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대량학살을 비판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베트남에서 자행된 학살에 대한 미국인 관객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들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단지 ‘예술의 걸작’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이제 그 그림은 정치적 무기가 아닌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다. 그리고 미국 박물관의 가장 소중한 장식품의 하나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게르니카’는 마침내 프랑코 정권하의 스페인의 요청으로 ‘마드리드 현대미술관’의 상석에 자리하게 되었다.
_<예술 -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가> 미셀 라공. 78쪽.
_
*‘프랑코 정권’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와 싸운 파시즘 정권이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의지로 모여 ‘국제여단’을 형성하여 공화파와 함께 프랑코 정권과 싸웠다. 대표적인 ‘개인’으로 조지 오웰, 헤밍웨이 등이 있다. 하지만 결국 프랑코 정권이 승리했다.
영화 ‘판의 미로’에서 주인공 소녀의 새아버지가 프랑코 정권의 군인이다. ‘악인’으로 등장한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파시스트였다면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았을 것 같다.
_
프루동은 예술의 마취제 역할을 고발했다. 프루동에게는 권력을 이용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은 관제官製 홍보물에 불과했다.
‘게르니카’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작업이 처음에 만든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곤 한다.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예술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만든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목적(이유) 중 하나를 ‘정치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이다.
어떤 책(예술)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