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스트리밍에서 벗어나라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삶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첫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은 무려 10년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었다. 단지 버튼을 모조리 생략하고 풀 터치 스크린과 인터넷을 탑재한 특별한 아이팟 전화기라는 포지션으로 출발했던 애플의 첫 스마트폰은 출시 직후부터 줄곧 온갖 비평에 시달려야 했다. 삼성이나 LG는 DMB 기능이 없다느니, 아이폰의 터치는 감압식이 아니라 손톱을 사용할 수 없다느니, 최적화된 응용 프로그램 생태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느니, 방해를 일삼기 일쑤였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의 새 운영체제에 앱 스토어를 추가하며 사상 최대의 스마트폰 응용 프로그램 시장을 연 이후 역사는 달라졌다. 삼성과 LG는 아이폰에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자존심을 걸고 후발주자였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들을 줄줄이 출시했고 과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벌인 운영체제 경쟁을 벌인 것처럼 아이폰의 운영체제(훗날 iOS로 명명)와 안드로이드의 숨 막히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애플은 이러한 눈부신 혁명을 단번에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과감한 기술적 변화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혁신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서 충성고객들을 양산해 낸 것이 그들의 비결이었다. 그 도약의 중심에는 애플이 출시했던 손바닥 만한 작은 mp3 플레이어, iPod(아이팟)이 있었다. 무대 뒤의 초라하고 잔혹한 스티브 잡스 개인을 묘사한 영화 "스티브 잡스(대니 보일 감독,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에서 스티브 잡스는 그의 전 여자 친구를 통해 낳았던 사생아 리사와 화해하고자 그녀에게 추한 CD 플레이어 대신 주머니에 노래 1,000 곡을 담을 수 있는 기계를 선물해주겠다고 했다. 작은 용량과 작은 크기의 플래시 메모리에 기반한 mp3 플레이어들은 이미 시장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플래시 메모리 대신 과감히 무겁고 두꺼운 소형 하드 디스크를 탑재한 아이팟을 세상에 던져놨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등장한 최초의 디지털 음원 시장인 iTunes(이하 아이튠즈)는 빠른 속도로 불법 음원시장을 평정하고 불법으로 음악을 듣던 mp3 플레이어 사용자들을 합법 사용자로 탈바꿈시켰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반이나 음원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보유한 CD를 아이튠즈를 통해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해 아이팟으로 들을 수 있었다. 1,000 개의 곡을 주머니에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일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애플은 아이팟이 라디오를 들을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전 녹음된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Podcast(팟캐스트) 기능이다. 시간이 지나 애플은 더 큰 용량의 하드 디스크를 탑재하고 윈도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아이팟을 출시했고 다양한 색깔의 모델과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모델도 출시했다. 아이팟을 통해 시장에서 지배적인 입지를 굳힌 애플은 아이팟에 전화 기능을 결합해 출시하는 모험을 선택했고 이 선택은 심히 절묘했기에 애플을 미국 정부보다 현금 보유량이 많은 시가총액 1위의 초거대 기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폰의 판매가 늘어갈수록 아이팟의 판매량이 줄어든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은 Spotify가 이름을 날리던 스트리밍 음악 시장을 노리고 있었고 인터넷 기능이 없어 스트리밍 음악을 청취할 수 없는 아이팟은 퇴출되어야만 했다. 애플은 아이팟 생산량을 줄이며 재고를 처리하고 아이폰 판매와 병행하는 식으로 아이팟 판매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구형 아이팟을 그대로 계승하던 iPod Classic이 단종되면서 애플의 아이팟은 아이팟 터치(대략 전화 기능이 빠진 아이폰)와 터치 기능이 탑재된 iPod nano 정도만 남겨놓은 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에 따라 구형 아이팟은 나름의 중고 시장을 형성하며 수집가들 사이에서나 거래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뮤직, 멜론, 벅스, 지니 등등 다양한 회사가 스트리밍과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트리밍은 음원 시장의 반응과 무관하게 대세가 되어 버렸고 서점과 레코드 샵에 진열된 음반들은 새하얀 먼지만 맞게 되었다. 비디오테이프가 퇴장했을 때처럼, 테이프와 LP판이 퇴장했을 때처럼, 수많은 피쳐폰(흔히 2G 폰이라 부름)들이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몰락했을 때처럼, 아이팟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아티스트들은 수개월을 작업해 앨범을 내놓거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싱글을 내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곡을 내든지 스트리밍으로 듣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기에 수익은 계속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쌓여 가는 음반 재킷들을 보며 굳이 불편하게 하나하나 음반을 교체하며 음악을 듣던 시절을 추억할 것이다. 그 어떤 시대에도 음악이 물리적으로 우리에게서 분리된 적은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음악이 완전히 우리 손에서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음악은 듣는 것이지만 동시에 손을 통해 전해지는 울림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LP판을 긁을 때 들렸던, CD를 읽을 때 들렸던, 아이팟의 구형 하드 디스크 헤더가 돌아갈 때 들렸던 그 작동음들은 우리의 추억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아이팟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디지털이었지만 그 둔탁한 작동음만큼은 SSD의 보편화로 하드 디스크 자체가 멸종해 버릴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는 나름의 추억이 아닐까.
애플이 Apple Music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스트리밍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국내 음원시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국내 음원을 제공해 주지 않으려 버텼다. 애플은 오랜 시간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많은 나라에 이미 진출했 듯 한국에도 애플 뮤직이 정식으로 서비스되기에 이르렀다. 월별로 꾸준히 결재만 할 수 있다면 가입자들은 무제한으로 음원을 기기에서 재생하고, 기기에 저장하고, 애플이 선별한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선곡표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은 인터넷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애플 뮤직은 iCloud 음악 라이브러리라는 가상의 공간에 개별 사용자들의 음악 보관함을 구축하는데, 우리가 애플 뮤직을 통해 음악을 저장하고 인터넷이 없는 곳에서 음악을 들으려면 이 iCloud 음악 라이브러리에 사용자의 기기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무제한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엄청난 특징의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한 엄청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어느 날 당신이 애플 뮤직이 아닌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여태까지 들은 모든 음악은 기기에서 사라지고 iCloud라는 가상의 공간을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도 보존되지 않는다. 곡 하나조차도 당신이 직접 구입한 곡이 아니었다면 말 그대로 곡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기기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곡들의 목록이나 백업을 통해 간신히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모두 다시 되찾기 위해 일일이 검색하고 찾아낼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당신이 어떤 음악을 심히 사랑한다 할 지라도 그 아티스트의 곡을 구매해 그를 지원할 필요 자체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인터넷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던 음원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난 여전히 현재 거주하는 터키와 한국에서 애플 뮤직 가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음악을 모조리 잃어버릴 위기감에 스트리밍으로 자주 듣던 음악들을 하나하나 실제로 구입해 보관함에 추가하는 식으로 내가 직접 가진 음악 보관함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수만 곡의 보관함을 구축하고 자랑하며 서로의 아이팟을 바꿔가며 듣던 과거를 추억하면서도 변해가는 현실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구형 아이팟 모델은 80GB의 하드 디스크를 가지고 있지만 내 음악 보관함의 용량은 애플 뮤직의 스트리밍 음악을 제외하면 40GB가 채 안 된다.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이 내 핸드폰에 있음에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매달 돈을 꼬박꼬박 내지 않으면 그 음악을 들을 수 없다니, 생각해보라,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들을 평생 들으려면 평생 동안 스트리밍 가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블루투스 이어폰, 헤드셋이 보편화된 세상에 어떤 형태로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기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나는 굳이 좋은 유무선 공용 헤드폰을 사서 구형 아이팟에 음악을 보관해 놓고 있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음악을 모조리 빼앗길지 모른다는 것, 내가 음악의 주인이 아닌 단순히 잠시 빌려 청취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 우리의 자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들여다보거나, 앨범 재킷의 오묘한 의미를 풀어 보려 애쓰거나, 음악에 고스란히 집중할 시간도 모두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고 몇 번 음악을 듣는 것으로 값을 지불할 필요도 없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음악을 들을 이유도 없어졌다. 과거에는 음반을 구입하면 대표곡뿐만 아니라 음반에 실린 다른 곡들도 함께 들으며 아티스트가 담고자 했던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인기 있는 대표곡들과 차트에 올라간 인기곡들만 들으며 팝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릴 것이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아 선곡표를 만들고 그 음악들을 모아 다시 CD로 굽고 친구들과 나누던 시대도 저물어 버렸다. 음악이 당신의 손이 아닌 인터넷 어딘가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 고찰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