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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Jul 22.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평론가 이동진 선정 '2023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꽤 핫한 책이다. 도서관 인기도서라서 대출예약조차 힘들어 오래 기다리다가 결국 구입해서 읽었다. 기대가 컸던 것인지, 재미있었지만 소장하고 싶을 만큼은 아니다. 원제는 지극히 평범하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 한국어 제목이 훨씬 임팩트 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페트릭 브링리)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 이후, 화려한 직장을 버리고,

본인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고자 한다.


미국에도 브런치스토리 같은 플랫폼이 있다면, 올라올 만한 글이다. 형의 죽음이라는 서사가 있고, 누구나 아는 메트로폴리탄이지만, 경비원이라는 낯선 시선으로 박물관을 소개하고 있다.


브링리는 본인이 아는 미술의 모든 것을 부모님께 배웠다고 한다.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어머니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을 데리고 다녔다. 미술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은 저자가 미술관으로 숨어드는 선택을 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브링리는 십 년 동안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으로 각 관에 머무르며 온전히 예술과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해박한 미술사 지식과 미술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도판이 실려 있으 좋을 텐데, 저작권 때문인지 일러스트레이트 몇 점과 도판 목록만 있는 것이 아쉽다. 미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도판을 찾아보며 읽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와 함께 그림 검색 방법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https://www.metmuseum.org/


톰 브링리

형인 톰 브링리는 뛰어난 아이였다. 수학 영재였고, 운동을 잘했고, 주변 사람을 돕고, 겸손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저자는 어딜 가나 톰 브링리 동생으로 기억되었다. 그에게 형은 언제나 큰 어른이었다. 그런 형이 병에 걸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형이 말했다.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형이 하는 말이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로 병이 악화된 어느 날, 형은 갑자기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맨해튼 밤거리를 뛰어나가 맥너겟을 사 오던 그때를 행복하게 기억한다. 형의 병실에서 함께 즐거운 소풍을 즐겼다. 저자에게 그 장면은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브뤼헐은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농민들의 평범한 장면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그렸다.

저자는 생각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곡물 수확' 156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의 시작

박물관은 비교적 근대에 나타난 개념이다. 루브르 같은 박물관은 주로 왕실 소장품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짧은 역사의 미국 메트로폴리탄은 일반 시민들의 수집품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랜 시간 기증이나 유증, 구매를 통해 작품을 취득했다. 소박한 기원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메트로폴리탄은 그 이름만큼 거대하다. 세계 최강대국이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대표적인 인물로 '로저스 펀드'가 있다. 기관차 제조업자였던 로저스는 5백만 달러의 재산을 메트 앞으로 남겼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01년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로저스의 돈에 붙는 이자는 메트의 경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경비원의 출신 국가는 가이아나, 알바니아, 러시아 출신이 가장 많다고 한다. 다른 카리브해 연안국들과 구소련 국가들이 그 뒤를 따른다.

경비과의 베테랑인 싱 대장도 가이아나계 미국인이다. 그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는데, 저자의 첫아들을 받아주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나는 교사가 되기 전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다. 우리 회사 경비원 중 한 분은 전 직원을 모두 기억하다. 이름은 물론, 부서와 직급, 누가 새로 왔는지, 누가 일을 잘하는지, 어떤 상사가 쓸데없는 야근을 많이 시키는지. 심지어 누가 불륜인지까지. 그분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분이셨다. 그분에게 회사는 하나의 학교였을 것이다.

 


관람객 이야기

브링리는 박물관 지정된 공간에서 방문객들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유형을 정리했다.


대표적 유형은, '관광객'이다. 무조건 가장 유명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들, 미취학 아동들을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들이 있으며, 손에 카메라를 들고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 유형도 있다. 첫 번째, 예술과 사랑에 빠진 사람, 두 번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체와 사랑에 빠진 사람, 마지막은 열애 중인 연인들.


관람객들이 그림을 만지는 일은 드물지만, 조각상, 석상, 골동품 의자 등을 만지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단순히 규칙 자체를 모르는 관람객도 있다. 고대 조각상 무릎에 기어오르려고 하는 중학생 같이.

 

죄다 '예수'그림 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관람객, 전시된 모든 유물이 진품인지 궁금해하는 관람객, 학생 단체 관람단, 메트로폴리탄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찾는 관람객도 있다.



덴두르 신전

1970년대 댐 공사로 나일강이 범람했을 때 박물관 내부로 통째로 이동해 온 고대 덴두르 신전이 신기했다. 다시 메트를 간다면 꼭 보고 싶다. 특히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왕국의 마지막 작품으로 부조 속 파라오는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라고 한다.

덴두르 신전. 기원전 10년경. 이집트, 로마 시기


신의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 : 에피파니

브링리는 10대 청소년들이 과제와 관련해서 토론하는 것을 듣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말로 그들의 신을 믿었을까? 그들이 왜 그러했다고 또는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예술 작품 두 점을 근거로 들어 설명하시오." 꽤 흥미로운 주제이다.

브링리는 조용히 학생들의 토론을 듣다가 작은 도움을 준다. 작문에 만한 단어도 하나 알려준다. 그리스어 '에피파니'는 원래 '신의 방문'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제 '신의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꿈속에서나 깨어 있을 때나 끊임없이 에피파니를 경험했다고 알려준다. (p204) 그리고 참고할 만한 작품으로 페이디아스 원본인 아테나 대리석 두상을 소개해준다.

메디치 아테나. 페이디아스(원본). 138~192년 경


하루의 일 : 조르나타

메트로폴리탄 기획전 중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준비하며 그린 소묘 작품 전시가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프레스코화이다. 프레스코는 신선하다는 뜻으로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벽의 일부가 되어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단점은 석고가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하고 수정이 불가능하다. 고쳐 그리려면 긁어내고 회반죽을 새로 발라야 한다.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나타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나타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 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p280)

위대한 작품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결과물이라는 저자의 통찰력이 인상적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클로이스터스 : 메트로폴리탄 분관

클로이스터스 : 메트로폴리탄 분관

"여기가 뉴욕이라는 게 믿어져?"

메트로폴리탄 분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할 법한 이야기라고 한다.


오래전 뉴욕 여행에서 혼자 방문했던 메트로폴리탄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한 날, 분관도 방문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했기에, 본관 전시를 어느 정도 보고 나서 나는 분관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안내데스크에 가서 문의했다. 직원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이라고 하니, 여기 한국 직원이 있다며 옆에 있는 직원을 소개해 주었다. '분관을 가려고 한대. 한국인이야. 네가 설명해 줘'라고.

한국인으로 안내받은 직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의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망설이더니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

"거기 아무것도 없어. 나무 많아."라고. 나의 영어실력만큼 형편없는 한국어였다. 아마도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이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다는 것으로 이해했고, 시간도 늦었기에 나는  가지 못했다.


뉴욕을 다시 간다면 클로이스터스를 방문하고 싶다. 우리나라 현대미술관 덕수궁 분점 같은 느낌일 것 같다.



미술관 밖으로 품고 나갈 작품


저자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으로 십 년을 일한 후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이 책을 썼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어떤 대상을 상실했을 대상에게 쏟아부었던 리비도를 새로운 대상에서 쏟아붓는 과정을 '애도'라고 말한다. 상실한 대상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상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애도는 불가능해지며 이를 '우울'이라고 한다. 애도되지 않은 상실은 무의식 중에 우울로 남아 언제든지 귀환될 있으며 때로는 사회적인 문제가 수도 있다.

저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낸 십 년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애도의 시간이었다.


브링리의 어머니는 어린 자녀들을 미술관에 데리고 가서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십 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한 메트로폴리탄을 떠나는 마지막 날, 그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목록을 만들고 그 리스트를 추리고 추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한다.

프라 안젤리코 <십자가에 못 막힌 예수> 15세기


초기 르네상스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브링리는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형 톰을 생각하게 만들어서 좋다고 한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막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또한 십자가의 발치에는 뒤죽박죽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침통해하는 사람들,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 지루해하는 사람들, 심지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이런 무심한 사람들이 우리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큰 고통이 있더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아래에 슬픔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따르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희망이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320)


마지막으로 브링리는 우리들에게도 말한다.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선정하고 그것을 품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이것이 우리가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유이다.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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