿈틀거렸다.


이타심을 타고난 그는 작가들에게 늘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작가 편에만 서 있지 않다. 출판사와 편집자의 고충까지 헤아린다. 저자의 성공 비법의 중요한 부분이다. 같이 가야 멀리 간다는 '윈윈'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일이 술술 풀린다는 건 만고강산의 진리가 아닌가. 실력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 쓴 책이니 들고만 있어도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다.


목차부터 훑어본다. 독하게 시작해서 즐겁게 쓰고, 끈질기게 투고하여 간절하게 출간하라는 저자의 치열한 여정이 담겼다. 특히 책 쓰기의 ‘골조’라 할 수 있는 목차 구성부터 기획의 중요성까지 저자는 출간 비법을 막힘 없이 쏟아놓았다.

게다가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며 태어난 김에 책 한 권 내자고 꼬드긴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말에 속지 마시라 경고하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준함’을 장착하지 않으면 출판의 길은 그저 허무맹랑한 환상의 길이 될 테니 말이다. 혹시 꿈속에서조차 ‘출간’을 갈망한다면 실행에 옮겨도 괜찮다. 저자처럼 대화 중에 '저기요~' 대신 '책이요~' 부를 정도로 책에 중독되었다면 시도하라.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글의 생사를 가르는 첫 문장’에 대한 조언이다. 독자의 심장을 저격할 첫 문장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는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대원칙을 세웠다. 단문으로 리듬을 살려라, 숨이 끊어진 글에는 심폐소생술을 하듯 끊임없이 퇴고하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내뿜는다.

사랑과 월급은 아내에게 바쳐라. 그렇다면 독자에게는 무엇을 바쳐야 할까? 정답은 '첫 문장'이다. 첫인상이 관상을 결정하듯, 첫 문장은 글의 생사를 가른다. 독자를 본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그는 목이 쉬도록 외친다. 독자의 심장을 단번에 저격할 수 있다면 게임 끝이라면서.


저자에게는 아내라는 든든한 귀인이 있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옛말이 있다. 뼈아픈 조언을 해주는 '1번 독자'가 아내라니 얼마나 큰 복인가. 나는 합평이 있을 경우에 혹독한 비평을 듣기 원한다. ‘잘 썼다’라는 두루뭉술한 칭찬에는 실망이 앞선다. 한강 작가도 아닌데 수정할 게 없다는 건 애정이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나도 집안에 뛰어난 비평가 한 분 모시고 싶지만, 이번 생엔 아무래도 불가능한 꿈인 듯싶다.


또한, 150여 번의 투고 끝에 출간을 이뤄낸 저자의 ‘투*고=출간’이라는 구구단 공식은 매우 흥미롭다. <편집장님, 에세이 원고를 투고합니다>는 너무 단순하다. 이런 평범한 제목 대신 <편집장님, 고백할 게 있습니다>라는 아이디어는 신선해서 아름답다. 편집자의 시선을 끌 만한 전략을 세우는 그는 야무지고 노련한 작가다. 혼자 쓰는 글에서 독자를 위한 책으로 진화시키는 과정에 법칙까지 적용해 놓았다. ‘2W 1H 법칙’은 예비 작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니 자세히 읽어보면 좋겠다.


물론 저자라고 해서 늘 화려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서른둘에 찾아온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고통을 늘 짊어지고 산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치의 대명사인 ‘3종 세트’를 멀리한다. 새벽잠과 술, TV를 외면하고 매일 3시간 이상씩 글쓰기에 투신했다. 투신과 투지가 결합하여 오늘의 류귀복을 탄생시켰으리라. 재미있고 유쾌한 그의 글 뒷면에는 지독하리만큼 단단한 내공이 숨어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하기 싫은 걸 피하면 하수,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지칠 때까지 하면 중수,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해내는 자가 고수다.

이 문장은 살아서 춤을 추듯 가슴으로 와 안겼다. 비단 글쓰기뿐이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니 또 두텁게 밑줄을 긋는다.

이름을 불러주면 관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브런치에는 이상한 풍문이 돌고 있다. 류귀복을 모르면 ‘간첩’이란다. 우리 집에서도 그를 모르면 ‘식구’가 아니라는 말이 생겼다. 류 작가가 책을 낼 때마다 집안이 떠들썩해진다. 특히 아들을 향한 내 눈빛이 이글거린다. “책을 읽어야 산다”라는 저자의 말을 전할 때마다 아들의 눈엔 뭔지 모를 시샘이 한 켜씩 쌓여 간다. 그 미움도 철들면 고움으로 발전하여 언젠가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멋진 남자가 되기를. 막연한 기대를 품은 나는 아들 앞에서 보란 듯이 저자의 책, 정신력을 읽고 또 읽는다.

이제 그만 책을 덮고 나는 작가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려 한다.


류귀복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책을 받자마자 점심도 굶어가면서 이틀 동안 다 읽었습니다. 위로는 엄마를 섬기고 아래로는 자식을 돌보고, 옆으로는 남편을 챙기면서요. 한 끼라도 굶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제가 말이죠. 톡톡 튀는 문체와 진심에 홀려 오랜만에 책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가님, 팬심을 발휘하셨는지 재미를 위해 숨겨 놓으신 '숨은그림찾기'에 1개를 성공했습니다.

*숨은그림찾기 : (214쪽 오타)

수백 명의 필명을 따로 기록하는 것보다 '식구'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하여 판권면에 추억을 남기는 것으로~

-수백 명이라니요? 수천, 혹은 수만을 오타 치신 게 아닐까요?


사실 오탈자 문의는 핑계입니다. 책이 너무 훌륭해서 ‘오자’마저 정신을 환기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저는 이 편지로 작가님의 심장을 인질로 잡는 짜릿함을 경험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도서 정보]

도서명 : 태어난 김에, 책 쓰기

저 자 : 류귀복

출판사 : 더블엔(더블en)

출판등록 : 2011년 3월 16일

출간일 : 2026년 3월 25일


류귀복 작가가 낳은 보물 세 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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