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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Dec 01. 2023

하필, 사과

Of all things,  Apple

혹시 사과 좋아하세요? 저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다만 사과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좋아한답니다.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의 집합체예요. 의미론 시간에 교수님이 얼마나 많이 썼는지 지금도 기억나요. 

"'사과'라고 하면 뭐가 떠올라요?"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백설공주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선악과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국제적 대기업을 떠올리기도 하잖아요. 누군가는 잘못을 뉘우치고 화해를 청하는 사과를 떠올리기도 해요. 제가 교복을 입을 때는 별별 기념일이 많았는데, 애플데이라고 해서 친구에게 사과하며 사과를 주는 날을 학교에서 주도하기도 했어요. '같이 야자 째자고 해서 미안해', '매점에서 돈 갚겠다면서 빵 사 먹고 안 돌려줘서 미안해'하며 친구랑 시답잖은 사과를 서로 하며 야자시간에 사과를 나눠먹었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쓴 쪽지 모아다가 사진 찍고, 사과 사진 찍고, 학생들에게 사과 나눠주는 사진 찍고, 각종 영수증과 증빙자료 꾸린다고 애썼을 어떤 공무원이 생각나서 착잡하네요.


언젠가는 많고 많은 과일 중에 왜 사과였을까-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했어요. 왜 하필 사과였을까요? 배도 아니고, 포도도 아니고, 딸기도 아니고, 자몽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니고, 바나나도 아니고, 파인애플도 아니고, 망고도 아니고, 토마토도 아니고, 복숭아도 아니고, 석류도 아닌, 사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가면 사과라면서요? 사과는 맛있고 맛있으면 바나나.. 어라? 언제부터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는 것이라고 세뇌됐는지 모르겠어요. 집단으로 노래까지 부르면서요. 솔직히 사과가 맛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떡볶이나 붕어빵이 더 맛있잖아요. 과일 중에서 맛있는 과일을 뽑자면 딸기나 수박이 더 맛있지 않나요? 사과는 그저 제철도 안 타고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많은 상징들을 흡수하게 된 걸까요? 아니, 흔하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사과가 세 개에 만원인 거 아세요? 저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언제부터 사과가 이렇게 비싸진 거죠? 올해 사과가 이렇게 비싼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요? 다들 사과 사 먹을 돈은 갖고 계신가 봐요.


사과는 생으로 먹는 게 제일 좋지만, 잘못 고르면 퍼석퍼석하고 맛도 없어요. 인공감미료에 중독된 인간들에게 사과의 단맛이 크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이 무렵 사람들은 사과를 가공해 먹기 시작했어요. 사과음식을 말하자면 사과주스 정도 말할 수 있을까요? 동그란 유리병에 파는 사과 주스를 좋아해요. 적당히 달고 시원한 맛에 좋아하는데 운이 좋으면 취급하는 개인카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그냥 대형마트에서 사다가 먹는 거죠. 사과식초도 있네요. 대형마트에서 사과식초를 파는 걸 봤지 어디에 쓰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요리와는 영 인연이 없거든요. 보통식초보다 달달할까요? 아니면 보통식초보다 더 상큼한가...?

그렇다고 사과가 과일의 대표적인 맛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맛을 만드는 과일은 단언 딸기라고 생각해요. 어딜 가나 딸기맛은 찾기 쉽지만 사과는 찾기 힘드니까요. 딸기맛 치약, 딸기맛 우유, 딸기맛 해열제, 딸기맛 초콜릿까지..! 사과는 온전히 사과맛으로 즐기기보다는 뭔가를 더해서 먹는 것 같아요. 시나몬을 더해서 시나몬애플티도 쌀쌀한 가을에 즐겨마시기 좋은 차고요. 지금도 시나몬애플티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는 걸요. 


잼이라면 당연히 딸기잼이지만, 사과잼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죠. 식빵을 앞뒤로 살짝 구워서 사과잼을 바르고 그 위에 콘플레이크를 올려서 먹어보세요. 흔해빠진 인터넷 레시피지만 정말 맛있답니다. 사과잼하면 와플을 빼놓을 수 없어요. 사과잼과 생크림을 얇게 바른 길거리 와플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사라져 버리고 뚱땡이 와플, 아이스크림이나 과일과 생크림을 잔뜩 넣은 와플이 길거리를 정복했어요. 그마저도 길거리가 아닌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길거리 음식들은 하나둘씩 상가의 식당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조만간 붕어빵도 상가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아요. 붕어빵 트럭을 보면 신고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거든요. 언제나 수수료를 내면서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겠죠. 아마 천 원, 이 천 원 현금으로 붕어빵을 사는 건 곧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될 것 같아요. 이미 몇몇 프랜차이즈 매장이 붕어빵을 팔기 시작했거든요. 포장마차 붕어빵은 순식간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겠죠. 한국에서 부동산이 망할 리가 절대 없다니까요.


사과를 깎을 줄 아세요? 껍질에 제일 영양분이 많지만 농약이 걱정된다며 껍질을 다 까서 사과를 먹곤 하잖아요. 사과를 깎아 먹을 줄 아나요? 아니면 누가 깎아준 사과만 먹으면서 자라왔나요? 요즘도 손님을 접대하면서 사과 좀 깎으라고 말은 안 하지만 분위기상 칼을 들고 껍질을 까야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지 않나요? 언젠가 사과 깎는 걸 보면서 시집 못 가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손에 여전히 칼이 들려있는 걸 못 봤나 봐요. 내가 지금은 칼로 사과를 깎고 있지만 다음엔 네 놈의 면상을 깎을 수도 있는 건데. 농담. 그러나 항상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있어요. 그 칼이 지금은 사과를 깎고 있지만 언제 누구한테 향할지 모르니 서로 조심하자고요. 누가 깎아준 사과만 받아먹으면서 평생을 자란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과일이 뭔지 아나요? 귤이래요. 귤은 직접 까먹어야 하거든요. 귀찮대요, 그게. 아니, 귤은 손톱 끝이 샛노래질 때까지 까먹는 게 연례행사 아니었냐고요. 

사과를 깎기 전에 칼로 윗부분을 왜 치는지 모르겠어요. 생선처럼 기절시키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은 껍질을 끊기지 않고 길고 얇게 깎는 것보다 사과를 미리 조각낸 다음에 조각낸 사과 껍질을 깎아요. 조각난 사과로는 토끼도 만들 수 있답니다. 귀찮지만 조카나 어린아이가 있다면 나라도 토끼로 깎아서 동심을 지켜줄 것 같아요. 


사과는 사실 그냥 사과가 아닌 거 아세요? 부사, 홍로, 능금, 홍옥... 종류가 굉장히 많다고 해요. 사실 사과에 종류가 많다는 건 안 지 얼마 안 됐어요. 제가 아는 사과는 충주 사과 정도였거든요. 지금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만 알지 뭐가 뭔지는 몰라요. 사과는 그냥 사과니까요. 백설공주가 먹은 사과가 홍옥인지, 뉴턴이 본 사과가 능금인지 선악과로 그리는 사과가 부사인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사과는 사과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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