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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Feb 20. 2024

단편. 신발 두 개

신발장에 있는 신발을 세어보았다. 모두 15켤레였다. 구두 2개, 등산화 1개, 트레킹화 1개, 캐주얼 워커 2개, 러닝화 4개, 캐주얼 운동화 4개, 골프화 1개. 내가 신발이 이렇게나 많았나. 


박대표가 선물한 골프화는 딱 두 번 신었다. 골프는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운동화 두 개는 아이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반값 세일이라고 써붙인 스포츠용품 대리점에서 샀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지만 의외로 편하고 잘 맞았다. 지금은 많이 낡았지만 아직도 주로 그 두 신발을 신는다.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화 하나로만 지냈다. 신발이 하나여서 불편했던 기억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에 신발을 빨아 말렸다. 다행히 급히 나가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발이 커져서 신발이 작아지거나 오래 신어서 밑창이 닳았을 때만 새 신발을 샀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캐주얼화 하나를 더 샀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가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운동화를 주로 신었다. 더 이상 발이 커지지 않아 그 신발 2개만으로 한참을 신었는데 어떤 신발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신발에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꽤 많이 지나긴 했지만, 지금은 15개다. 너무 많다. 10개 정도는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신지 않았다. 신발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나. 아니면 오히려 관심이 없어서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인 것일까.


신발장 앞에서 몸을 돌려 작은 원룸 안을 쓱 둘러보았다. 지난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었다.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몰락해 가는 폐가처럼 보였다. 신발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낡은 운동화 두 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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