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해 개인전: 서랍을 열면 (아트그라운드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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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는데, 서로를 안다고도 할 수 있을까." 전시장에 놓인 책을 읽다가 떠오른 누군가를 붙잡고 생각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당신에게서 본 것은 내가 보고 싶었던 혹은 믿고 싶었던 당신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혹은 적당하게 갖추어진 겉모습뿐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어떤 때에 오는 것일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이 흔들거리며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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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열 개 남짓의 칸을 가진 서랍과 서랍 정면을 화면 가득 담은 회화, 글을 쓸 수 있는 테이블과 책자가 있다.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마련된 서랍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 고요히 머물고 있다. 김아해는 울산의 예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를 오브제나 드로잉으로 만들어 서랍에 넣었다. 울산의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그림도 있고, 개인적인 장난감이나 책도 보인다. 이야기의 한 장면을 빼닮은 서랍 속 오브제는 각자 사연을 가진 듯하다. 그러면 서랍 속에 머무는 것은 사물이기 이전에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니, 이야기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모습을 바꾸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수선한 움직임 속에서 이들이 흘린 부스러기를 따라가 본다.
이야기가 제일 처음 머물렀던 곳은 책이다. 작가는 울산의 예술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관찰일지이기 위해 노력하는 上> 책에 적었다.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책은 그들이 창작자로서 해왔던 고민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온 태도와 평범한 일과까지 자연스럽게 담는다. 김아해는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걱정 어린 마음으로 예술가에게 귀를 기울인다. 고민 상담을 들어주는 사람 같기도 하고, 반대로 조언을 얻는 사람 같기도 하다. 이 인터뷰집의 독특한 점은 인터뷰를 대화 형식 그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김아해의 시점으로 해석되고 기록된다. 김아해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을 조금씩 알아가려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변덕스러운 이야기는 여러 번 외투를 갈아입는다. 전시장의 동선 마지막쯤에 이르면 테이블과 함께 안내문이 하나 있다. 작가는 안내문에서 전시를 보며 한 생각을 종이에 써주기를 부탁한다. 책과 서랍, 회화에 머물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거쳐 또 새로운 형태로 거듭난다. 서로 바라보고 집중한 곳은 다르지만, 이야기 혹은 작품이라는 한 점에서 시작했기에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는 각자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안내문에 따라 관람자가 쓴 글은 <관찰일지이기 위해 노력하는 下> 책으로 묶인다. 김아해는 이야기라는 하나의 대상이 수많은 관점을 통해 변주되도록 만들면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수집한다. 수집된 시각은 하나로 묶여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이 차이는 각각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아해는 과거 작업에서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내면에 남은 기억 혹은 더 멀리 있는 무의식에서 사물이나 장면, 분위기 조각을 모아 하나의 캔버스에 채워 넣었다. 회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담는다면, 하나의 화면을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재구성한다는 것은 자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으로부터 더 나아가 타인 또한 탐구한다. 작품은 인터뷰를 하는 작가의 관점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작품을 보는 타인의 관점까지 뻗어 나간다. 자신의 기억을 관조하던 시선은 서서히 작품에 개입하는 타인에게로 옮겨간다. 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본 뒤에, 당신의 눈을 빌려 또 다른 세계를 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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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작가의 눈을 빌려 글을 쓰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이해한 세계가 다시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때로는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다. 이제는 당신만의 것이었던 이야기를 나에게도 나누어 준다면 좋겠다. 한 번은 나의 눈으로, 그다음에는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돌이켜보면 내가 당신을 충분히 알 수 없었던 것은, 나에게 당신을 통해 본 세계가 들어와 있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당신의 이야기로부터 눈을 빌려 세계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 서로를 지나는 수많은 눈과 세계가 있다. 작은 세계들을 남겨두었으니 누군가 이 세계를 궁금해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본 적 없는 사람을, 세계를 여기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