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방’도 못 봤으나 광화문에 가기를 잘했다

미국서 온 동생과 함께한 'BTS 역사적 공연' 현장 잠입기

by 조선여인

‘역사적인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마침 미국에서 온 동생한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우리 광화문 갈까?”

나는 쉬고 있는 동생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 광화문에서 BTS의 역사적인 공연이 열리는 날이잖아.”


광화문으로 가는 지하철이나 버스는 이미 통제되었으니 사직공원에서 내려서 광화문까지 걸어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버스 운전기사님은 사직공원 대신 서울역으로 우회한다고 알려주었다. 차에 올라타는 사람마다 “광화문 가요?”를 물었다. 목적지가 같은 이들한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한배를 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턱 놓였다.


나는 길 찾기 지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서울역보다는 ‘서대문’에서 내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기사님께 슬쩍 말씀드렸다. 기사님이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광화문에 가려면 서대문에서 내리세요.”

곁에 있던 외국인에게도 “팔로우 미”를 건네며 씩씩하게 앞장섰다. 서대문역에서 우르르 나를 따라 내리는 사람들. 걸음이 워낙 빨라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인솔하는 대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지런히 걷는 동안 야광봉을 든 안전요원과 경찰관들을 마주쳤다. 삼십 분 남짓 걷자 저 멀리 광화문이 보였다. 급한 마음에 걸음이 더 빨라졌다. 조금만 더 가면 광장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 광화문과 가까워질수록 촘촘하게 서 있는 경찰과 안전요원들을 볼 수 있었다. 공권력만 수천 명이 투입되었다는 뉴스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길가 카페 유리창에 붙은 ‘경찰관, 공무원 20퍼센트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현장 속에서도 따뜻함을 베푸는 상인의 마음씨가 고마워 얼른 사진으로 남겼다.


늦은 시각에 출발했기에 애초부터 무대를 보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라도 역사적인 공연의 현장에 있었다는 ‘인증샷’ 한 장을 건지면 족했다. 더 운이 좋아 전광판으로라도 무대를 보게 된다면 오늘 계획은 무조건 성공작이 될 터였다. 몇 발짝 걸음을 떼면 다다를 광화문을 보면서 실행에 옮기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아, 중앙광장이 바로 코앞인데 경찰관들이 우리 앞길을 막아섰다. 억지를 부리며 버텨봤자 통하지 않을 게 뻔해 얼른 세종문화회관 뒷길로 발길을 돌렸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도착하니 당당하게 문을 통과한 티켓을 소지한 행운아들이 공항 검색대 같은 몸수색을 거쳐 입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지런함으로 티켓 발매를 시도한 그들의 행운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티켓이 없더라도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귀로라도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리라.


귀로 음악만 들을 것 같으면 나는 복잡한 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기어코 광장 근처라도 가보고 싶어 걷고 또 걸었다. 월드컵 때나 탄핵 집회 때 찾았던 광화문의 기억이 떠올라 기대감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월드컵 경기를 할 때는 축제 분위기로 자유로웠고, 탄핵 집회 때는 비장함이 감돌던 이곳이었다. 오늘은 ‘안전’을 우선으로 한 방어벽이 강조된 날이었다. 빌딩 숲을 돌아 도착하는 곳마다 제지를 당했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걷기를 계속했다. 걷는 이들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는 하나둘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처럼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아, 높은 빌딩을 사이에 두고 빙 둘러 도착한 곳에 또 경찰관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막아섰다. 허탈함에 고개를 드니 높은 건물 위에서 넷플릭스의 붉은 로고만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바짝바짝 애가 탔다. 그 와중에도 동생은 거리의 인파가 신기한 듯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가는 곳마다 돌아가라고 길을 막는 바람에 우리는 광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부는 ‘집으로 가는 길인데 왜 막느냐?’라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화문 근처가 집인데 왜 서대문으로, 정동으로 빙 돌아가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안전요원은 그들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었다.

무대는커녕 음악도 들리지 않는 곳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하나, 집으로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뒤편 치킨집 작은 TV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공연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곁에서는 한 유튜버의 시끄러운 선동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전광판도 무대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일곱 대의 전광판은 모두 광장 안쪽에 설치되어 있던 것이다. 통제된 외곽 지역에도 화면 하나쯤 설치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TV 화면 속 방탄소년단을 지켜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다니. 콘서트라면 보통 2시간인데 이번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단 1시간뿐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각이었다. 사람이 몰리면 위험하다는 경찰관의 제지에 뒤늦게 집을 나선 걸 후회하며 발길을 옮겨야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는데 마당에 설치된 낡은 전차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태국 소녀들을 만났다. 광장 진입을 포기한 그들은 여기서라도 한국의 정취를 즐기려는 모양이었다.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서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나는 그들의 예쁜 모습을 추억으로 남겨줄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주었다.


솔직히 나는 BTS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190여 개국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 대사라는 점만 알고 있을 뿐. 국방의 의무도 다했고, 공백 기간이 길었음에도 ‘아미’의 결속을 그대로 유지한 방탄소년단의 역할을 높이 사고 싶다.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수로 유명해진 BTS를 알게 된 건 유엔의 초청으로 연설할 때였다. 스무 살에 노래를 시작하여 서른이 넘은 지금, 3년 9개월이라는 공백 기간이 무색하게 완전 합체가 되었다는 건 초심을 유지했다는 거다. 춤과 노래 연습에 혼신을 기울이느라 입은 발목 부상에도 성공적으로 공연이 끝나서 다행이다.


1조 2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오고, 우리의 얼이 담긴 '아리랑'을 전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한 그들이 대견하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들게 해 준 그들의 역할이 새삼 고맙다. 대한민국의 한복판인 광화문 역사의 거리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위대한 일을 한 그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아울러 불철주야 안전에 힘쓰느라 고심했을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과 안전요원의 땀 흘린 노고에도 감사한다. 무대설치와 정리에 힘쓴 분들의 노고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무대였다.


공연을 둘러싸고 들려오는 온갖 쓴소리도 잘 수렴하여 앞으로 더욱 성공적인 공연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쪼록 건강 잘 챙겨서 고양시와 부산 공연 뒤에 세계 36개국으로 이어질 공연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기를 응원한다. K-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대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그들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 길에 동생은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언니, 그래도 광화문 공기 마신 게 어디야!"

나는 오늘 광화문에서 방탄소년단의 ‘방'도 못 보고, 신곡 스윔(Swim)의 ‘스’자도 못 듣고 왔다. 하지만 긍정의 화신답게 생각하련다. 그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을 기웃거려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던 하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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