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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ug 07. 2023

덕질하며 살고 있나요?

덕후가 되어야 하는 이유

이전까지 '덕후'라는 단어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덕후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내 친구들은 모두 엑소(EXO) 덕후였다. 쉬는 시간마다 엑소 노래를 틀고 열창을 했고, 틈만 나면 늑대와 미녀에 나오는 인간 나무(?)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옆에서 '그런다고 엑소가 너네 이름을 알아주냐'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친구들 중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볼 일이 확연히 줄었다. 덕질을 하는 곳에 가야 그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덕후들이 달라 보인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미치는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을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은 삶을 대하는 에너지가 다르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가도, 덕질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도망칠 수 있다. 단순히 비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다. 덕후들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무언가로 달려가는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로 인해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얼마 전, 해외 축구 덕후인 친구를 따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갔다. K리그 vs AT마드리드 경기였다. 월드컵 경기장 내부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고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축구 덕후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는 6만 명의 '좋아하는 것'을 좇아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에너지가 눈과 귀와 심장으로 스며들어 경탄을 자아냈다. 좁디좁은 좌석에 엉덩이와 어깨가 밀착되어도 그 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모인 6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 오늘 하루를 이 순간을 기다리며 설렘을 느꼈다는 것을. 나는 무언가에 이렇게 흠뻑 취한 적이 있었던가? 


무언가에 덕후가 되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깊숙이 빠져들기까지의 시간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공부가 있어야 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만족이 1순위인 행위이다. 덕후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인정 중독에 빠진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에 덕질을 한다는 것은 온전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방법이다. 


요즘 '좋아하는 일로 돈 벌기'라는 타이틀이 유행이다. MZ들은 회사도 자신의 흥미에 맞추어 고른다는 이야기도 개인의 행복이 그만큼 중요시되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단순히 생계 수단이나 지위의 수단으로 여겼던 기성세대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풍토다. 초개인화 시대에 맞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분위기는 매우 옳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일이 되는 순간 도망칠 곳 또한 사라진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해도, 일은 중압감이 있으며 거지 같은 순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칠 곳을 찾아야 한다. 아직 덕질을 해본 적이 없다면, 덕후가 되기로 마음먹어보자. 한 순간에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자. 덕질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보자. '좋아하는 것'에 대해 관대 해져야 나와 친해질 수 있다. 언젠가 당신의 지친 삶을 지탱해 주는 발전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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