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바다야!

복도에 붙은 한 장의 그림

by 예슬하다

도윤이는 말수가 적어요.


친구들이랑도 조용히 지내지만,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반짝여요.


상어가 어떤 이빨을 가졌는지, 고래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조용히 듣던 아이가 갑자기 바다를 펼쳐내는 마법사처럼 변하죠.




그리고 그림을 정말 잘 그려요. 그래서 매일매일 그림을 그려요.


그림 속엔 언제나 바다가 있지요.


고래가 헤엄치고, 상어가 웃고, 작은 등대가 불빛을 비추는 바다.


도윤이의 담임 선생님은 매주 금요일마다 그림들을 복도 게시판에 붙여줘요.


“이번 주 도윤이 전시회입니다!”


이젠 아이들도 ‘도윤이의 미술관’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해졌죠.


매주 바뀌는 도윤이의 바다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도 인기예요.


“이번엔 상어가 날아다니네!”
“우와, 상어 다섯 마리나 있어!”
“진짜 그림책 같아.”


도윤이는 그 말에 조용히 미소 지어요.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게 도윤이에겐 더 편하거든요.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말했어요.


“이번 주 금요일에 바다 그리기 대회가 있어요! 전교생이 참여할 수 있어요.”


도윤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며칠 동안 도윤이는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노란 고래와 헤엄치는 줄무늬 상어, 조용한 바닷속 마을, 그리고 불빛을 밝히는 작은 등대까지.


그림에는 도윤이의 마음이 담겼어요.




그런데 대회 당일 아침, 도윤이는 감기에 걸려버렸어요.


“엄마, 오늘 못 가겠어요…”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어요.


“괜찮아.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야.”


며칠 뒤, 학교 복도에 대회 결과가 붙었어요.





대상: 5학년 김소윤




옆에는 대상 그림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어요. 그 앞에서 아이들이 웅성였어요.


“어? 이거 도윤이 그림 아니야?”
“상어 날아다니는 거 저번에 도윤이가 그리지 않았어?”
“근데 도윤이가 아니야…”


도윤이도 조용히 그림을 바라봤어요. 색깔도 구도도, 너무 익숙했어요.


바로 며칠 전, 자신이 복도에 붙여뒀던 그림과 정말 닮아 있었거든요.


미술 선생님이 그림을 유심히 보다가 중얼거렸어요.


“도윤이 그림인 줄 알았는데…”


담임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림 속 노란 상어, 상어의 줄무늬까지… 복도에 붙였던 도윤이 그림과 너무 비슷해요. 아이들도 다 기억해요.”


미술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어요.


“…심사할 때 이름을 모두 가렸거든요. 그래서 이 그림을 보자마자, ‘도윤이 그림이다’했어요. 그런데 지금 발표 보고 알았네요. 이게 소윤이 그림이었군요.


그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어요.


“도윤아, 너 그 그림 그렸잖아!”
“소윤이 누나가 따라 그린 거 아냐?”
“대회는 못 나갔어도, 원래는 도윤이 그림인데…이건 베낀 게 분명해!”








며칠 후, 선생님들은 소윤이를 불렀어요.


“소윤아, 이 그림… 혹시 어디서 본 거니?”


소윤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어요.


“그게 실은…복도에서 봤어요. 도윤이 그림인 줄 몰랐는데… 너무 멋져서 그렸어요. 그냥 비슷하게 그린 건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미술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마음은 이해해. 멋진 걸 보고 닮고 싶다는 마음, 선생님도 잘 알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을 따라 그리고, 그걸 내 것인 양 내보이는 건, 정직한 방법이 아니야.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보다, 진심으로 그린 그림이 더 귀하거든.”


소윤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그럼… 이제 저, 그림 그리면 안 돼요?”


미술 선생님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그건 아니지.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어. 하지만 다음엔, 네 마음에서 나온 걸 그려보자. 소윤이만의 색깔, 소윤이만의 바다 말이야. 다른 사람의 빛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너만의 빛을 찾아보는 거야. 그게 진짜 예술이야.”










며칠 후, 교장 선생님의 방송이 흘러나왔어요.


“바다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 수상자 변경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원래의 창작자가 확인되었고, 진심과 상상력으로 바다를 그려준 3학년 도윤 학생에게 대상을 수여합니다. 정직한 마음을 지켜준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학교 게시판에는 도윤이의 그림이 붙었어요. 상어가 웃고 있고, 그 작은 등대가 빛나는 바다.


그 앞에서 친구들은 조용히 말했어요.




“이게 진짜 도윤이 바다야!”
“다시 봐도 최고다.”
“도윤이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야.”





도윤이는 말없이 웃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바다를 그리고 있었죠.
이번엔, 바다 위에 무지개가 뜬 풍경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