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주,이혜림 Nothing Lasts,Everything Lingers
어떤 순간들은 망각되지 않고 서로 이어져 시간으로부터 공간을 형성한다. 이혜림은 수직적으로, 손연주는 수평적으로 그들의 시간에 부피를 더한다. 두 사람은 2인전 《Nothing Lasts, Everything Lingers》(유영공간, 2025. 12. 31 – 2026. 1. 11)에서 각자가 그동안 엮어온 시간의 공간을 내보였다. 전시 제목은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모든 것이 곁에 머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체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연대기 위에서는 사람도, 건물도, 장소도 모두 사라지지만, 역설적으로 그 대상들이 더 이상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떤 시간을 엮어 물질적으로 가시화했다. 영원을 떠올리는 두 사람에게 그럼에도 물질적으로 형상화해야 했던 시간은 어떤 것이며, 그것들은 영원이라는 관념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전시 공간의 좌측 방에는 천장에서부터 종이를 수직으로 겹쳐 내린 이혜림의 설치 작업 〈Sequence#white〉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뒤쪽의 공간에는 손연주의 ‘Journey’ 시리즈와 이혜림의 포토콜라주 작업과 더불어, 두 사람의 평면 작업이 벽을 채우고 있다. 우측에 위치한 방에는 손연주의 평면 작업〈Journey 28〉과 이혜림의 〈bone1〉이 서로를 마주 보듯 놓여있다.
1.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시간
이혜림은 시간을 수직적으로 구조화한다. 시간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변화하는 장소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는 그동안 재개발 지역 혹은 공사장, 공터처럼 변화 중이거나 변화되어 버린 장소를 주로 사진 촬영의 대상으로 삼아 작업을 진행했다. ‘Air Scenery’ 시리즈는 거리에서 본 불꽃과 개나리, 벚꽃, 낙엽처럼 계절과 같은 특정 순간에 나타났다가 자연의 일부로 사라지는 대상들을 담고 있다. 그가 포착한 장면의 장소와 대상은 변화를 지나고 있거나 지나왔다는 맥락 속에 있기에, 캔버스의 테두리 밖으로 변화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의 연대기를 드리운다. ‘Air Scenery’ 시리즈는 사진 위로 한지 층이 더해져 장면을 옅게 보여주는데, 그 장면이 나타나던 시간으로부터의 거리감을 인지하게 한다. 그의 평면 작업은 변화의 맥락 위에 놓인 장소와 대상을 담았을 뿐 아니라, 그 장면 위로 포개지는 종이를 통해 시간의 구조를 드러낸다.
전시 공간 바닥 곳곳에 놓인 작업 〈yunseul(윤슬) drawing #7/silver2〉, 〈bone1〉, 〈Branch2〉는 얼핏 보면 흰색 엉킨 실타래를 고정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업들은 생물의 척추나 갈비뼈가 그렇듯이 직선적이기만 하지도 곡선적이기만 하지도 않은 선으로 이어져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업들의 골조는 와이어와 나뭇가지로 고정되어 있는데, 작업은 한때 웅크린 동물의 뼈대를 감싸고 있었을 살아있는 동물의 몸체나, 나뭇가지가 의지했을 나무의 기둥을 떠오르게 한다. 이것들은 동물의 뼈대 혹은 나무의 잔해물이든 엉킨 채로 멈춰버린 실타래든, 그 생명력은 꺼지고 ‘끝’, ‘죽음’이라는 정적인 상태에 들어선 대상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종이 기둥 작업 〈Sequence#white〉는 작가가 시간의 형태를 고민하며 만든 작업이다. 한주먹 정도의 종잇조각들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실을 관통하여 실의 끝에서부터 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작가는 아래를 향해 흘러내리며, 그것들이 쌓여 기둥을 이루는 모습으로 시간을 형상화했다. 그의 평면 작업이 위에서부터 포개어진 시간의 층을 위에서 보게 한다면, 종이 기둥 작업은 시간의 층을 옆에서 보도록 한다.
이혜림은 평면과 설치 작업에서 위에서 혹은 옆에서 본 시간의 포개짐을 통해 흘러가 버린 순간과 다가올 순간이 이루는 시간의 구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뼈대 형상의 작업을 통해 어느 순간에나 공통된 본질로 존재하는 ‘끝’을 암시한다.
2. 수평으로 겹치는 시간
손연주는 시간을 수평적으로 겹쳐 놓는다. 그는 시간의 구조보다는 시간의 공존을 생각하면서, 모든 순간이 평평하게 맞닿아 공존하는 영원의 상태를 생각한다. 그에게는 ‘어떤 존재로 함께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이혜림이 장면을 기록하고 시간의 층위를 구조로 제시하는 주체였다면, 손연주는 스스로를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지평에 남겨지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붓질과 몸짓을 통해 캔버스에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Journey’ 시리즈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담고 있다. ‘Journey’ 시리즈에는 붓질의 자국과 물감을 찍어낸 뒤 남은 흔적, 물감을 부어 생긴 얼룩, 낙서처럼 그어진 선들이 뒤섞여 있다. 작가의 시점에서 작품은 물감과 캔버스가 맞닿았던 여러 순간의 기억을 담고 있다. 또 그는 회화 작업에서 리넨 위에 먹과 안료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때문에 유화 작업과는 달리, 리넨에 행해진 붓질은 쌓여 올라가지 않고, 평면의 리넨에 그대로 흡수된다. 리넨은 여러 시점의 붓질, 행위를 평면에 흡수하여 하나의 층위에서 공존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흰색 안료와 검은 먹만 사용해서 작업을 하는 그에게 먹과 안료는 흑백의 그러데이션을 통해 밤과 낮,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시점 담을 수 있는 재료가 된다. 그에게 평면 회화는 접촉의 흔적을 가지고, 그 흔적을 통해 시간의 공존을 만드는 공간이다.
작가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업과 접촉하고, 의식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작업과 물아일체 되는 경험을 한다. 때문에 그에게는 작품의 결과물만큼이나 그 작품을 만들기까지 함께한 행위의 순간이 중요하다. 그에게 작업의 과정은 ‘어떤 존재로 함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행위로서 답하는 과정이자, 캔버스 위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여러 시점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두 사람의 전시에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득한 것은 사실 ‘기록’이 아닌 ‘기억’이다. 삶은 매 순간 과거를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 앞에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는 질문을 수시로 마주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과거를 잘 기억하기 위해서 여러 일을 수행한다. 두 사람의 경우, 이제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순간들을 물리적으로 소환함으로써, 즉 ‘기록’함으로써 ‘기억’하기를 수행해 왔던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모든 것이 곁에 머문다.’라고 말하는 두 사람이 물질성이 사라져 버린 것들을 바라보면서도, 시간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조형한 이유일 것이다.
이혜림은 장면들이 포개어져 이루는 시간의 지층을 쌓음으로써 기억하기를 수행한다. 한편, 손연주는 연대기 위에서 흘러가는 것도 수직적으로 쌓여가는 것도 아닌, 평평한 단면에 여러 순간을 스며들게 하면서 지난 기억과 만나고, 기억들이 서로를 마주치도록 한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사랑하는 한 방식일 것이다. 한 공간에 마주 놓인 손연주의 〈Journey 28〉과 이혜림의 〈bone1〉은 분명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과거를 사랑하는 서로의 방식을 바라보며, 한 공간에서 공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