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은 커서도 유효하니까

해리포터를 오래, 여러 번 사랑한 한 사람의 기록

by 예슬하다

어릴 적 극장 안은, 세상에서 제일 어두운 곳 같았다. 나는 엄마,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앉아 있었다. 의자는 몸보다 커서 푹 꺼졌고, 팝콘은 너무 달고, 영화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그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였다.

덕지덕지 검은 망토, 날아다니는 빗자루, 이상한 주문들,
그리고 마법이라는 말에 조용히 기대를 품었다.


‘혹시 나도… 아직 편지를 못 받은 걸까?’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땐 자막이 너무 빨랐고, 해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마법이 좋았고, 어쩌면 나도 그런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상할 정도로 무서워했던 장면들이 있다.


덤블도어가 아기를 내려놓던 장면. 그리고 소망의 거울 앞에 홀로 선 해리.


왜 그런 장면이 무서웠을까.


아마도 그 어둠 속의 조용함이, 아이였던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기 때문일지도.




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해서 해리포터를 반복해서 봤다.

그때는 이야기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싸우는 이유, 그리고 이겨야 하는 이유까지도.


해리는 착하고, 볼드모트는 나쁘다. 그런 선명한 세상 속에서 나는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꼭 잘 되었으면 좋겠고, 덤블도어가 해리를 더즐리 부부에게 맡긴 결정이 미웠다.


왜 그랬을까.
왜 해리는 그렇게 외롭게 시작해야 했을까.



지금은 그 질문의 답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해리는, 너무 큰 운명을 가진 아이였다.

그리고 그 운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나는 자꾸만 볼드모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도 해리처럼 부모 없이 자랐고, 같은 세계를 마주했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차이는 뭘까.


누군가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더즐리 부부가 해리를 미워했던 이유도 다시 생각해본다.
그들은 해리를 싫어했을까. 아니면, 마법이 두려웠던 걸까.


그들의 가족에게 너무 큰 일을 안겨준 세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세계를 해리가 다시 열어버릴까 봐. 그래서 그렇게 가혹하게 굴었던 건 아닐까.


그들도 결국, 해리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선과 악이란 건 없어. 권력만 있을 뿐. 나약한 자들은 가질 수 없지.”

볼드모트가 해리에게 한 말이다. 그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덤블도어는 말했다.

"그 돌은 찾고 싶어 하지만, 찾아내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사람만이 손에 넣을 수 있단다.”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쓰지 않는 사람.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


아마 해리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사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법은 점점 더 현실 같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해리포터를 다시 본다.


같은 장면, 같은 대사, 같은 음악.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지금의 나에게 붙여본다.



해리가 아니라 해리를 보는 나를 위한 영화가 되었다는 것.
그게 어쩌면, 내가 해리포터를 ‘오래도록 좋아하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마법은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여전히 이야기를 꿈꾸는 이유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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