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천년 고도

경주 여행을 준비하며

by 사막여우

긴 추석 연휴, 2박 3일의 경주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경주는 가족여행으로 자주 갔던 보문관광단지의 커다란 물레방아, 학창 시절 수학여행 정도로 기억된다. 그때는 단지 여행이 즐거웠을 뿐, 경주 자체에 특별한 애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몇 년에 한 번씩은 여행하게 될 만큼 경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경주는 갈 때마다 점점 더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것 같다.


경주가 좋은 이유는, 다시 봐도 가치 있는 찬란한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산과 동해를 품은 자연경관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다. 과거 경주에서 아쉬웠던 점은, 시멘트 건물에 기와만 얹은 조악한 건축물과 조화롭지 못한 도시 디자인이었다. 특히 흉내만 낸 기와집은 비례도 맞지 않고 색감도 재질도 어울리지 않아서 한옥의 미를 느낄 수 없었다. 70년대 급하게 개발된 관광도시의 흔적은 도시의 감흥을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하지만 최근의 경주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축 한옥과 도시 환경이 정돈되어 전체적인 디자인이 훨씬 세련되었고, 문화재 관리도 전문화되어 박물관 리노베이션과 새로운 역사 발굴을 반영한 전시 등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황리단길에 넘쳐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며, '고리타분한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있는 경주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다. 종종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와 비교되는데, 볼거리나 역사적 깊이 면에서 경주가 훨씬 앞선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여는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이후 불과 122년 동 수도였던 데 반해, 경주는 무려 천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이는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합친 기간과 맞먹는 긴 시간이다.


신라는 세 명의 시조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를 바탕으로 박, 석, 김 세 왕조가 교대로 이어졌다. 총 56명의 왕 중 박 씨 10명, 석 씨 8명, 김 씨는 38명으로 대부분이 김 씨 왕조였다. 조선왕조 500년에 27명의 왕이 있었으니 대략 두 배에 해당한다.


1~8대: 박 씨 (4대 석탈해만 석 씨)

9~16대: 석 씨 (13대 미추왕만 김 씨)

17~52대: 김 씨

53~55대: 박 씨

56대: 김 씨 (마지막 왕)

결국 신라의 주요 시기는 대부분 김 씨 왕조가 중심을 이뤘다.



신라 역사 분류

신라 역사는 보통 고신라와 통일신라로 나뉘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더 세부적으로 구분해 보았다.


1. 박 씨 왕조 시기

- 신라 건국 초기

-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2. 석 씨 왕조 시기

- 미추왕릉


3. 김 씨 마립간 시기

- 내물, 실성, 눌지, 자비, 소지 마립간

- 지증왕부터 ‘왕’이라는 칭호와 ‘신라’라는 국호 사용

- 대릉원 고분들은 이 시기 조성됨


4. 삼국통일 준비 시기

- 법흥왕: 불교 수용

- 진흥왕: 전성기

- 무열왕: 660년에 백제 멸망

- 이 시기 건축물: 황룡사와 9층 목탑, 분황사


5. 통일 시기

- 문무왕: 668년 고구려 멸망, 삼국통일

- 경덕왕: 문화적 전성기

- 주요 유적: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불국사, 석굴암


6. 쇠퇴기

- 혜공왕: 경덕왕을 이어 성덕대왕신종 등을 완성했지만 쇠퇴 시작


7. 후삼국시대

-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 등장

- 신라는 경주 주변만 유지

- 경애왕이 고려에 항복하며 멸망



여행 일정과 역사적 배경

첫째 날

- 불국사, 석굴암,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 위치: 동해권

→ 5. 통일 시기


둘째 날

- 대릉원 중심 시내 관광

→ 3. 마립간 시기


셋째 날

- 계림, 월성

→ 1. 박 씨 왕조 시기

- 분황사, 황룡사지

→ 4. 삼국통일 준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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