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독후감 쓰기는 싫어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나도 작가를 동경하지만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은 늘 도망 다녔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니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었다.
학기 중 수업을 들은 모든 학생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써야 한다.많으면 500명에 가까운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업 내용과 태도를 작성한다. 담임인 학급 학생의 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도 써야 한다. 글 쓰기 싫어하던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나를 단련시킨 것은 생기부였다.
생기부를 잘 쓰기 위해, 생기부 지옥에서 빠져나와 나도 제대로 된 방학을 즐기기 위해, 많은 글쓰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장르가 조금 특이하다.
저자는 단행본 교정 교열자로 다른 사람들이 쓴 문장을 다듬는 일을 한다. 어느 날 본인이 교열작업을 한 책의 작가에게 메일을 받는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적의를 보이는 것들
문장을 다듬는 것에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반복된 사용으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이 있다. 습관적으로 쓰이는 '적, 의, 것, 들'만 잡아내도 문장은 훨씬 깔끔해진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문장을 다듬을 때 주의할 목록을 말하고 있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사랑을 할 때와 사랑할 때의 차이,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
여기에서 하지 말라는 어색한 표현, 모두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예문을 제시하고 수정 전 후를 함께 보여주어 왜 이상한지 설명한다. 수정 전 예문을 보고 혼자 문장을 다듬어 보고, 수정 후 문장을 확인하며 읽었다. 부제목처럼 내가 쓴 글을 내가 다듬는 법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소장해 두고 글 쓸 때마다 찾아봐도 좋을 거 같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메일을 받은 것이 책을 쓰게 된 계기, 혹은 책의 시작을 여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후에도 계속 메일을 주고받는다. 문장 다듬는 내용 사이사이에 저자의 일상과 두 사람의 메일이 등장한다. 몇 개의 장르가 섞인 듯한 책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처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슨 장르이지? 하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교정 교열책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보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인 '동사의 맛'도 비슷한 방식으로 썼다고 한다. 그 책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