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습관적으로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현관문을 닫는 아랫집 거주자와 마주칠 수 있었다. 불쑥불쑥 솟구치려는 화를 힘들여 억누르고 최대한 작은 말소리로 조금만 살살 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다.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예상대로. 내 ‘부탁’에 응대하는 아랫집 거주자의 표정과 말투는 친절했다. 앞으로는 신경 쓰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출근시간 남의 주차장에 주차선을 넘어 안쪽 차를 가로막고 주차한 옆 건물 인간도. 새벽 3시에 친구들과 큰 목소리로 떠들던 옆집 인간도. 주차된 남의 차를 긁고 나서 수리비를 드릴 테니 알아서 고치라고 말했던 인간도. 한결같이 표정과 말투는 친절했다. 어떻게 저렇게 ‘친절한’ 표정과 말투를 지닌 이들이 저런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건지.
모두 2~30대 정도의 남녀였다. 이런 일에 대처하는 매뉴얼이라도 공유되고 있는 건지. 모두 표정과 말투가 똑같다. 착한 표정과 예의 바른 말투로 기괴한 행동을 하는 안드로이드 캐릭터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말과 행동의 괴리가 너무나 큰 그 친절한 겉모습 때문에 “그냥 가던 길 가쇼”라고 말하는 노인들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불쾌한 골짜기(언캐니 밸리): 인간이 인간과 거의 흡사한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는 감정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