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날이 있다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방법

by 유라

마음이 쉽게 무너지는 날이 있다.

분명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무너져버리는 날이 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말과 표정에 마음이 괜히 내려앉는다. 한 번 내려앉은 마음은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다시 마음이 올라오기 위해 힘쓰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진다. 기분은 계속 가라앉고 가라앉아 머리에 침대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겨우 겨우 몸을 이끌고 침대에 들어가면 끌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왜인지 침대와 함께 이 세상에서 끝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느낌은 몇 번을 느껴도 괜찮아질 생각이 없다.

당장 자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일어날 힘도 없을 때 핸드폰을 들어 메모장을 킨다. 메모장은 나의 대나무숲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집어넣는다.

오타가 나도 되고, 비속어를 써도 되고, 속에 있는 말을 마구마구 쏟아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켜놓고 아무 단어조차 쓰지 않을 때도 있고 한 글자씩 쓰다 보면 어느새 글에 집중해 오타를 참을 수 없어 정정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 여러 방법을 사용했었다.

단약을 하고 처음으로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받을 때는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계속 누워있었고, 이불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이 기간으로만 또 몇 년을 썼다. 누워있는 시간이 쌓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든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힘이 없으면 가만히 있었다.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다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워있다 잠을 자기도 하고 핸드폰만 10시간을 넘게 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차츰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씩 피어났다. 바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일어나 벽에 기대어 있었다. 또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잠깐 이불 밖을 나가게 되었는데 산처럼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가 눈에 띄었다. 너무 힘들면 하나만 닦자고 생각하다 하나를 하니 하나를 더 닦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거운 물을 틀고 고무장갑을 꼈다. 하나 또 하나씩 설거지를 끝마칠 수 있었다. 설거지를 끝마치고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웠다. 아주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청소를 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네?

침대에 누워 문득 방 안을 둘러보았다. 군데군데 치워야 할 것들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삽식간에 내 눈을 덮쳤다.


방이 왜 이렇게 더러워?


눈앞에 보이는 수건, 휴지, 작은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나를 치우면 바로 옆에 치울 것이 또 생겼다. 그저 치워야 하는 것만 눈에 담는데 정신이 팔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밝았던 밤이 어둑해져 불을 켜야 할 정도가 되었다. 방을 자의로 깨끗하게 치운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깨끗해진 방을 보니 엄청난 성취감과 뿌듯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방을 치우고 나니 스스로도 씻고 싶다고 느껴져 샤워를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너무 상쾌해 코가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아주 조금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건강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다음은 컵라면을 먹더라도 컵라면 용기에 먹지 않고 유리그릇 같은 것에 덜어서 먹었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나를 놓아버려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썼던 방법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유리그릇이나 도자기 그릇에 넣어서 먹으면 먹고 나서도 기분이 그나마 괜찮았다. 그릇 하나, 젓가락 하나 설거지를 하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졌다.

그러다가 이것마저 할 힘이 없으면 침대에 누워 메모장을 켰다. 그 안에서는 어떤 말도 다 허용된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손가락이 멈추고 싶어질 때까지 쓰면 된다. 항상 손가락이 아플 때쯤에 메모장을 확인하면 오른쪽에 커서가 작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걸 썼을 때 다시 힘이 생겨 일어날 수 있었다. 이것을 터득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현재의 나는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날이 와도 애써 일어나지 않는다.

루틴을 갖고 실행한다. 설거지 한 개, 음식 하나, 메모장을 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뭘 했든, 하지 않았든 그냥 무너지는 날이 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늘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내일의 나를 위해 지금은 많이 아프지 않아도 된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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