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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 Mar 25. 2019

편린 - 2

1998년 이후 IMF, 인터넷 비용 절약법

1998년에 IMF가 터졌다. 내가 중3때였다.

철없는 나는 은행금리가 20%나 오른 덕분에 내가 저축한 세뱃돈 10만원이 연말에 12만원이 되어있다고 좋아했다. 내가 좋아했던 이수락 우동을 사먹은 기억... 뭔가 내 돈 벌어(?) 돈 쓴 첫번째 경험이었다.


나중에 다 커서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의 주식이 당시에 휴지조각이 되었고 (대우에 투자하셨던걸로 안다)

상가를 시행하는 지인의 꼬드김에 아파트 한채값으로 투자한 상가는 수년째 공실.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는 IMF의 구조조정과 함께 명예퇴직을 하셨다.


그 이후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니?"가 되었다.

매년 선생님과 상담해야 할때면, 새로운 친구와 마주할때면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엄마가 돈을 벌고 있었기에 물질적으로 궁핍했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적은 없었다.

툭 하면 이유없이 화를 내고 때리는 집에만 있는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힘들었을 뿐... 

그저 마음이 팍팍하고 가난했다.



IMF의 기운이 몰려오던, 1997년 가을쯤 나는 Netsgo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아빠가 SKT를 다니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내가 인터넷을 하면 우리집에 전화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전화국에서 내 쓰는 인터넷을 강제로 끊고 내게 전화를 건일도 있었다. (부모님이 통화가 안된다고 전화국에 연락을..)

  

이런저런 일들로 돈을 쓰는것도 미안하고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인터넷을 하는건 더욱 눈치가 보였다.

전화요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나는 보고 싶은 페이지가 있으면 여러개를 클릭해서 10개정도 창을 띄워놓고 인터넷 접속을 끊은 후 오프라인 상태에서 천천히 페이지를 읽는것을 선택했다. 서둘러 접속을 끊으면 이미지는 다 뜨지 않고 글만 뜨는 경우가 허다했다. 집근처에 KT 지사가 있었는데 그곳의 1층에는 무료로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4대가량 있었는데... 겨울방학때는 그곳에 플로피 디스크를 여러개 들고 가서 마음에 드는 글이나 사진을 잔뜩 다운받아 집에 기쁘게 들고온 기억이 있다. 우리집의 인터넷 속도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빨랐는데 공짜라서 더욱 좋았다.


전화요금이 나올때마다 인터넷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눈치를 봤었고,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컴퓨터에 매달려있는다고 핀잔을 들을까 두렵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학업 매진하지 못하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미래가 두려웠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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