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셀핍 시험 본 썰
올 초에 시작된 프로젝트. 이름도 거창한 시민권 프로젝트가 있었다. 뭐 별건 아니고, 캐나다에 살아보니 만족되는 부분도 있고, 나름 잘 적응해 나가고 있고, 아이들도 더 자라기 전에 시민권을 받아놓는게 좋을 것 같아서 시민권 신청을 해 놓았었다. 영주권과는 달리 시민권은 주로 본인들이 해당서류들을 알아서 내는 것 같았다.
사실 서류가 간단하지는 않다. 세 아이의 출생증명서를 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출생증명서에는 캐나다에서 원하는 출생지 주소가 빠져있기 때문에 병원의 영문 출생증명서를 내야 한다. 캐나다에서 원문을 받기는 힘들고 공증문제도 까다로우니 이건 어렵고, 기본증명서를 번역 공증받아서 내야 한다. 기본증명서발급은 인터넷으로 하면 되지만, 또 캐나다에서 인정되는 번역가를 찾고 또 공증받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캐나다에서 한글로 된 종이 한장을 쓰기 위해 써야하는 돈과 노력과 시간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캐나다 서류를 한국에서 쓰는 것도 두배의 돈이 들어간다.
게다가 온 가족의 여권의 모든 페이지를 복사해야 하고, 심지어 엄마아빠의 여권은 컬러복사를 해야 한다. 가족이 많다보니 준비해야 할 서류가 엄청 많았고, 하루에는 절대로 준비할 수가 없는 양이었다. 캐나다는 서류검토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서류가 누락되거나 잘 못되면 그걸 다시 처리하는데에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무조건 한방에 완벽하게 해서 제출하고 한방에 승인을 받는 것이 최고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사실 매번 영주권을 연장하는 데에도 소정의 서류가 들어가고 수속비용도 들어가는데다가 어차피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시작된 시민권 신청이었다. 너무 힘들다. 그래도 꼼꼼하게 냈다고 생각하고 낸 서류에 잘 제출되었다고 안내메일이 오고, 4월에는 시민권 시험도 봤다. 겁나 어려웠다. 운좋게 둘다 붙었지만... 하마터면 재수를 할뻔 했다.
신기하게도 시민권 시험 후에 8월, 이제서야 또 안내메일이 온다. 뭔가 제목을 보면서도 기분이 싸하다. 남편은 안 오고 나만 온 것이다. 역시 내 촉이 맞았다. 안타깝게도 시민권신청승인 메일이 아니었다. 내 영어 점수 서류가 부족하니 증명할 영어점수 서류를 보충해서 7일안에 다시 내라는 메일이었다. 헉.
캐나다에 영주권자가 처음 도착하면 정착을 도와주는 무료 정부기관이 있다. 몽튼에서는 그 기관을 MAGMA라고 하는데 마그마... 그렇다, 마그마라고 한다. 그 막 부글부글 끓는 그 마그마는 아니다. (아재개그) 무튼, 그 마그마에서 영어시험을 볼 수 있고, 점수를 처음 내 주는데, 4점이 넘으면 시민권 신청이 가능하다. 남편은 점수가 모자라서 수업을 착실히 들으며 레벨을 차곡차곡 올라가 4점을 받아냈고, 증명서를 받아놓은 것을 제출했다. 나는 시험점수가 4가 넘길래, 그 시험결과를 제출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단순한 시험결과로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증명서를 받으려면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순간 아찔하다. 여기서 영어점수를 7일 안에 못내면.. 거절인가. 그럼 그 서류 다 안 돌려주니까 처음부터 다 다시 준비해야 하고, 신청비도 800불(80만원)가까이 냈는데 그것도 다 다시!!!!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아이엘츠를 봐야 하나. 아이엘츠도 시험을 보면 시험일이 자주 있지도 않는데다가 2주는 더 걸려서 결과가 나올텐데. 7일안에는 도대체 무리다. 집에서 어딘가에 10년전에 본 아이엘츠 성적표를 보고, "아 이때 내가 개고생했지", 하며 "이것도 언젠가 유용하다" 하며 정리해 뒀던 생각이 난다.
이메일을 받은 목요일, 레슨이 끝나자마자 밤 늦게까지 집안에 종이란 종이는 다 뒤져보며 성적표 카피본을 찾았지만, 없다. 가슴이 답답해짐. 그 와중에 시민권 신청 안내 사이트를 다시한번 차근차근 읽어보니 셀핍이라는 시험도 인정을 해준다고 한다. 셀핍. 셀핍은 말로는 들어봤지만, 더 생경한데.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시험인데.. 더 자세히 읽어보니 시민권 신청을 위해서는 리스닝과 스피킹만 보면 된다고 한다.
셀핍 사이트에 가보았다. 시험일 검색을 해보니, 어맛! 이게 신의 도우심인가. 몽튼에서 이번 토요일에 시험이 있다. 셀핍은 결과가 3~-4일만에 나온다하니, 어쩌면 다음주 목요일까지 서류를 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긴다. 등록을 하려고 보니, 매진됐다. 하아... 아니다! 리스닝과 스피킹만 따로보는 시험은 자리가 있다! 근데.. 시험보기가 너무 싫다. 한번에 점수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고민하다 자리 차서 못보면 어떡하지, 계속 셀핍 창을 열어두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한국에 있는,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올 때 거래했던 이민 업체에 물어라도 보라는 남편의 말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남편은 급하면 전화를 하라고 조언. 캐나다 시간으로 밤 8시50분. 한국시간 아침 8시 50분. 9시까지 기다렸다 총알같이 전화를 걸었다. 보통 2년까지 서류를 보관하지만, (우린 4년됌) 한번 찾아는 보겠다는 답변. 얼마나 걸리냐고 여쭈니 오늘안에는 되지 않겠냐신다.
전화를 기다리는 사이...... 도저히 불안해서 안되겠다. 이렇게 셀핍 자리를 놓치면, 다음 시험은 심지어 그 다음달에도 없다. 2시간 걸리는 다른 도시에서도 그나마 다음달에 있었나? 결제를 미리 해놓고 취소를 할까 싶었지만, 7일전에만 50프로 환불이 되고, 지금은 이미 3일 전이므로 환불이 전혀 안된다. 택스 붙인 가격은 224불. 돈도 아깝고 내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가 너무 아깝다. 그래도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걸 알기에....불안한 마음에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결제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러고 30분뒤, 한국에서 이메일이 도착! 서류 찾았습니다. 라며 아이엘츠 성적표 스캔을 바로 보내주셨네!!!!! 하아 기쁨과 슬픔이 교차
나는 운이 나쁜 여자구나.
"자기야, 나 시험 안 보면 안되지?"
"봐야지"
남편은 영어 중간 평가 한다 생각하고 가서 보고 오란다. 나도 바로 아이엘츠 성적표는 이민성에 제출했지만, 혹시라도 모를 백업을 남겨두고 싶기도 했고, 언제 또 이런 비루한 영어점수표라도 필요한 날이 오지는 않을까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하여 저리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보게된 셀핍 시험
원래는 토요일날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내가 출석하는 한인 교회 권사님께서 점심 초대를 하신 것이다. 결국 영어 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오전에 애들 수영 데리러 갔다가, 집에 와서 들고갈 감자전 좀 부치고, 애들 점심으로 피자 사다가 대령하고, 같이갈 집사님 모시고, 점심 먹고, 커피도 한잔 다 못 마시고, 시험을 보러 갔다. 이쯤되니 심히 울고 싶음.
셀핍시험은 아이엘츠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헤드폰으로 들으니 잘 들리고 좋은데, 스피킹은 금세 내 바닥이 드러나는 시스템이었다. 한번도 공부도 못하고 뭐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간거라 점수는 그냥 적어도 4는 나오겄지, 했는데...
다행히 8과 6이 나와주었네. 요새 넷플릭스 설치하고 영어로된 시리즈를 엄청 많이 봤더니 리스닝을 조금 늘었고, 스피킹은, 10년전 아이엘츠 점수와 동일. 조금 부끄러웠다. 하나도 안 늘었다니...!!!
무튼 백업으로 이 서류도 이민성에 냈지만, 서류 수속 과정을 보니 이미 월요일날 아이엘츠 점수로 영어점수 인증이 끝났고, 이제 선서식만 남은 것으로 나온다. 어휴 개운해라.
200불에 그동안 영어가 얼마나 늘었나 체크했다 생각해봤다. 사실 제너럴 시험이 4부문을 모두 보는 건데, 가격차이가 얼마 안난다. 시간이 많고, 돈이 많고, 할일이 없다면 정기적으로 영어 실력 체크할겸 이런 시험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근데 나란 여자는 시간은 없고, 돈도 없고, 할일은 많네?
남편은 점수는 잘 나왔냐더니 8이랑 6 나왔다니까 뭔지도 모르고 "잘했네".
너란 남자, 굉장히 서포티브하다.
이민생활이 이렇게 파란만장합니다.
뭐하나 쉬운게 없었던...