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창조의 주된 동기중 하나는 이 세상에 대해서, 이 세상에 속한 우리 자신의 존재가 본질적이라고 느끼려는 욕망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 59쪽.
이 문장을 읽고 좀(꽤) 난데없게도, 수영장 샤워실과 탈의실에서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중년(그리고 노년) 남성들이 생각났다. 요즘엔 가끔 청년도 보인다. 여성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공공장소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성들도 많을까, 잘 상상되지는 않는다.
우디 앨런의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샤워할 때마다 오페라를 매우 잘 부르는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이를 듣게 된 오페라 감독 우디 앨런이(이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 이 남성을 무대에 세운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서는 잘 부르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대에 샤워장을 만들어 노래를 하게 하는 코믹한 장면이 나온다.
샤워장과 탈의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남성의 공통점은, 혼자 있을 때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샤워장에서 나 혼자 샤워를 하고 있는데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샤워를 끝내고 탈의실로 들어가자 그 남성은 콧노래를 멈췄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그 남성이 들어왔다. 다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내가 먼저 옷을 입고 탈의실을 나오자 그 남성은 콧노래를 멈춘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공간에 있는 것을 못 견디는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수컷 포유류의 영역표시 본능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맨 앞 사르트르의 글처럼,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 기질이 있으며,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창조적인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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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어쨌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해야 한다. 정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우디 앨런 영화처럼 샤워장이 있는 무대에서 마음껏 노래하며 수컷 포유류의 본능이 아닌 인간 예술가의 본능을 만족하는 것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