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의욕이 없는 자신을 보며 괜히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내가 가장 나에게 크고 아픈 채찍이 되어 나무란다.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나는 쉽게 게으름이나 나약함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 상태는 정말 문제일까, 아니면 지쳐버린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까.
옛날에 매일 플래너를 써서 계획을 짜며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시간을 꽤 오랫동안 지속했고 그 덕분에 짧은 시간에 원하는 것을 많이 이룰 수 있었다. 자기 계발 관점에서는 당연히 플래너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사는 것이 계획이 되었다. 이유는 매일 그 플래너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나를 쓰레기 취급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해 주말에 하루 날을 잡고는 이행하지 못한 계획을 무조건 다 따라잡아야 속이 시원하고 정상인처럼 느껴졌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긍정적인 부분이 생겼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안 할 수 있고,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더 시간이 흐르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안 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고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쌓여갔다. 해야 하는데, 이것도 해야 되는데라고 말하면서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가만히 있지만 더 가만히 있고 싶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계속되니 번아웃이나 무기력이 왔다. 하지만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책이다.
왜 남들 다 하는 걸 나는 못하는 거지
왜 이렇게까지 의욕이 없지
어제까지 안 했으면 오늘은 해야지
스스로에게 가혹한 말을 따발총처럼 쏘아댄다.
그리고 그 말들은 스스로를 더 깊은 구멍으로 들여보낸다. 한순간도 희망이 있다고 믿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는 그렇게 싫어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데는 거침이 없다.
지금은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너무 심하면 스스로에게 말한다.
할 건 해야지? 하나는 하자.
그러면 꾸역꾸역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설거지를 마치면 깨끗해진 싱크대를 보고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면 청소기를 움직일 힘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책상에 앉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을 수 있다.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나에게 채찍질할 필요 없다. 꼭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조차 우리는 매일 스스로와 씨름하며 살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날을 살아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줘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