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마크웹 감독- 500일의 썸머 (Days Of Summer, 2009)

by 유옥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연애에 있어서 나는 '톰'이었을까, '썸머'였을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00일의 썸머>는 '톰의 관점'에서 바라본 썸머와의 연애담이다. 톰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순수한 청년이고, 썸머는 구속받기 싫어하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톰이 썸머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톰의 관점'에서 진행이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썸머의 마음은 톰이 답답해하는 것만큼 우리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레 짐작만 해볼 뿐.


썸머와의 만남에서 상처를 받는 톰을 보고 있자면, '썸머 이 나쁜년'하고 함께 욕하고 미워해 주면서 톰을 위로해주고 싶다. 그건 아마 우리에게도 딱 '톰'과 같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재밌는 건, 보통 '(존경스러운) 누구누구에게 이 영화를 받친다'라고 경건하게 시작하는 영화들과는 달리 <500일의 썸머>는 영화의 시작을 구수한 욕설로 시작한다. 연애에서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듯이 말이다.


"Bitch" 바로, '나쁜년'!

처음 볼 땐 무심코 지나갔을 법한 영화의 Author's note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 영화는 허구이며 누군가가 연상된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일 뿐이다.
특히 너, Jenny Beckman. Bitch


아아 그래, <500일의 썸머>의 명대사는 바로 이거다! 속 시원한 저 한마디.

하지만. 이토록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욕을 먹는 썸머가, '정말로 나쁜 여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어느 순간, 내가 썸머가 되어있을 때였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내가 그만큼 사랑해주지 못했을 때. 나는 '썸머'였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톰'인가요? '썸머'인가요?


만약 지금 당신이 톰이라면, 당신도 언젠가 썸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썸머라면, 당신도 언젠가 톰이 될 수도 있다.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톰'이기도 하고 '썸머'이기도 한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니 말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썸머’

톰의 입장에서 썸머는 나쁜년일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톰을 울렸고 둘째, 톰을 가슴 아프게 했고 셋째, 톰이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톰의 입장에서 연애담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면 지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 나쁜놈, 나쁜년들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실제로 썸머가 톰을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지만 현실에서도 한 번쯤 해볼 법한 대사. '너 날 사랑하긴 했니?'.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사람을 앞에 두고 답답한 마음에 부질없는 질문을 해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사실 자신도 자기 마음이 어떤지 모를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남의 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있으랴. 그래도 짐작컨대 영화의 몇몇 장면을 보면, 썸머도 톰을 사랑한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톰과 싸우고 먼저 다가와 사과를 건네기도 하고. 톰의 관심사에 귀 기울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톰에게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썸머는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연애가 곧 사랑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모든 연애가 사랑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무리 진심을 다하고 매 순간 진심이었다고 해도. 모든 만남들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진짜 사랑을 만났을 때 알 수 있게 된다. 썸머도 그러했을거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벤치에서 마주친다.


벤치에서 썸머는 톰에게 말한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깨달았어. 너랑 만날 땐 몰랐던 걸...


썸머의 마지막 말은 "톰이 맞았구나." 그리고 "단지 내가 너의 반쪽이 아니었던 거야" 였다. 어찌 보면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뻔뻔하다 싶지만, 되려 톰은 말한다. "당신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썸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을 믿지 않는 소녀로 자라왔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서툴렀고 스스로가 마음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썸머가 알게 모르게 톰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정작 톰과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깨닫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썸머에게 톰은 사랑을 찾는 과정 중 하나였고, 톰에게도 썸머가 사랑을 찾는 과정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톰에게도 가을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500일의 썸머

마지막 500일째 되는 날. 이쯤 돼서 '500일의 썸머'란 제목에 의문이 든다. 영화를 보다 보면 톰과 썸머가 오늘부터 1일이다~하고 날짜를 세기 시작해서 500일에 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00일이라고 측정한 그 시점이 단순히 사귀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녀를 잊기까지 즉,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의 기간을 나타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왜 이토록 감독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를 하는지.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며 운명이라 믿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이건 사랑이야!' 하고 불현듯 떠오르면 좋으련만 스스로가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정작 나중에 그보다 더 죽고 못 살 정도의 사랑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만날 때는 사랑인지 몰랐다가 헤어지고 난 후 그 사람이 사랑이었단 걸 알게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뜬금없지만 이 상황에 딱 맞는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 - <언젠가는>



이제 톰에게 썸머는 지나간 사랑이다. 여름이 가고 그에게 가을이 찾아왔다. 다시 사랑을 믿게 된 것이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고 영원한 기억도 없이 남남이 된다.
무의미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다가 5월 23일 수요일이 됐다.
톰이 배운 게 있다면 누구도 위대한 우주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연! 그것은 우주의 이치다. 그보다 위대한 건 없다.
톰은 기적이 없다는 걸 배웠다. 운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깨달았고 이제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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