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만 보면 당신은 이미 총,균,쇠를 읽었다.

총균쇠를 읽고 다시 펼친 책들: 지리의 힘부터 한국어의 기원까지

by 사막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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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책은 뉴기니인 얄리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긴 책을 썼고, 그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저자는 민족마다 다르게 나타난 역사적 발전에 대해 방대한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워낙 광범위한 시공간을 다루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어떤 페이지는 반복해서 읽어야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무척 흥미로워서 계속 읽게 된다. 왜 스테디셀러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특히 1532년 11월 16일, 아타우알파와 피사로의 첫 만남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신대륙 최대 국가인 잉카의 절대군주로서 8만 대군에 둘러싸여 있었던 반면, 스페인의 피사로는 말을 탄 병사 62명과 보병 106명뿐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하는 것으로 끝났고, 이는 유럽이 잉카제국을 정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승리의 요인은 말, 쇠 무기, 총, 그리고 갑옷이었다.


그렇다면 스페인이 가지고 있었던 이 '총, 균, 쇠'가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없었을까? 그 차이를 만든 대표적인 요인을 네 가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축화·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동식물의 대륙 간 차이다. 동식물을 이용한 농경과 가축화, 그리고 정주 생활이 이루어져야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작이 쉬운 작물과 적절한 기후 조건을 가진 지역은 그리 많지 않다. 야생 동물도 마찬가지다.


"야생 동물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온순해야 하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먹이가 저렴해야 하고, 질병에 면역성이 있어야 하고, 성장이 빨라야 하고, 감금 상태에서도 잘 번식해야 한다." (p. 576)


저자는 이를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듯, 가축화 역시 수많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동물은 전 세계에 얼마 되지 않으며, 그 대부분이 유라시아 대륙에 서식했다.


또한 인구가 늘고 정주 사회가 되면 전염병이 등장한다. 대중성 전염병은 주로 사회적 무리를 이루는 동물에게서 발생하는데, 소나 돼지 같은 사회적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그 세균이 인간에게 옮겨온 것이다. 유럽인이 신대륙을 정복할 때, 총칼에 죽은 원주민보다 병원균에 의해 사망한 원주민이 훨씬 많았다. 그동안 아메리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드물었던 이유는 바로 가축화된 동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둘째, 확산과 이동 속도의 차이다.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인 반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남북 방향이다. 남북 축을 따라 움직이면 위도가 바뀌면서 기후, 서식지, 강우량, 낮의 길이 등이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농작물과 가축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반면 유라시아에서는 거리가 멀더라도 위도가 같다면 기후가 비슷해 농작물이나 가축, 기술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셋째, 대륙 간 확산의 난이도다. 어떤 대륙은 다른 대륙보다 더 고립되어 있어 문명의 확산이 어렵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더 작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가장 고립되어 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근대까지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가장 늦은 발전을 보였다.


넷째, 각 대륙의 면적과 인구의 차이다.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으면 서로 경쟁하는 사회의 수가 늘어나고, 발명품도 더 많이 만들어져서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위대한 발명가는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그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환경이 필수적이다. 특히 책에서 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한글을 언급한 부분이 반가웠다. 서두에서도 저자는 위대한 문자인 한글로 자신의 글이 공유되어 기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얼기설기 알고 있던 지식의 빈틈이 꼼꼼히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존에 읽은 책 중 이 '총,균,쇠'와 연결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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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의 힘’ (팀 마샬)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동서 축의 유라시아와 남북 축의 아메리카가 갖는 차이, 강과 지형이 교류에 미치는 영향 등 '지리의 힘' 저자가 '총, 균, 쇠'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했다.


2.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로버트 B. 마르크스) '총, 균, 쇠' 출간 이후 저자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유라시아가 유리한 조건이었던 건 알겠는데, 왜 하필 중국이 아니라 유럽인가?" 이 책의 후기에서도 그 내용을 다루지만 상세하지는 않다. 로버트 마르크스의 책은 세계 경제를 장악했던 동양(중국, 인도)이 불과 200년 사이에 어떻게 서양에게 역전당했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3.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힌두교의 암소 숭배, 이슬람의 돼지고기 혐오 등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설명한 명저다. 이 책은 뉴기니의 '화물 숭배(Cargo Cult)'도 다루고 있다. 원주민들은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번역의 한계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한다. 바로, 저들이 말하는 대로 예배하고 기도하면 자신들에게도 축복(화물)이 올 것이라 믿었다. 메시아가 '화물'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올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기도하고 노동해도 화물은 오지 않았다. 이때 '화물의 비밀'을 찾으려는 정치인 얄리가 등장한다. 원주민들은 얄리가 화물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화물을 가져다줄 예언자라고 믿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1975년작이고, 다이아몬드 교수가 얄리를 만난 건 1972년이다.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질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4. ‘식인과 제왕’ (마빈 해리스) 가축화와 작물화에 따른 정착 생활, 즉 신석기 혁명의 허상을 비판하는 책이다. 농경 시작 후 인류는 더 긴 노동 시간과 빈약한 영양 상태에 시달리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보다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총, 균, 쇠'에서도 식량 채집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굳이 농경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5.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이동한 사피엔스가 어떻게 자연을 파괴했는지를 다룬다. '총, 균, 쇠'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근대까지 구석기에 머문 이유 중 하나로 엘니뇨 남방 진동에 따른 불안정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을 꼽는다.


6.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부록: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이 책의 부록은 '총, 균, 쇠'의 부록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와 연결된다. 일본어는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언어인데, 그나마 가장 유사한 언어가 한국어라고 한다. 홋카이도의 아이누인이 일본 원주민이고, 현대 일본인은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보통 삼국시대에 건너갔다고 보지만, 언어학적으로 두 언어가 갈라진 시점은 약 2,000년 전이 아니라 5,000년 전쯤이라고 한다. 2,000년 정도의 차이라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정도로 비슷해야 하는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그보다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와 유사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는 고대 일본어와 유사한 점으로 보아 그 시간적 격차를 설명할 수 있다. 한일 관계를 유대인과 아랍인에 비유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같은 핏줄이지만 오랜 시간 적대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덧붙이자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인의 기원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읽은 태국 역사책보다 오히려 '총, 균, 쇠'가 기원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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