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서 슬그머니 사라져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조지루시(Zojirushi)는 1918년 일본 오사카에서 '이치카와 형제상회'로 설립되어 보온병 제조를 시작한 기업이다. 그러니까 100년이 넘은 기업이다.
1923년 보온병 완제품 생산과 함께 코끼리(象)를 상표로 채택하며 기반을 다졌다.
전후인 1948년 교와 제조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꾼 후, 1953년 펠리칸 팟(Pelican Pot) 같은 보온 용기를 출시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1961년 현재 사명인 조지루시 마호빙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1970년 세계 최초 전기 보온밥솥을 선보여 가전 분야로 확장하며 급성장했다.
2018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조지루시는 텀블러, 도시락, 가습기, 핸드포트 등 다양한 생활가전을 생산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 위치를 유지한다. 2025년 기준 매출 약 5.33조 엔을 기록하며 배당수익률 2.87% 수준으로 재무 건전성을 보이고, 안전 기능 강화된 신제품(예: 전도 누수 방지 전기주전자)을 지속 출시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왠 조지루시냐고? 독자들이 들어보지 못하신 조지루시는 과거 우리 엄마들의 자랑거리 1호였었기 때문이다.
83년 초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는 "한국 손님 때문에 매출이 늘어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사실 이 때는 한국의 경기가 좋지 않을 때라 민감한 문제 이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언론에서는 여성들이 정신없는 쇼핑으로 나라망신을 시킨다고 비난을 쏟아냈고 그러다 보니 세관에서는 해외여행자들을 고발해서 여행사와 여행객이 구속되는 상황까지도 벌어졌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 당시 코끼리표 밥솥으로 밥을 하면 그렇게 맛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너도 나도 일본에 가게 되면 기회를 봐서 한 개쯤 갖고 오고 싶었던 게 당연한 일 아니었겠나.. 말이다.
현재 쿠쿠 밥솥이 북쪽에서도 그렇게 인기가 있다던데, 하물며 사람과 물건이 왕래가 가능하게 된 마당에 좋은 물건을 사 오겠다고 하는 그걸 막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긴 했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도 밥솥을 만드는 연구가 시작되고 있었고, 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적인 기술인 압력밥솥의 기능을 적용하는 곳이 생기다 보니 차츰 조지루시의 열풍도 가라앉기는 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압력밥솥이 나온 것은 1992년이니 10년간은 엄마들의 갖고 싶은 가전제품 1위는 아마도 코끼리표 밥솥이 아니었을까?
왜 이 이야기를 했냐 하면, 조지루시 밥솥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지금 조지루시의 위상이 우리의 머릿속에 얼마나 남아있는 가를 한번 돌아보려 한 것이다.
이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더 이상 조지루시는 우리나라에서 검색이 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지루시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쿠쿠가 국내 시장을 70프로 정도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지금 조지루시의 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일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쿠쿠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사람들도 심지어는 북한 사람들도 쿠쿠가 어떤 브랜드이고 제품인지는 알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한국 홈페이지에 조지루시 제품을 보면 전기밥솥이 메뉴에 별도로 없다. 아래쪽에 있는 기타 전기 메뉴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간신히 1개 제품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슬그머니 없어진 조지루시가 그럼 사업에 실패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25년 12월 일본 증시뉴스에 따르면 2025년 이익은 59억 엔, 매출은 911억 엔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래에 있는 실적을 보면 견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나 견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주요한 원인으로 조지루시는 고급 전기밥솥 ‘엔부다 키(炎舞炊き)’와 가습기 판매가 호조를 보인 점을 상향 요인으로 꼽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안 파는 것 같다.
엔부다 키(炎舞炊き)의 판매가격이 평균적으로는 8만 엔 ~ 15만 엔까지 있으므로 약 70만 원선에서 140만 원선이라는 건데 이 정도의 가격이면 국내 쿠쿠밥솥의 최고급형 수준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쿠쿠가 더 좋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조지루시는 죽지 않았다는 게 맞다. 그저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혀 가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하고, 우리의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브랜드와 기업은 그런 것 같다. 소비자에게 새롭게 기억되는 만큼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된다.
Evoked Set이라는 말이 있다(너무 오래된 용어일까?) 아니면 Consideration Set 여하간 간단하게 말해서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집단을 이야기한다. 이제 한국사람들이 밥솥을 구매하고자 할 때 머릿속에 더 이상 조지루시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조지루시 한국 홈페이지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현대차가 고급 세단의 위치 고급 SUV의 구매시점에 고려대상이 아니었었지만 현재는 렉서스와 유사한 수준으로 비교가 되면서 그 고려 대안집단에 들어온 것처럼, 어떤 브랜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Consideration Set안에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브랜드는 나가기도 한다.
문득, 조지루시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내가 직접 기획하고 만들고 다듬고 키워냈던 브랜드 들 중에서 얼마나 소비자들의 Consideration Set안에 남아있을까?
내가 처음에 만들었던 브랜드 퐁퐁, 자연퐁, 세이프, 드봉, 알뜨랑, Say, 더블리치, 플레오맥스, 에브리타임, 스키니랩, 하루틴... (다 열거는 못하니 섭섭해하지 말기를..) 이 브랜드들이 오래오래 소비자들의 Consideration Set 한구석의 자리를 지키며 잘 남아있기를 바란다.
조지루시처럼, 잊히더라도 어디에서는 잘 살고 있기를...
가끔, 잊힌 브랜드를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만나서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쓸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번에 통영에 갔을 때 만난 온더바디 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