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책 후기 03

by 윤타

<아나키즘 이론에서 실천까지>, 다니엘 게렝. 책 감상 후기.


노엄 촘스키가 이 책의 서문을 썼다. 이 글은 국내에 출판된 ‘촘스키 知의 향연’에도 ‘아나키즘 소론’이라는 제목으로 수정되어 실려있다. 두 글을 비교해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명문이다.


이 책은 300쪽이 안 되는 비교적 적은 분량에 쉬운 글로 쓰여 있어 읽기 편하다. 아나키즘에 관해 알아야 할 기본 개념과 역사가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아나키즘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만약 ‘크로포트킨 자서전’, ‘미하일 바쿠닌 평전’, 그리고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읽고 이 책을 본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의 말들이(사상이) 반복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위의 책들을 읽고 보면, 이들의 말투와 성격, 감성까지 느껴져서 책에 몰입하기가 더욱 쉽고 이해하기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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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권위가 없는, 그리고 권위적인 억압(권력)이 없는 조직(단체)은 가능하다. 하지만 꽤 많은 이들이 조직은 반드시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아래’로 직급이 나눠져 있어야만 그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이 널리 퍼져있다.


아나키스트 말라테스타는 “만약 우리가 권위 없이는 조직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모두 권위주의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나키즘을 무질서와 동의어로 보는 편견이 있다. 리버테리언 아나키즘이 모든 조직을 부정한다는 주장은 고의로 아나키즘을 왜곡한 해석이다.


아나키스트 최대의 ‘적’은 봉건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닌 권위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권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대립했다.


‘권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수 엘리트가 다수의 인민을 ‘지도(실은 지배)’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아나키스트들도 물론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권위와 지배가 없는 수평적 연합이다.


아나키스트들에게는 권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끈 볼셰비키 혁명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반동’이었다.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부르주아 세력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나키스트들의 목적인데, 부르주아에서 볼셰비키로 바뀌었을 뿐 억압구조는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에게 볼셰비키(구소련 공산당)는 최대의 적이다. 볼셰비키의 권위적 지배구조를 따라한 지구 상의 모든 공산당 역시 용납할 수 없는 반동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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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운동권이었다가 소위 보수 세력으로 ‘전향’한 이들이 있다. 소련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 ‘평가’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권위적’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권위’를 숭상하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권위주의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조직적으로 혐오해야만 하는 유일한 개념은 ‘권위(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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