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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 Jun 26. 2024

2019년 11월 글쓰기 모임




19.11.17 오프라인 과제

주제어: 외로움

대학시절,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만족스러운 학교생활과 풍족한 인간관계로 이루어진 즐거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졸업 이후 직장에서의 생활은 더 이상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나날이 아니었다. 

전 직장에서 받은 상처와 바빠진 친구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로움과 함께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밀려왔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괴로운 감정들이 나를 잠식했다. 


그랬더니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외로움이 보였다.

기댈 곳이 필요하다며 자꾸만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던 친구의 외로움, 혼자 있는 것이 싫다며 의미 없는 모임에 나가던 전 직장동료의 외로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주변 사람조차 끊어내지 못하던 또다른 친구의 외로움, 내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모님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충만하고 건강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리고 이해가지 않던 사람들의 외로운 모습들이었다. 과거의 나는 때때로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는 친구를 질타했다. 그러나 상대의 외로움을 공감하지 못하며 내뱉었던 말들은 충고가 아닌 비난으로 다가갔음을 깨닫게 되었다.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내며 이제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살피는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중 대부분은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나의 무심함과 오만함을 알게 됐다. 동시에 나의 외로움을 살피는 고마운 친구도 알아보게 되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나의 운명을 원망하다가도, 이를 통해 깨닫게 된 것들을 돌아보며 더 좋은 내가 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19.11.17 오프라인 모임

주제어: 혼자가 편해?

꽤 오랜 시간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학교라는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부모님과 교수님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혼자임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착각. 


그리고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난 지금에야 비로소 진정한 ‘홀로서기’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내 전공도 사랑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였던 터라, 사회생활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첫 사회생활을 통해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모든 사람하고 잘 지낼 수 있는 인간 유형이 아니라는 것, 싫은 티를 감추는 것에 매우 서툴다는 것, 

세상모르고 철없던 내 모습들까지.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실패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김기림의 시 <나비의 바다>가 떠올랐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바다에 내려갔다가 물결에 절어 지친 나비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홀로서기’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 며칠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 들었다. 일은 잘 풀리지 않고, 친구들의 무심함이 섭섭하고, 부모님이 이전만큼 보듬어주지 않아 서운했다. 그래서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혼자임을 느껴봐야 진정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더 이상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혼자서 잘 이겨내고 싶다. 

힘들다고 남에게 말하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이 시기를 혼자서 오롯이 겪어내고 싶다. 

혼자임이 결코 편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혼자서도 꽤 잘해 내는 나’로 거듭나길 바란다. 



19.11.24 온라인 과제

주제: 감사


요 며칠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마도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퇴사 후 공백기 동안 내가 이뤄낸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고, 내가 올린 디자인 작업물이 해외 포트폴리오 사이트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자격으로 괜찮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도 이제 제법 그럴듯한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 작업물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제는 부끄럽지가 않다.

내가 가장 힘들고 뒤쳐져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나는 가장 많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나의 결핍에 집중하고 있었다. 

커리어에 대한 결핍, 좋은 디자인에 대한 결핍, 좋은 사람에 대한 결핍.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졌다.

남들에 비해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고,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나를 다그쳤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최악일 것도, 불행할 것도 없었다.

뒤쳐진 날 보다 따라잡을 날이 더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 실컷 하며 맘껏 삽질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나쁘지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이 시기에 만난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며 만난 사람들은

주저 없이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고 나를 북돋아주었다.

또 글쓰기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나의 서툰 글을 듣고 박수를 쳐주었고, 따뜻한 위로의 말도 건네주었다.

힘들고 절절했던 나에게 그 스치는 한마디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나는 그들의 깊은 통찰력과 유려한 문장력에 감탄했고,

모두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사실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의 관심이 가지지 못한 것에서 가진 것으로 옮겨갈 때, 인생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순간들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의 그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소소한 관심이, 안녕을 기원하는 작은 바램이, 위로를 건네는 다정한 공감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되새긴다. 

나는 앞으로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주변을 살피며, 더 많은 축복을 빌어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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