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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YOON Mar 03. 2022

과장님에서 매니저님이 되다

30대 후반 다시한번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다.

3년뒤면 마흔이다. 

친구들은 나만빼고 결혼하고, 애까지 있다. 

그런데 나는 또다시 불확실한 길에 올랐다. 


나는 대학생 인턴부터 지금까지 줄곧 공연기획 일을 해왔다. 

작은 극단의 기획홍보 업무부터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티켓마스터,그리고 한국에서 세손가락 안에 드는 공연기획사 티켓팀 과장까지 모두 다 공연업이었다.

굴지의 공연기획사에 입사 할 때는 나름 7년의 공연업 경력을 인정받아 과장 타이틀을 달고 연봉도 올려서 입사를 했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이 업계에서 나름의 성공가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업무분야에 대해서 더 전문적인 지식과 스킬을 쌓아서 이 업계에서 나만의 길을 개척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나 역시도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직급은 과장이었지만 과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만 있을 뿐, 권한은 없었다. 

아주작고 사소한 것도 본부장한테까지 확인을 받아야만 했고, 업무 중 있을 수 있는 흔한 오류나 실수는 크게 확대되어 전 직원에게 알려졌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나한테만 적용되는 압박감이 아니라 전 직원이 모두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직원들끼리 우리회사는 본부장 이하는 모두 다 사원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나의 업무능력을 확대하고 키워나갈 기회는 없었다. 

인원충원도 없었고, 업무분장도 없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그저 그 때 그 때 닥치는 상황에 맞게 일처리 해주기만을 바랐고, 실제로 떨어지는 일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게다가 조직이 작다보니 승진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윗 사람이 나가야 승진을 할 수 있는 구조인데 윗 사람들이 이미 20년씩 버티고 있고 아직도 창창하다. 그러다보니 점점 과장, 차장만 많아지고 사원은 적어지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이 회사에 오래 있어봤자 차장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것이고, 직급만 차장이고 하는 일은 사원이 하는 일과 똑같다는 것이다.  


회사의 비젼과 나의 비젼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더 최악의 상황이 터졌다. 

바로 코로나19이다. 공연계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고 월급은 삭감되고, 직원수를 감축하는 몇몇 기업들로 불안감은 커져갔다. 언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막막함이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업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가면서 내가 마흔이 넘어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첫번째 의문은 업무의 강도에 비해 업계에서의 대우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다. 티켓업무는 고객서비스, 마케팅, 회계, 서비스 기획, 시스템 관리 업무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래서 다른 부서보다 업무영역도 넓고, 디테일함과 정확도는 더 과하게 요구되는 업무 이기도 하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티켓업무가 단순판매 및 배포 업무처럼만 보여서 쉽게 다른 인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관이나 공연장에서는 여전히 계약직으로만 모집을 하고, 기획사에서는 주 6일근무, 야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주말 근무수당, 야근수당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에게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업무를 하면서 나 자신은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공연이 있는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날의 공연이 무사히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누락시킨 좌석은 없는지, 좌석더블은 없는지 노심초사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고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이런 생활을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에도 계속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두번째 의문은 수입이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연애는 필수여도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의도치 않게 비혼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노후를 위해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하고, 돈을 얼만큼 벌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공연업계의 월급으로는 노후준비는 커녕 평생 소처럼 일해도 하루살이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당연히 금수저 은수저는 아니고,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하고 여러 고정지출은 늘어만 가고 있는데 이 월급으로 노후에 내 집 한채 마련이라도 할라치면 안먹고 안입고 숨만 쉬고 살아도 힘들 것 같았다.

 

마지막 의문은 향후 10년 안에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영화관은 무인 티켓발권기가 있고, 이제는 일반 마트나 식당도 셀프 계산대나 키오스크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공연장 티켓업무는 이보다 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서 사람 손을 더 타야하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시스템은 고도화되고 있다. 경리업무나 금융업무도 상당부분 시스템으로 대체되지 않았는가. 


6개월 동안 20% 삭감된 월급으로 버티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이 회사에서 쌓이는 연차와 익숙한 것에 만족 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할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업종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이 업종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의미없이 발전없이 하던 일만 반복하면서 고인물로 머물기에는 나는 욕심이 많았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이 벌고 싶고,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37살에 이직할 회사도 안 정해놓고 퇴사를 선포했다.


회사 내에 나를 대체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후임자에게 업무인수인계를 해주고 퇴사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직 할 곳도 못 정하고, 퇴사 의사를 밝히고 그로부터 3개월 뒤를 퇴사일로 정했다. 그 안에 회사는 나의  후임자를 뽑아줘야만 했다. 다행히 적임자가 나타났고, 인수인계 해 줄 수 있는 한 달여의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그 때까지도 내가 어디 한군데 면접도 못 봤다는 것이다. 이력서는 많이 넣었지만 연락오는 곳이 없었다. 역시 30대 후반에 업종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설상가상으로 회사가 코로나 국가지원금을 받고 있어서 퇴사를 해도 나는 실업급여도 못 받는 상황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직이 바로 되지 않으면 당장 월세부터 어떻게 감당해야 되나 캄캄했다. 

조금씩 '내가 선택을 잘못했나' 라는 후회가 올라오려고 할 때, 남자친구가 격려를 많이 해주었고 그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 회사에 남는 것보다 나을 거야' 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면접 기회가 왔다. 

 

그렇게 나는 공연기획사에서 IT업계의 스타트업 회사 마케팅팀으로 이직 하였다. 

나의 10년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새로운 업종의 회사였지만 IT기업의 기본 연봉이 공연업의 기본연봉보다 높아 다행히 연봉이 깍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높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력이 인정되지 않은터라 수습 3개월이라는 기간이 있고, 직급 또한 과장에서 매니저로 강등되었다. 

게다가 수급기간동안 월급의 80%만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이 나이에 수습이라니 살짝 자존심이 상할법도 했지만, 그래도 공연업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거에 만족하고 수용하였다. 무엇보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퇴사일은 다가오는데 연락 온 곳은 여기 한 곳 뿐이니 자존심 내세울 처지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정말 아닌 것 같은 회사에 울며겨자먹기로 이직한 것은 아니다. 대표와의 면접에서 회사의 비젼을 볼 수 있었고, 대표의 마인드도 나와 비슷했다. 이직이 확정되고 나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사라졌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7년 전 30살되던 해에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뒤늦게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던 것이 내 인생에 첫번째 터닝포인트가 됐었던 것처럼 37살의 이 위험한 이직이 내 인생에 두번째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니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중고신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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