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보니 오빠가 있었다. 오빠하고 나는 5살 차이가 난다. 나이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오빠를 가진 이후로 아이 한 명을 더 낳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첫째와 두 살 터울이 될 아이를 가졌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유산이 되었다. 그 후에도 또 한 번 아이가 찾아왔는데 또 유산이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또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기가 아기집에 들어가질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이렇게 표현하셨는데 내가 추측하기론 수정은 되었는데 착상이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 모두 반 포기상태, 될 대로 되라지 마음으로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기집에 잘 들어갔고 그게 바로 '나'다. 엄마가 우스갯소리고 "그때 왜 빨리 아기집에 안 들어가서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었어!"라고 말하면, 나는 "더 놀고 싶었거든"이나 "어디가 발 뻗고 눕기 좋나 둘러봤거든"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런데, 아이를 베고도 쉽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당시 엄마의 몸무게는 39kg 정도 이셨다. 게다가 체력도 원래 안 좋으신데 출퇴근을 편도 2시간 정도를 다니셔야 했었다. 한 번은 출근길에 배가 너무 아파서 출근길 중간 톨게이트 부근에서 내렸다고 했다. 도저히 버스 안에서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내렸는데 막상 내리니 그것도 문제였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 10달을 다 채우고 출산을 할 때 제왕절개를 하셨다. 마취를 하고 내가 나오고 마취에서 깨길 기다리는데 엄마는 한참을 못 깨어났다고 했다. 오전에는 깨어날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지만 엄마는 오후에 눈을 떴다고 했다. 어쨌든 다행히 4 가족이 되었다.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오빠도 나를 좋아했다.(과거형, 요즘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생각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연락한다.) 또 우리 가족은 굉장히 유쾌하다. 한 번은 오빠가 십이지장 구멍이 작아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거 제조사 과실인데, 엄마한테 a/s청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아빠가 제품 10년 넘어서 무상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엄마, 아빠는 먹을 것과 배우고 싶은 것만큼은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다른 부모님들은 학교 끝나고 불량식품 사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가끔 먹는 건 괜찮으니 먹고 싶으면 먹어~라고 말씀하시고, "먹고 싶은 거 있는데 용돈 다 떨어졌으면 꼭 말해!"라고 말씀하셨었다. 또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주말이면 매주 공원에 가거나 에버랜드에 가거나 아이스링크장에 갔다. 아마도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에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 하셨으니 우리에게만큼은 풍족하게 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 사랑 덕분에 행복하게 아주 잘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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