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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May 19. 2024

밖에서 책 읽기

산책로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종이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요즘에는 어디서건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도심의 자동차들 사이에 말이 달리고 있는 것처럼 눈에 확 들어온다. 90년대라면 죽간을 펼쳐 읽는 모습 정도일 것 같다. 


오전이라 햇빛도 강하지 않고 기온도 선선해서 책 읽기에 좋은 날씨다. 하지만 가끔 살짝 세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연신 넘기는 모습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소리도 시끄럽다. 


나는 요즘에는 밖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못한다).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오픈된 공간에서는 이제 책 읽기가 불가능하다. 옆 집과 방음도 안 되고 창 밖 골목길도 시끄럽지만, 혼자 집에서 3M 귀마개를 깊숙이 밀어 넣고 겨우 책을 읽는다.


나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 학교 벤치에서 가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벤치왕 죽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벤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화창한 날의 대학 도서관은 꿉꿉한 동굴 같아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가 힘들었다. 상쾌한 공기와 햇살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기분도 좋고 잘 읽힌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고상한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현학적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는 아니고, 있었을 것이다. 도 아니라, … 있었다. 


벤치에서 책을 읽을 때는 더 세련되거나 특이한 제목의 책을 골랐던 걸 보면 역시. 예를 들면 ‘악마를 위하여’ 같은. (악마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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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층간 소음 신경 쓸 필요 없는 좋은 집에, 조용하고 쾌적한 서재도 있을 텐데 굳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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