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정글. 어디까지 가보셨나요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리뷰

by Yunus 유누스

암흑의 핵심의 줄거리는 확실한 두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첫째, 현대 문명 전파라는 명분으로 원시와 야만을 계도하려는 움직임은 자원 약탈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둘째, 제약이 없어짐에 따라 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자는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어 약자를 파괴하고 마는데, 그 파괴는 결국 스스로를 향한다는 것. 절대 권력자 커츠의 마지막 대사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The horror, the horror! 공포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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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두번째 읽는데, 처음 읽었을 때에는 위 두가지 메시지를 겨우 발라낼 수 있었다. (나의 독서능력이란 모임의 기간과 비례할 순 없을까 하하하.) 이번에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읽어들였는데, 암흑의 핵심은 최근 읽은 도서 중 나의 가장 높은 흡수력을 보였던 작품이다.


배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는 해안을 지켜보면 어떤 정체불명의 것을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저만큼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해안은 미소를 짓는가 하면 찌푸리기도 했고 매혹적이고 장려한가 하면 야비하고 무미하거나 야만적이기도 했는데, 늘 ‘이리 와서 알아내 봐.’라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으로 침묵하고 있었지.

자아는 나에게 항상 도전해왔다. 너는 너 자신을 알기나 하는거야? 여행을 떠나건, 사색을 하건, 이리 와서 알아내 봐 니 본연의 모습 말이지.


앞서 말한 비교적 표면에서 느껴지는 줄거리는 강대국(현대화)과 원주민(원시성) 간의 갈등을 그린다면 이번에 내가 접수한 메시지는 철저히 나 스스로의 갈등이다. 주인공 말로가 영국에서 밀림을 지나 원주민 마을에 있는 커츠에게 도달하는 그 과정이 개인의 본능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사회화된 내가와 원시적인 나에게 가까워지며 경험하는 갈등. 사회화라는 것은 현대 문명이라는 불안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제국의 전략에 걸려들어 개인의 원초적인 본능이 지배당하는 과정이니까.


그 선사 시대의 인간들이 우리를 저주하는 건지 환영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에게 기도하는 건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우리는 주위로부터 차단된 채 그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마치 정신 병원에서 수용자들이 벌이는 신들린 듯한 소요를 지켜보는 성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영문을 몰라 내심 겁을 먹은 채 유령처럼 미끄러지듯이 그곳을 지나갔어.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세계가 우리와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어 우리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태초의 밤, 아무런 흔적이나 기억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시대의 그 캄캄한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본능을 억제하고 자아와 멀어진다. 그러다 기억할 수 없게된다. 빛을 잃고 어두운 세계를 걷게 된다.


우리의 '자아'와 '본능'은 사회화라는 갑옷과 무기를 동반한 식민 정책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사회란 규모로 보나, 힘으로 보나 한 개인이 제압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과 함께 사회에 속해 건강과 재산, 생명의 안전과 보호를 도모할 것인가,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와 골절과 굶주림, 추위를 경험할 것인가. 사회는 개인을 약화시킨다. 경찰서와 병원, 약국이 멀어지면 우리는 불안해지고 내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불안함은 나를 약화시킨다.


울타리 안에서도 강함을 발휘하는 자들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나는 울타리 안에서는 자존하기 어려운 성질의 인간임을 잘 안다. 따라서 나는 정돈된 아스팔트와 아파트를 떠나 들판에서의 삶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진짜 강자가 될 수 있는,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의지로 선택한 불안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우리는 열이 날까봐 불안하다. 이 빌어먹을 추상적인 공포의 핵심은 바로 불안.

그저 빈번히 ‘열이 약간’ 있거나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날 듯한 약간의 예감을 느끼며 살았던 거야..
자네들이야 단단한 보도를 딛고 서서, 늘 자네들에게 살갑게 굴거나 덤벼들기도 하는 이웃들에게 둘러싸인 채, 푸주한과 경찰관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면서, 추문과 교수대와 정신병자 수용소 따위를 거의 신앙처럼 두려워하며 살고 있으니 자네들이 어떻게 상상인들 할 수 있겠나? 경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철저한 외로움이라든가 다정한 이웃이 여론이랍시고 속삭여 주는 경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하는 철저한 침묵으로 인해 한 인간의 자유로운 발길이 어떤 별난 태초의 땅으로 이끌려 갈 수 있는지 자네들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거야. 이런 경찰관이니 이웃이니 하는 사소한 것들이 있느냐 없느냐가 실은 큰 차이를 이루는 법일세.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자네들은 자신의 타고난 힘과 스스로 충실하게 살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해야 하니까. 물론 자네들이 너무 바보스러운 나머지 아예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일조차 없을 수도 있고, 또는 너무 우둔한 나머지 어둠의 세력에게 공격받으면서도 그걸 모르고 지낼 수도 있어.

가장 무서운 건, 모르고 지낼 수도 있다는 마지막 말.


본능과 자아는 선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스스로의 본성을 글로 써본다면, 소름끼칠 정도의 위험성, 음란과 공포, 탐욕과 관음, 폭력과 오만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것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자아로 향하게 하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항상 선하지만은 않음을, 오히려 악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새는 알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우리는 악(惡) 또한 숭배하고 신성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세계의 일부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일부 구문. 아브락사스는 빛과 어두움을 모두 지닌 신이다. 우리 안의 악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암흑의 핵심에 나타난 유사한 구문.

아마도 그 모든 지혜, 모든 진실 그리고 모든 성실성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을 넘어가는 바로 그 알 수 없는 순간에 압축되어 있을 거네.

문턱을 넘는 그 순간이 바로 알을 깨는 그 순간이겠지.

그것은 그의 타고난 표현력으로 당혹감과 깨우침을 주며 가장 고양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경멸할 만한 것이어서 고동치는 빛의 흐름 같거나 어떤 뚫을 수 없는 암흑의 핵심에서 기만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었어.
본능이란 깨우침을 주기도 하지만, 경멸할 만한 짓거리를 유발하기도 한다.
밀림 속에서 혼자 사는 사이 그의 영혼은 그 자체의 내면을 곰곰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결과 참으로 딱하게도 그만 미쳐 버렸던 거야.

자아를 실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눈에는 정상 궤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미쳐버린 것이다. 피카소, 달리, 모짜르트와 베토벤, 스티브잡스와 안중근 의사 등.

아래는 가장 큰 공감을 준 문장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悔恨)이나 거둬들이게 돼.

대부분의 인간은 부질없는 목적을 향해 간다. 그리고 깨달음은 늦게 온다.


내 자아는 누구와 결탁했는가, 제휴했는가

야비하고 탐욕스러운 유령 같은 백인들에게 침략받은 이 암흑의 땅에서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제휴와 악몽 같은 선택을 강요받고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이하다네.

정말 강요에 의한 건가. 그럼에도 그 선택은 나의 것이 아니었나


이 책은 어느 정도는 밀림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나에게 응원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서울이라는 울타리를 떠난 것은 불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실체없는 불안에는 실체없는 믿음이 맞서 싸우게 하면서, 실존하는 불안이 우리에게 근접해오면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전과를 꿈꾸다가 아버지에게 설득 당해 전공을 유지한 경험이 나는 아직도 몹시 불쾌하다. 아버지가 좋은 기회를 박탈해서가 아니라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었음을 당시에도 알았으며, 훗날 인생이 약간 꼬였다는 생각이 들 때 마치 아버지때문에 전과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결과라고 스스로에게 멍청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회가 조장하지만, 그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것은 중심이 없는 나 자신이다. 휘청이며 내 길을 갈 것인가, 꼿꼿하게 무명의 길을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