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사람들 속에서 머리가 밀린 젊은 여성이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지만 미소를 짓고 있다. 강렬한 포스터에 이끌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굉장히 몰입감 있게 결말까지 보고 말았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게 한 이 드라마는 데버라 펠드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로 총 4부작으로 구성되어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의 주인공은 에스티로 17살 어린 나이에 중매로 결혼하였다. 뉴욕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그녀는 뉴욕 윌리엄스버그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생활했다. 이 드라마는 그녀가 평생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공동체에서 벗어나 베를린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가 떠난 공동체인 하시디즘은 대부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로 이루어진 굉장히 폐쇄적인 유대교다. 21세기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정도로 현대문명과 격리되어 있다. 특히나 이 공동체는 여성에게 폐쇄적인데 이 공동체의 여성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로 성장하며 중매를 통한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 후에는 머리를 밀고 남편을 왕처럼 모시며 살아야 한다. 이 집단의 여성들에게 주어진 행복은 남편을 만족시키는 것 그리고 아이를 많이 낳는 것뿐이다.
남자는 항상 왕처럼 대접받아야 하지
/ 그럼 저도 왕비가 되나요?
그녀의 엄마는 오래전 폐쇄적인 공동체를 버리고 베를린으로 떠났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도 낳지 못하고 엄마도 없는 에스티가 공동체 사람들 눈에는 항상 골칫거리다. 에스티는 그런 엄마를 미워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란 기대와 다른 사랑 없이 맺어진 결혼과 숨이 막힐 듯 엄격한 규율의 신앙 공동체의 억압에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미워하던 엄마처럼 베를린으로 떠나는 것을 결심하게 된다.
어색한 가발을 쓰고 도착한 베를린에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꿈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에스티가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호수와 마주한 장면이다. 그 호수가 자신이 평생 속해있던 공동체의 비극과 관련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나게 강에 뛰어든 친구들에게 에스티는 이런 강에서 수영을 하냐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답한다.
호수는 호수일 뿐 죄가 없어. 지금은 마음껏 수영할 수 있는 곳이지
그 말을 들은 에스티는 천천히 호수에 들어가 어색하게 자신의 머리 위에 얹혀있던 가발을 던지고 호수에 온몸을 맡긴다. 자신의 조부모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독일에서 그녀는 여태껏 느끼지 못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자신이 속해 있던 울타리를 완전히 깨부수고 세상에 나온 에스티의 모습에 수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과연 그녀는 자유를 얻은 베를린에서 어떤 삶을 선택해나갈까?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전개 내내 불편함과 신선함이 공존한다.
젊은 여인을 되찾아 남편에게 되돌려줘야 합니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문화의 이야기 같지만 현재 뉴욕에 존재하고 있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굉장히 사실적이어서 새롭게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에스티가 몸을 담고 있던 공동체는 집단주의이기 때문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 면이 강해 같은 여성으로서 러닝타임 동안 불쾌함이 몸을 감싼다. 에스티의 공동체는 그녀가 그들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되찾아 남편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흔적들을 따라 그녀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 에스티를 제외한 공동체 사람들을 마냥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폄하하는 악인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흔적을 추적해 베를린으로 넘어온 그녀의 남편 역시 폐쇄적인 자신의 공동체와 다르게 펼쳐진 자유롭고 새로운 세상에 에스티를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넌 늘 불행했지 , 잘못된 건 너라고 난 스스로를 되뇌었어
하지만 너는 전혀 잘못되지 않았어 그저 달랐던 거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겐 행복과 소속감을 주는 따뜻한 공동체 세상이 누군가에겐 모든 걸 억압하는 족쇄였다. 자신이 나고 자란 세상을 스스로 용기 있게 깨버리는 에스티의 모습에서 묘한 희열감도 느껴지며 자신을 점차 찾아가는 에스티를 보며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나를 얼마나 찾아가고 있는가?
나는 에스티를 스스로에게 대입시켜보며 나를 얽매고 있는 족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녀의 공동체 사람들처럼 우리는 발목의 족쇄를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사람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도 정말 잘 만든 드라마기에 이 글에서 약간의 흥미라도 느꼈다면 한 번쯤은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
코로나로 인해 파란빛으로 물들었던 한 해가 어느덧 끝자락에 다다랐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에는 에스티처럼 새롭게 선택하는 자신의 길에 망설이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길 그리고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지금까지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추천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