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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ug 16. 2023

당근 99도를 만나서 다행입니다

진심 온도

애틋한 물건이 좋은 사람에게 간다는 건 꽤 뿌듯하고 안심되는 일이다. 중고 거래에 있어서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당근 온도 99도면 충분하다. 2년 전, 가족 모두가 이사를 하며 대부분의 가구를 새로 구매했다. 내가 구매한 것들 중, 애착이 가는 가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새하얀 원형 테이블이었다. 오늘의 집과 같은 플랫폼에 들어가면 방좀 꾸몄다는 사람들의 사진이 많이 올라와있다. 그중 열에 아홉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가구였다. 그만큼 '잘 꾸며놓는 방'에 어울리는 가구라는 말일테다. 새로운 방을 갖게 된다면, 나도 그런 감성 사이에 끼고 싶었다. 같은 원형 테이블도 가격대가 다양했다. 자칭 물건을 깨끗하고 오래 쓰는 편이다. 그 자부심 하나로 30만 원대 지름 100m 테이블을 선택했다. 그렇게 2년간, 나는 매일 새하얀 원형 테이블 위에서 얼룩하나 남기지 않은 채 많은 일들을 했다. 그중 1년은 좁은 자취방에서 함께한 탓에, 그 원형 테이블이 식사까지 해결하는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방이 하나 늘었고, 집을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원형 테이블보다 사무형 사각 테이블을 찾게 되었다. 더 오래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원형 테이블을 당근마켓에 올리게 된 이유가 이것이었다. 당근마켓에서 부피가 큰 가구는 빠르게 팔리지 않는다. 반값 그 이하의 가격을 내렸는 데에도 2개월간 대기 상태였다. 그러던 중, 내일 당장 구매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냐는 제안에 몇 개월간 기다림의 보상이라는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늦은 저녁, 구매자는 집 앞으로 차량을 가지고 도착했다. 나는 100mm 크기의 테이블을 낑낑대며 현관문을 통과시켰고, 뒤뚱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1층에 도착하자 구매자분은 엉거주춤하는 나를 도와 문 밖으로 테이블을 꺼내주셨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구매자 분도 인사와 함께 무언가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거 깎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드리는 건데 받으세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푸짐한 빵 2개가 쇼핑백 안에 들어있었다. "와, 정말요! 이런 거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동생이 빵가게를 하는데, 가져온 거예요. 맛있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그렇게 빵을 받아 들고, 테이블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구매자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구매자분이 물었다. "이거 100mm 맞나요?" "네 맞아요!" "흠.. 잠시만요." 그는 차량에서 줄자를 가져오더니 테이블 위로 펼쳤다. 아뿔싸. 90mm였다. 2년간 몰랐던 식스센스급 반전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그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제가 여태 100mm인 줄 알고 쓰고 있었네요. 어쩌죠?" 구매자는 답했다. "제가 100mm를 찾고 있던 중이라서, 구매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빵은 맛있게 드세요!" 왜 한번 더 치수를 재보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다. 구매자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났다. 90mm의 책상을 들고 여전히 엉거주춤거리는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달라진 건 손에 들린 빵 두 개였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는 순간,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정말 죄송한데,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지금 돌아가도 될까요?' '아, 네!' 


테이블 사이즈는 맞지 않지만, 깨끗한 상태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였다. 테이블을 다시 들고나가면서도 받은 게 있어서인지, 나도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구매자분에게는 우연한 사이로 만난 인연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2년간 많은 일을 함께한 테이블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사람에게 깨끗하게 쓰일 거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구매자분의 당근 온도는 99도였다. 종종 당근마켓을 이용했지만, 99도는 처음 보았다. 마치 공작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농담이지만 팍팍한 현대사회에 어쩌면 인성 점수는 당근 온도로 어느정도 파악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99도의 비결이 뭔지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누굴 만나더라도 먼저 주는 마음은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다. '고마움'만큼 다정한 단어가 있을까. 당근의 묘미는 낯선 사람에게 나의 물건을 건네주는 것에 있다. 특히 내가 애착을 가지던 물건이면 더더욱 좋은 사람에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달달한 빵을 먹으며 감사한 행복을 맛보았다. 나도 중고거래를 할 때 종종 작은 선물을 함께 넣는 편이다. 그 선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당근 99도에게 배웠다. 앞으로는 상대방이 '내 물건을 이용해줘서 고맙다' 혹은 '소중한 물건을 건네줘서 고맙다' 는 감정을 느낄 정도의 애정이 깃든 귀여운 선물을 고르려 한다. 마음 온도가 1도 올라가는 사소한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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