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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선 Aug 20. 2024

공간에 맺힌 시간과 형상 그리고 그 너머 네거티브 매스

박영진 개인전: 상속받은 창고 (Hall 1)

공간에 맺힌 시간과 형상 그리고 그 너머, Negative Mass


     공간은 기억의 단위인지 모른다. 공간을 떠올릴 때면 시간과 기억의 덩어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새로 온 집에 내려놓은 이삿짐처럼 기억의 덩어리가 차곡차곡 쌓인 공간은 한 사람의 내면을 구성하고, 기억의 단위였던 공간은 세계를 이해하는 단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간은 사라지기도 한다. 부서지기도 하고 마모되기도 하며, 파괴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공간이 함축했던 시간과 기억의 덩어리는 어디로 갈까. 아마도 그것은 그 공간을 걷고 만지며 거기 머물렀던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기호로, 그 사람의 감각 속에 고립될 것이다. 박영진은 자신이 걷고 경험한 공간을 떠올리며, 현실에서 사라진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그 공간은 무엇이었나 질문한다. 그리고 기억으로서 고립된 공간을 자신의 밖으로 불러옴으로써 발화를 시작한다.

   ‘Hall1’에서 열린 개인전 《상속받은 창고》는 박영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 그 중심을 차지하는 ‘건축물’, 그리고 건축물이 차지한 공간을 반전시킨 공간이자 확장된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네거티브 매스 Negative Mass’ 개념을 횡단하며 그동안의 작업을 선보인다. 두 개의 층으로 나뉜 전시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천장까지 탁 트인 1층의 중앙 부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2층 부분, 1층의 연장으로 2층 아래 드리워진 부분이다. 전시에 출품된 〈Black Sand〉와 〈Yellow Mass〉, 〈Negativemass+womb〉와 〈Black Mass〉, 그리고 2층의 프로토타입 작업들은 각 부분에 놓여 하나의 중심점으로부터 퍼지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각자 풀어낸다.


1 물질로서 기억된 공간

     감각 속에 잠겨있던 공간을 집어 올리면, 어떤 모양이 될까.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을 경계 짓는 미로의 벽처럼 검은 모래가 선을 그린다. 그 위로 품에 안길만한 크기의 노란색 레진 덩어리들이 검은 모래가 만든 길을 따라 일렬로 놓여있다. 검은 모래 〈Black Sand〉와 그 위에 놓인 노란 레진 덩어리들인 〈Yellow Mass〉는 가장 잘 보이는 공간의 중심에 있다. 〈Yellow Mass〉는 42개의 레진 조형물로 구성된다. 이 조형물은 작가가 방문한 경험이 있는 건물의 형태를 반전시킨 형상을 하고 있다. 지면에서 지하층을 포함해 건물을 뿌리 뽑는다면 이러한 형태가 될 것이다. 레진 덩어리 아래 정갈하게 선을 그리는 검은 모래는 2층에서 보면 ‘MASS’라는 문자 형태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Yellow Mass〉가 작가가 경험한 공간에 대한 기억의 덩어리로서 전시장에 머물 때, 〈Black Sand〉는 기억의 덩어리와 전시장 바닥 사이에서 흩어진 알갱이이면서 동시에 뭉친 입자로서, 또한 ‘MASS’라는 단어가 가진 다양한 언어적 의미로서 조형물을 상징한다.

     작가가 기억했던 공간은 물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물질적 공간’이었다. 작가는 집이 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땅을 파내고 건물을 세우는 과정, 그렇게 세워진 건물이 또다시 허물어져 움푹 파인 공터가 된 땅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땅의 연장으로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리라 생각해 왔던 건물이 붕괴되고, 견고해 보이던 땅이 움푹 파인 장면은 공간의 물질성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 경험은 그동안 작가가 가지고 있었던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했다. ‘공간’을 몸으로 경험함으로써 작가에게 ‘공간’의 의미는 더욱 물리적인 의미로 확장되었고, 이는 건축물과 관련된 형태를 조형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 공간을 활보하는 타임라인 인디케이터

     작가는 건물을 짓고 땅을 높이거나 낮추는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게임 ‘심즈 Sims’에서 가상의 공터 위에 건물을 짓곤 했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실에서 일으킬 때, 게임과 현실 사이의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집의 구조를 만들고 허무는 데에 오랜 시간이 드는 현실과는 달리, 게임에서는 벽을 세우고 건물의 층을 높일 때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게임상의 시간은 멈춰있다. 오히려 시간이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벽이 세워지고 허물어지는 모든 시간에 단숨에 접속할 수 있다. ‘스케치업’과 같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에서 역시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조형물의 부피와 형태, 무게 등을 마우스의 움직임 몇 번으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기능을 통해 프로그램 속 조형물의 구조적 변화를 플레이(play)하고 리와인드(rewind) 할 수 있다.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게임에서의 감각과 3D 모델링 프로그램에서 시점을 조절하여 과거 시점과 미래 시점을 오갈 수 있는 타임라인 인디케이터(Timeline Indicator)의 감각으로 현실의 물질을 인지한다. 작가는 방금 완축된 건물을 보면서 건물이 사라진 이후를 상상한다.

   〈Yellow Mass〉 역시 과거에 경험한 공간들을 건물이 뿌리 뽑힌 이후 시점으로 시기를 선택하여 불러온 작업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의 한 층을 위에서 내려다본 도면과 그 도면을 회전시킨 그림 사이의 틈을 빨간 모래로 채운 〈Rotating Formwork〉(2020)에서도 가상으로 설정한 미래의 움직임을 타임라인 위에서 조정했다. 또 건물에 흔적만 남아있는 거푸집 선 위로 빨간 모래를 채워 거푸집을 부분적으로 구현했던 〈RED SAND MOUND〉(2018) 역시 과거에 있었던 움직임을 타임라인 위에서 포착한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 타임라인 위 인디케이터를 조율하는 시뮬레이션에서 시작되었다. 《상속받은 창고》는 박영진의 2021년의 기록 〈POOL〉에서 확장된 전시다. 작가는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이라는 설정으로 가상의 공간을 구상한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그 땅에 건물을 짓고 가지고 논다. 〈POOL〉에서 거대한 조각을 만들고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는 화자는 그 건물이 주는 조형적 즐거움에 대해 음미하다가, 아름답지만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건물을 결국 허물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건물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건물이 자리 잡았던 딱 그만큼의 홈이 파였고, 화자는 오목하게 파인 그 자리를 정비하여 풀장을 만들기로 다짐하면서 글을 끝마친다. 작가는 〈POOL〉에 등장하는 건축물을 연상하며 전시 공간으로 ‘Hall1’을 선택하고, 전시 공간을 〈POOL〉에 나오는 건축물의 내부인 듯 작품을 배치했다. 작가는 〈POOL〉에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에 건물을 지은 뒤, 그 건물을 허물고 거기에 다시 풀장을 만든다. 이로써 작가는 ‘심즈’와 ‘스케치업’에서 조형물을 만들 듯 조형물의 타임라인에서 미래를 지시한다. 이처럼 작가에게 공간이란 단순히 지면 위에 세워진 어떤 것이 아닌, 그 자리가 지나온 그리고 지나갈 시간을 포함한다.


Nagative mass+Womb, 2023, eva, 60x210x20cm, 사진: 양이언(@photolabor_)


3 그것이 아닌 모든 것

     건물이 뿌리 뽑힌 빈 집터는 건축물을 둘러싼 바깥 공간을 보게 한다. 그 바깥 공간을 다시 반전시키면 안이 될까. 안을 밖으로, 밖을 안으로 반전시키던 행위는 점차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 가닿는다. 2층 아래에 깊은 공간에는 〈Negativemass+womb〉와 〈Black Mass〉가 있다. 두 작업은 큰 냄비에 글루건 심을 담아 녹인 뒤 ‘MASS’라는 문자의 형태가 되도록 만든 조형물이다. 전시장 좌측의 〈Negativemass+womb〉는 녹은 글루건 심을 부어 가로로 눕힌 직사각형 상자의 옆면을, ‘MASS’라는 글자가 반복적으로 둘러싸도록 만들었다. 전시장 우측에는 ‘MASS’라는 글자가 원기둥의 옆면을 둘러싼 형상이 되도록 만든 〈Black Mass〉가 있다. 이 작업은 ‘MASS’의 스펠링을 각진 형태로 만든 뒤, 동그랗게 말아서 처음 시작한 글자 ‘M’과 마지막 글자 ‘S’가 닿아 원기둥 형상이 되도록 한 작업이다. 〈Black Mass〉는 멀리서 보면 1층의 바닥에서부터 2층의 바닥 사이를 지탱하는 원기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층 바닥에 매달려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두 작업은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을 둘러싼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MASS’라는 문자를 드러내는 두 작업은 문자가 아닌 부분이 메워지지 않아 언뜻 구멍이 난 그물처럼 보인다.

     이들을 자세히 보면 안과 밖이 뒤엉킨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직사각형 상자나 원기둥의 겉면에 글루건을 부은 후 그대로 굳힌 형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에 따르면 울퉁불퉁해야 할 바깥을 향하는 면이 오히려 평면에서 떼어낸 듯 매끄럽다. 반대로 안쪽을 향하는 면은 글루건을 부어 굳힌 것처럼 표면이 거칠다. 이는 작업의 형태를 완결할 때, 작가가 의도적으로 글루건을 쏘아 굳어진 바깥 면이 안으로 오도록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박영진의 과거 작업과 〈Yellow Mass〉가 거푸집으로서 건물이라는 ‘덩어리’를 반전시켰다면, 이들은 거꾸로 벗어놓은 양말처럼 ‘표면’을 반전시킨다. 이 밖에도 예상을 벗어나는 지점이 또 있다. 〈Black Mass〉는 ‘2층과 1층 사이를 받치는 기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업은 그 질문의 반대 점으로 향했다. 2층을 지지해야 할 기둥은 2층을 지지하기는커녕, 천장의 고리에 걸려 간신히 원기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Negativemass+womb〉의 길쭉한 두 면은 이미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Black Mass〉와 〈Negativemass+womb〉는 ‘서있기’라는 기능적 면에서도 반전을 이룬다. 〈Yellow Mass〉에서 거푸집으로서 반전을 시도했던 작가는 점차 다른 차원의 반전을 물색한다.

     2층으로 올라가 보자. 낮은 유리 테이블 위에 다양한 프로토타입 작업이 놓여있다. 아래에서 보았던 글루건으로 만든 기둥들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조형물이 먼저 눈에 띈다. 1층에서 보았던 것처럼 표면에서 떼어낸 겉면이 안쪽을 향하게 말아 원기둥으로 만든 형상이 보인다. 그 사이로 글루건을 불규칙적으로 쏘아 뭉친 작은 원형 케이크처럼 보이는 조형물도 보인다. 2층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드로잉 작업이다. 글루건 작업 사이사이뿐만 아니라 유리 선반 아래에 드로잉 작업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건축물을 밖에서 찍어내는 거푸집의 형태나 유닛을 통해 공간을 해석하는 작가가 이전에 사용했던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끄적거린 낙서와 비슷하게 생긴 드로잉의 형상은 오히려 기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과정이 있었을 수 있으나 결과물은 그 경계를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거푸집으로서 반전시킨 작업들과는 달리, 드로잉의 성격이 드러나는 이 작업들은 작업의 형태에 작가가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층의 유리 테이블 위 작업에서 점차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가 희미해지고, 작가의 개입이 나타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Black mass, 2023, eva, 120Ø x 170cm, 사진: 양이언(@photolabor_)


4 ‘그것이 아닌 것그것이 될 수 있는 곳, Negative Mass

   공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단위라고 할 때, ‘공간’의 가능성을 물리적인 한계 너머까지 확장하는 박영진은 자신의 세계 또한 확장하게 될까. 작가는 작업의 과정에서 ‘공간’이 가질 수 있는 기억, 시간성, 그 바깥의 무한함에 가닿는다. 물질로서 기억된 공간과 그 공간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에서 시작한 질문은 어느새 ‘안’과 ‘밖’을 엉키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다시 이분법이 허물어지는 지점에 닿아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지점으로 튀어 오르게 한다. 이처럼 뚜렷한 경계를 가진 공간이기도 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덩어리이기도 한 ‘확장된 의미의 공간’을 작가는 ‘Negative Mass’라고 명명한다. 동시에 작가는 출산을 경험하면서 물리적인 생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안으로부터 도출되었다가 밖에서 다시 유입되는 상태를 경험한다. 이제 작가에게 ‘Negative Mass’로서 ‘공간’은 ‘건축물’일 필요도, ‘물질적 형태’일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작가가 마주하는 다음 발걸음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서 파생된 거푸집 혹은 뒤집어 벗어 놓은 양말처럼 반전된 무엇과, ‘나’라는 사람의 ‘안’과 ‘밖’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무엇에 닿아 있을 테다. 세계를 이해하는 단위로서 공간인 ‘나’에게 작가가 스스로 던질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Yellow mass, 2023, cement, resin, 42piece / Black sand, 2023, sand, 600x690cm, 사진: 양이언(@photolabor_)

배너 사진: 양이언(@photolabo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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