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서 말을 못 하겠다, 옆에 있으면 주눅이 들어 눈치 보인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종자 중 몇몇의 특징은 진짜 ‘ 약자 ’ 가 아니라는 거다. 얼핏 말만 들으면 송구함을 잘 느끼고 눈치 쉽게 보는 약자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종자들은 저런 말을 함으로써 상대에 비해 자신은 열세하여 언제든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처럼 보이게끔 만들고, 동시에 상대가 제멋대로 힘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보이게 만들며, 결국 상대가 한 마디라도 꺼내면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 도달하게끔 만든다. 이자들은 아주 악질이다.
사실 이들은 송구함을 느끼거나 눈치 보는 게 편한 종자들이다. 그렇게 느껴야만, 그렇게 느낀다고 믿어야만, 그렇게 느낀다고 말해야만 얼핏 강자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갸륵한 관심과 사랑을, 혹은 보호를 누릴 수 있다고 믿거나, 강자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이나 행동만 거칠지 어리숙한 몇몇 강자들은 본인의 말과 행동으로 하여금 상대가 놀랐을까 되레 미안함을 느끼는데, 이 지점을 기가 막히게 이용한다.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게끔 서사를 기획하고,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게끔 말과 행동을 가꾸고, 말끝을 흐려 가슴속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조차 못하게끔 상상에 혼선을 준다. 이게 살아남는 방식인 줄 안다. 이렇게 우울증에 걸린다. 내가 우울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으면, 애쓰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믿는 기행을 보인다. 남들은 당신을 보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저 갸륵한 종자가 얼마나 사는 게 힘들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당신은 그 관심이 얼마나 달콤할까.
여기까지 밀어붙이면 이 종자들은 이제 부모 탓, 가족 탓을 한다. 열에 열이 그렇다. 내가 보살인 탓에 부모 탓, 가족 탓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말인지 알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도를 넘는 종자는 팔자 탓, 사주 탓, 세상 탓을 시작하는데 스스로 약자라고 믿어야만 누릴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이 뭔지 진작 알고 있고, 알고도 시작한 일을 왜 팔자 탓, 사주 탓하고 있느냐 말이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은가. 성공이나 성취를 향한 노력은 피하고 싶고, 강자가 아닌 것만 같은 상상에서 온 억울함은 못 이기겠고, 특별해 보이고 싶으나 재료가 없어 사실에 거짓말을 여럿 붙여 팔고 다니고, 이게 팔자 탓을 해서 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설령 팔자가 뒤죽박죽 천방지축이래도 저런 행동쯤 나쁘다는 건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나는 이제 이자들에게 입 떼지 않는다. 예전에는 도망갈 수 있는 구멍을 모조리 막아 궁지에 몰아놓고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그래서 결백하고 맑은 사람이 되겠다 스스로 다짐할 때까지 괴롭혀줬는데 그럴 힘이 없다. 그저 불쌍하다. 귀중한 생명 저렇게 낭비하는 것도 불쌍하고, 하늘이 주신 귀한 것을 거짓으로 똘똘 뭉쳐 썩히는 것도 불쌍해 죽겠다. 하나라도 부정하면 네,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데 진짜 내가 틀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너희 같은 종자가 실은 너무도 불쌍하고 갸륵한 약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 이 와중에도 글이 거칠다고, 무섭다고 말하고 싶지 ? 이렇게 또 무서운 글 앞에 기죽는 약자가 되고 싶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